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가 도리어 봉 감독에게 고마워해야


소설 <태백산맥>이 출간되고 대히트를 치자 출판사는 신문광고를 실었다. 문안은 "한국문학 여기까지 왔다." 그 문장이 하도 생생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카피에 걸맞은 책으로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던 주제였던 남한의 좌익 활동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영화 <기생충>이 92회 아카데미상에서 각본, 국제영화상. 감독, 작품의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모든 상이 귀하지만 사실 작품상을 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주 목표를 높게 잡아 감독상까지는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예상은 했지만. 세상에나 작품상이라니, 그야말로 대상인데. 


물론 운도 따랐다. 올해 경쟁작들은 상대적으로 허점을 하나이상 다 가지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후보였던 <1917>은 지나치게 영미중심 이야기였으며, <조커>는 주인공이 너무 두드러져 작품 전체의 균형이 무너졌으며, <아이리시맨>은 공로상은 줄 수 있지만 최고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회고적이었다. 무엇보다 작년 가장 유력한 작품상 후보였던 <로마>가 감독상만 받아 구설에 오르면서 반사이득을 본 효과도 컸다. 


그렇다고 <기생충>의 수상을 폄하할 수는 없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영화가 미국 주류무대에서 이렇게 대접받은 적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오스카로서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절실한 시기에 <기생충>이 구세주처럼 등장한 셈이다. 다시 말해 아카데미가 도리어 봉 감독에게 고마워해야 마땅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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