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가 체질에 맞지 않더라도 플로랜스 퓨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버티고 볼만한 영화. 과연 그*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을 수 있을까?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주류 영화계로 편입한 퓨가 이런 류(?)의 영화에는 다시 출연할 일이 없을 것 같아 더욱 놓쳐서는 안 된다.


성聖과 속俗, 생로병사의 순환 고리


부처는 말했다.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게 고통이다. 만약 이 말이 맞다면 인류는 영원한 불행의 수레바퀴를 굴려야만 한다. 근원에는 성과 속이 있다. 성은 성스러움을 속은 생식기의 결합을 뜻한다. 속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다. 사람이 다른 점은 이 속을 문명으로 포장하는 거다. 만약 인류가 지금처럼 진화하지 않았다면 곧 다른 동물처럼 생을 이어나갔다면 가장 밑바닥에 위치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순식간에 퇴화할지도 모른다. 속과의 힘겨루기에서 성이 버티기 어려워지면.


<미드소마>는 낯선 공포영화다. 흔히 등장하는 밤 씬은 초반에 전채요리처럼 나오고 내내 한낮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밤이 되어도 환한 하지이지만. 가족문제로 정신 병력이 있는 대니는 남자친구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여간다. 언제가 자기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어느 날 부모와 동생이 동시에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남친은 별 생각 없이 위로차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는데 덜컥 받아들인다. 다른 세 명의 친구와 함께 이들은 스웨덴으로 향한다. 한창 하지축제가 열리는 스웨덴의 공동체 마을에 도착한 그들은 기괴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어리 에스터 감독은 <유전>이 한국의 곡성과 비교되며 유명세를 치렀다. 기분 나쁘지만 계속 보게 만드는 매력이 비슷하다는 이유다. 그러나 <미드소마>에서는 긴장감을 잃고 헤매고 말았다. 공동체라면 어느 곳에서나 있는 배타성과 통과의례를 극단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물론 살만큼 산 노인들이 절벽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고 5월의 여왕을 뽑아 산채로 바칠 재물을 고르게 하는 엽기적인 설정이 눈길을 끌지만 무섭다기보다는 헛웃음이 나온다. 공동체 마을의 주민들로 나오는 인물들이 개성 없이 기계적으로 연기를 한 탓이다. 방가방가 춤은 코미디였고, 과장된 섹스 장면에 호응하는 장면도 흥분되기 보다 썩소를 날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장점을 꼽자면 대니 역을 연기한 풀로렌스 퓨다. 그는 초반 강박에 시달리던 불안한 모습에서 공동체에 서서히 그리고 처절하게 적응하며 진정한 해방을 만끽하는 장면에 이르는 과정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묘사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리틀 드리머걸>에서도 당차면서도 혼란스러운 스파이 역으로 나와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방향을 확 틀어 <작은 아씨들>에서 에이미 마치로 출연하여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한마디로 연기 천재다.


한편 이 영화를 페미니즘 계열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단지 여성이 남자를 씨받이 대상으로 이용하고 죽여 버려서 통쾌한 면은 있지만 오랜 인류 역사를 보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훨씬 압도적인 존재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남자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아이를 낳는 건 여성이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남자가 그저 정자 제공자에 불과한 시험관 아기를 떠올려 보라. 남자가 여자에게 군림하는 시기는 긴 역사를 보면 찰라에 불과하다. 


* 여성임에도 그녀가 아닌 그라고 칭하는 이유는 그녀가 일본식 한자 표현이기 때문이다. 남자건 여자건 그로 통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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