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산사에는 커피 향만이 가득했다

 

언제 마셔도 좋은게 커피라지만, 물론 애호가인 경우에, 특별히 더 맛있게 느껴질 때가 있다. 월요일 내가 그랬다.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려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꾸준히 이어온 월요산행의 전통(?)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이럴 땐 매일 직장 다니는 일을 하지 않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주말과는 달리 등산객이 적어 호젓하게 산을 오를 수 있다. 비까지 내리니 그야말로 산을 통째로 전세낸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정상에 올라 언제나처럼 식당에 들렀다. 그래도 점심시간에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그 날은 달랑 세 명이 전부였다. 나까지 합쳐. 비빔밥에 국물, 그리고 특별히 보너스로 전까지 나와 배부르게 식사를 마쳤다. 정직하게 말해 맛은 그저 그렇지만 그래도 식후에 마시는 자판기 커피가 있어 늘 설레곤 했다. 사실 이 커피를 마시고 싶어 산에 오르는지도 모른다.

 

경쾌하게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가볍게 버튼을 눌렀는데 이런 컵만 나온다. 난감함을 넘어 분노가 느껴졌다.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하다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절 사무실에 들렀다.

 

"저기요, 커피가 안 나오고 컵만 나왔는데요."

 

보살들은 흔히 있는 일이라는 듯 조금의 동요도 없이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커피포트에 물을 붓고 끓였다. 순간 나는 다른 세상으로 이동했다. 모든 것이 멈추고 보글보글 물끓는 소리만 들리는. 멍하니 있는 나를 깨운건 여직원이었다. 그녀는 흔한 노란색 포장지의 일회용 밀크커피를 종이컵에 털어넣고 물을 부으면서 중간 정도로 할까요 아니면 가득 채울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가득 부탁드릴게요라고 답했다.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밖으로 나왔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산사에는 커피 향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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