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에서 선명한 계급의식을 영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섣불리 어느 한편을 들지는 않는다. 단지 우려를 표할 뿐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서 금기해야 줄 주제로는 정치와 종교가 있다. 그만큼 쉽게 변하기 어려운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편끼리도 갈라지기 일쑤다. 당파싸움이 괜히 생겼겠는가? 헤겔의 말처럼 정반합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게 집단논리의 상식인가도 싶다.


혼란상황에서는 중간이 최고다. 어느 한편을 택하면 낭패를 보기 일쑤다. 회색주의자라고 비난해도 상관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나를 책임져주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 경우 신영복 선생의 위선과 위악은 적절한 설명이 된다. 곧 가진 자는 스스로를 착한 척 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가난한 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과장하여 부풀린다. 우리는 위선자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위악자라는 표현은 매우 낯설다. 잘사는 인간들은 악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선 못지않게 무서운 게 위악이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위악자들의 행태가 낱낱이 드러난다. 공문서를 위조하여 과외 선생을 하고 학력을 위조하고 거짓말을 퍼뜨려 운전사로 위장취업하고 아내까지 끌어들여 가정도우미를 시킨다. 이런 행동들은 엄연히 범죄다.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이들은 옹호 받아 마땅한가? 봉준호 감독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선명한 계급의식을 드러내면서도 어느 한쪽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단지 우려를 표할 뿐이다.


현 정부는 서민이라는 이름을 방패삼아 가진 자들을 쪼아대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대변하고 싶어 하는 가난한 이들이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은 대표적인 예다. 다주택자를 적폐세력으로 몰라 똘똘한 한 채 열풍을 만들었다. 그 결과 강남을 포함한 일부 지역은 주택가격이 폭등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갔다. 보유세가 급격히 오르자 전세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사실 다주택자는 임대료를 오르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역할을 했다. 정부가 해야 할 임대정책을 대신 한 셈이다. 물론 도에 지나친 다주택자들이 비난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어느 한 사람이 백 채, 이백 채 소유하는 게 불법은 아니다. 단 정당한 세금은 낸다면.


보수 정권에서는 주로 위선자들이 판을 치고 진보가 집권하면 위악자들이 악을 쓰는 현상이 반복해서 벌어지고 있다. 여러분은 위선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위악자가 되고 싶은가? 맑스의 말처럼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니까*, 선택은 스스로의 처지를 고려하여 하면 된다.


* 원래는 '존재가 의식을 지배한다'이다. 쉽게 풀이하면 자신의 물질적 토대가 정신을 포함한 모든 판단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곧 스스로의 위치가 바로 그 사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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