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의 뚱뚱한 돌고래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부리나케 세수를 하고 아침식사도 먹는 둥 마는 둥 빵으로 때우고 6시에 집을 나서 지하철을 한 시간 가량 가서 버스로 갈아타고 40분 이상을 시달리고 나서 터덜터덜 10분쯤 걸어 회사 정문에 도착하면 이미 내 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기 일쑤였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인스턴트커피로 깨질듯 아픈 머리를 달래며 이곳저곳 전화를 걸며 밀린 일처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 맨날 먹는 백반이 싫어 다른 메뉴를 떠올려보지만 거기서 거기. 차라리 일찍 후딱 먹어치우고 잠시라도 걷는 게 낫지. 오후는 또 다른 전쟁터. 퇴근시간만 보며 달려가지만 희한하게 상사는 딱 맞춰 일을 선사한다. 마치 야근을 하지 않으면 회사에 다닐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그렇게 능률 없이 일을 하다 집으로 가는 길. 버스를 타고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 앞에 이르는 길은 언제나 아득하다. 그래서인지 중간 중간 주저앉고만 싶다. 왜 직장인들이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르게 아파트먼트 문을 열고 돌아오면 책을 한 페이지라도 읽고 싶은 마음은 저 멀리 사라지고 이리저리 리모컨을 돌리며 왜 티브이 프로그램은 죄다 재미가 없지라는 쓸모없는 말을 내뱉다 쓰러지듯 잠자리에 든다.
그 때 난 최소한 열심히는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곰곰 돌이켜보면 그처럼 나태한 삶도 없었다. 스스로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지 못하고 주어진 틀에 철저히 복종만 했기 때문이다.
"이 시끄럽고 바쁘고 단조로운 현대의 삶 속에서 우리는 아무 의미도 없는 풍경과 소리들의 폭격을 받습니다. 교통 소음처럼 완전히 무의미한 것이기도 하고, 우리를 순전히 즐겁게 해줄 뿐인 텔레비전 소음이기도 하죠. 뭔가를 보든지 듣든지, 안 보든지 안 듣든지 별 상관이 없으므로 우리에게는 뭐든 대충 보고 대충 들으면서 흘려보내는 게으른 습관만 생깁니다. 우리 대부분은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고 그저 삶을 떠돌아다닙니다. 수족관의 뚱뚱한 돌고래 같아요. 그곳엔 상어도 범고래도 없고, 사육사가 필요한 모든 음식을 가져다줘요. 우리를 괴롭히는 유일한 것은 지루함이죠. "_테드 휴즈, <오늘부터 시작> 가운데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