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에는
오쟁이 지다란 말을 “남편이 있는 여자가 다른 사내와 간통하다”라고 풀이했지만,
사실 오쟁이를 졌다는 말은 다른 사내를 만난 여자가 아니라
그 여자의 남편이 처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쟁이(를) 지다「관용」 자기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간통하다. ¶나 같으면 다른 놈이 내 계집의 손목만 한번 건드려도 그놈을 당장에 물고를 내고 말텐데, 글쎄 그런 못난이가 어디 있어. 꼭 오쟁이 지기 안성맞춤이라.≪이광수, 흙≫ § (표준국어대사전)

그러니까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의 풀이는
미묘하게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오쟁이는 “짚으로 엮어 만든 작은 섬”을 가리키는데,

 ☜ 오쟁이

왜 바람 피우는 아내를 둔 남자를 가리켜 오쟁이를 졌다고 하게 됐을까?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에서는
무슨 곡절이 있겠지만 그 내막을 알 수 없으니 안타깝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내막을 전혀 알 수 없을까?
혹시 신화 속에 그 실마리가 있는 게 아닐까?
“궁산 선비와 명월 각시” 신화를 보면, 명월 각시는 궁산 선비와 결혼했는데,
명월 각시의 미모를 탐낸 배 선비가 궁산 선비에게 내기를 걸었다.
그런데 그만 궁산 선비는 내기에 졌고, 배 선비는 명월 각시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명월 각시는 배 선비의 집에 가서 말도 않고 웃지도 않았다.
배 선비가 왜 말을 않느냐고 물으니,
명월 각시는 거지 잔치를 사흘 동안 열어주면 말을 하겠다고 한다.
궁산 선비는 거지가 되어 이 잔치에 왔는데,
첫날은 아래쪽 귀퉁이 자리에 앉았더니 위쪽부터 상이 차려져서
마지막 한 상이 모자라 음식을 얻어먹지 못했다.
둘째 날은 위쪽 끝자리에 앉았더니 아래쪽부터 상이 차려져서
또 마지막 한 상이 모자라 못 먹었다.
셋째 날은 가운데 자리에 앉았는데, 이번에는 양편 끝부터 상이 차려져서
또 한 상이 모자라 먹지를 못했다.
명월각시는 사흘 동안 상을 받지 못한 거지에게 따로 상을 차려주라고 했고,
이에 궁산 선비는 잘 먹고 남은 것은 오쟁이에 넣어 가려고 했다.
이때 명월 각시는 구슬 옷을 내던지며
“이 옷의 깃을 잡아 깃고대를 들추어 입을 수 있으면 거지라도 내 낭군이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무도 구슬 옷을 입지 못했고, 궁산 선비만 입을 수 있었다.
궁산 선비가 이 옷을 입으니 하늘 높이 떴다가 내려왔다.
배 선비도 나서서 이 옷을 입어보았으나, 배 선비는 입을 줄만 알았지
벗을 줄을 몰라 그만 하늘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그래서 명월 각시와 궁산 선비는 다시 같이 살게 되었고,
죽은 뒤 일월신이 되었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한국 신화]에서 보고 내용을 축약해 쓴 것입니다.)


 ☜  [이승과 저승을 잇는 한국 신화]는 이 책이어요. (자명한 산책님 고맙습니다. ^^)

이 이야기대로라면 궁산 선비가 오쟁이를 지고 거지 잔치에 간 셈이 된다.
이 이야기에서 비롯해서 “아내를 빼앗긴 남자”가 오쟁이를 졌다고 하게 된 건 아닐까?
이것은 아무런 근거 없는, 그냥 내 추측일 뿐이다.

이제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의 마지막 단원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단원의 주제는  ‘혼인과 성 풍속’이다.
이 부분을 보다 보면, 혼인과 성 풍속에 관한 우리말은
주로 이성애 남성 중심으로 생겨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옛글이나 문학 작품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게 알아둘 필요는 있겠지만
굳이 살려 쓰고 싶지는 않은 말이 꽤 된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인 2005-12-2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을 못 하지만...
제가 아는 오쟁이를 진다의 유래는...
옛날 순진한 남편과 색기 넘치는 아내가 있었는데, 아내가 옆집 남자와 바람이 났다.
그런데 순진남편, 전혀 눈치 못 챔.
이에 아내랑 옆집 남자가 순진남을 놀려먹으려고 작정.
순진남과 아내가 방문을 열고 밥을 먹고 있을 때 옆집남 오쟁이 지고 놀러감.
"아니, 대낮부터 왠 해괴망측한 짓인고? 대낮에 문 열어놓고 관계를 하냐?"
순진남,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고 일축.
그런데 옆집남 매일같이 밥 먹을 때 지나다니면서 대낮부터 해괴하다고 놀림.
순진남이 계속 펄쩍 뛰자 옆집남, 원인을 밝혀보자며 역할 바꿀 것을 제안.
옆집남이 매고 있던 오쟁이를 대신 매고 순진남 사립문밖에서 보니
정말로 옆집남과 아내가 관계하고 있는 광경이 보임.
멍청하게 속은 순진남 덕분에 '오쟁이 지다'라는 유래가 생겼다 함.

숨은아이 2005-12-21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그런 이야기도 있군요.

숨은아이 2005-12-21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렇다면 그 말의 실제 유래라기보다는, 마치 전설처럼, 어떤 일의 유래를 설명하기 위해 나중에 만들어진 설화일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요.

숨은아이 2005-12-2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재밌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는 건데, 어렵기는요. ^^

2005-12-22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5-12-2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앗, 이렇게 송구할 데가... 그 책 아직 안 샀습니다. *ㅂ*

숨은아이 2005-12-2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으음, 무슨 웃음이실까...

숨은아이 2005-12-22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그러셨군요.

2005-12-22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5-12-22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페미니즘의 도전으로 할게요. 고맙습니다. <(__)>

내가없는 이 안 2005-12-2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살려 쓰고 싶지 않은 말이 꽤 된다, 는 말이 전 왜 이렇게 재밌죠? ^^

숨은아이 2005-12-26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이안님도 이 책 갖고 계시니 뒤쪽을 보면 저랑 같은 생각 하실걸요?

2005-12-26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5-12-26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39에 속삭이신 님/도착했군요. 워낙 늦게 보내서 언제 갈까 걱정했어요. 우리 내년엔 같이 이뻐져요. 하하하!

진주 2005-12-30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네요^^ 오쟁이지다란 말도 재미있고, 숨은아이님과 조선인님의 이야기 듣는 것도 재미있어요^^

숨은아이 2005-12-30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들어주셔서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