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y Lonely Hours

  

봉준호 감독이 유명세를 타며 통역사도 덩달아 화제다. 우리말의 어감을 그대로 살리되 영어권 사람들에게 와 닿는 언어로 번역을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샤론 최. 그의 진가는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기생충>은 외국어 영화상과 오리지널 각본상을 수상했는데, 각본상은 사실 뜻밖이었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쓴 각본이 영국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영어권 작가들은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하다. 우리로 치면 대종상에서 태국어나 베트남어로 쓴 각본이 상을 받은 셈이다. 여하튼 핵심은 번역이다. 봉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기쁨을 마음껏 표현했다. 

 

"혼자 외롭게 카페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어요. 시나리오를 커피숍에서 쓰는데. 이제 이렇게 런던한복판 로얄 앨버트 홀에 이렇게 서게 될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

 

자, 그러면 통역을 어떻게 했을까?

"I spent many lonely hours at coffee shops. I never imagined that I'll be standing right here at Royal Albert Hall." 

 

아무래도 즉흥적인 반응이기 때문에 봉 감독의 말은 문법적으로도 어긋나고 중언부언이 많다. 만약 곧이곧대로 직역을 했다면 말은 되지만 왠지 지적수준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은 준다. 영어권에서는 같은 단어나 어구의 반복을 극도로 싫어한다. 샤론 최는 깔끔한 번역으로 이런 우려를 털어냈다.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다.

 

"나는 커피숍에서 많은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지금 여기 로얄 앨버트 홀에 서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뭔가 많이 빠진 듯 하지만 듣는 이들은 어떤 의미인지 다 알아듣는다. 어차피 영화 시상식이고 그가 커피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한 일은 각본 쓰는 것일테니까. 게다가 각본상 수상이니.

반면 한국기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나마 인터뷰를 요약하여 내보는 곳은 TV 조선뿐이다. 여하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앞뒤 자르고 붙여 이상한 문장을 만들어냈다. 더우기 핵심적인 외로운 많은 시간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최소한 모니터를 제대로 하며 봉 감독이 한 말은 그대로 전해야 하지 않는가? 참고로 나는 영국아카데미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수상 영상을 서너 번씩 돌려보며 이 글을 썼다.

 

"감사합니다. BAFTA!(영국 아카데미) 시나리오를 커피숍에서 쓰는데 이렇게 영국 한복판에 로열 앨버트 홀에 서게 될 날이 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던 거죠."_<TV 조선>_

TV 조선 기사: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04/2020020490030.html

영국 아카데미 인터뷰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1PYYuv_wZ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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