
경쟁사회에는 당신에게 두가지 선택만을 강요한다.
하나는 그냥 패배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이기고자 한다면 변화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떠한 대책도 욕망을 거스르지는 못한다
제로-섬은 누군가의 이익이 다른 이에게는 피해가 되어 영(O)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 레스터 써로 교수가 <제로-섬 사회>라는 책에서 나온 말이다. 로또를 예로 들어보자. 복권은 주최 측의 비용을 제외하고 다수의 패배자들로부터 돈을 모아 소수의 승리자에게 몰아준다. 곧 당첨된 사람의 행복은 수많은 이들의 피땀눈물로 이로어진 것이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레스터는 성장이 멈춘 사회에서 어떤 정책을 펼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계층적 고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자(2020년 2월 22일 토요일) 한국일보에서 제로-섬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을 빗대어 본 것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수석위원은 광풍의 진원지인 30대에 주목했다. 곧 상대적으로 젊은 층이 무리해서라도 집을, 구체적으로 서울의 아파트먼트를 사고 있다. 동시에 어느새 노년층에 접어든 베이비부머들도 집을 줄이거나 외곽으로 빠지지 않고 고스란히 고수하려고 한다. 요컨대, 서울의 아파트먼트는 젊은 세대든 늙은이든 모든 경제연령층이 선호하는 투자 상품이 되었다.
전문위원은 아파트먼트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를 세 가지로 들었다. 첫째, 비교적 간단한 가치저장수단이다. 곧 표준화 규격화되어 있어 환금성이 좋다. 둘째, 편의를 극대화한 공간이다.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그만이다. 셋째, 복합공간화되고 있다. 단지를 형성함으로써 폐쇄적 커뮤니티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역설적으로 독이 되기도 한다. 제로-섬 이론에 따르면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한탄을 하고 있다. 소수자들만의 카타고리를 만들어 진입장벽을 높게 쌓아 아예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다. 아무리 현 정부가 아파트먼트 값 때려잡기에 나서도 소용이 없는 이유다. 어떠한 대책도 욕망을 거스르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는 제로-섬을 넘어 아파트먼트가 과연 인간다운 주거인가에 큰 의문을 갖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살고는 있지만 땅을 밟지 못하고 공중에 붕 떠서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게 신체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아파트먼트에서 나고 자란 세대에게는 꼰대 같은 소리일지는 모르겠지만 주택에서도 살아본 경험에 따르면 아무리 불편해도 그쪽이 훨씬 나았다.
정작 큰 불만은 아파트먼트의 가격이 합당한 가치를 갖고 있는가이다. 현재 서울 일부 지역의 집값은 환상재에 가깝다. 사람들의 욕망이 투사된 허영재라는 말이다. 누군가는 그런 상품에 눈독을 들이겠지만. 흥미로운 건 양극화될수록 틈새는 더욱 커진다는 사실. 곧 아파트먼트와 허름한 집 양갈레로 나뉘다 보니 교통이나 입지가 불편한 지역에 의외로 좋은 주택들이 꽤 있다. 이런 집들은 규모의 경제를 누리지 못하니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상각이 발생하고 유지비도 꽤 들지만 오히려 이런 약점들 때문에 주변 자연환경은 더욱 좋다. 가격도 적당하고.
써로 교수의 말처럼 패배자가 되기는 싫으니 변화를 선택하려고 한다. 좋은 쪽으로. 오늘 집을 보러 간다. 대상은 주택이나 빌라다. 부동산 중개사에 연락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만 살필 생각이다. 이번만큼은 제발 아파트먼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사 출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2201486735758?NClass=HB01
사진 출처: https://alchetron.com/Lester-Thu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