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원짜리 170000개.. | 할 말은 하고 살자
2005.08.31

 

몇주 전에도 밀린 임금 달라했더니, 그 중 일부인 160만원을 10원짜리 동전으로 160000개를 준 회사가 있었다. 그런 행동을 보니 아무튼 그 회사 나오길 잘했다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는 그 임금은 유일한 생활 수단 그 자체다. 그것을 제때 주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면 회사 운영 자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고, 또한 일하는 노동자들의 유일한 생활 수단을 확보해 주는 방법을 생각했어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상당한 문제다.

그런데 오늘 또 다른 회사는 170000개란다.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지켜지지 못했다면 충분한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느 약속이든 잘 지켜져야 하지만, 특히 꼭 지켜야만 하는 약속들이 있다. 임금 지급이 바로 그 예다.

아무튼,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미안해야 할 쪽은 회사가 아닐까 ? 그런데 돈을 주면서 10원짜리로 다 준다.

생각해 보자. 약속을 지키더라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성실하게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통장에 입금하면 되고, 또 수표나 지폐로 지급하면 된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라면, 위와 같이 10원짜리로 170000개를 주는 것이 성실하게 약속을 지킨 것일까 ?  내 생각엔 아닐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세상을 살 때 자주 접할 수밖에 없는 법률이 민법이다. 그 민법을 떠들어 보면 제일 처음에 나오는 것이 바로 권리와 의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이행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리 복잡할 것도 없다. 약속을 지키되 제대로 상대방이 만족스럽게 잘 지키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10원짜리 170000개를 지급하는 것은 위 원칙에 비추어 의무 이행을 제대로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

좀 더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분이 있어, 그 의무 이행을 거절하고 법원을 통해 이행 청구를 하고 이자까지 다 받아 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게 된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것이 사실상 정당하지가 않다. 그러니 순전히 기분나쁘다는 것이 이유로 보인다.

오늘의 예를 보자.

연봉에 퇴직금이고 휴가비가 다 들어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는데, 그것을 달라고 하니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휴가비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난 다음에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최소한 퇴직금이 연봉에 포함되어 있다는 계약은 논리모순이다. 퇴직금은 퇴직할 때 그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계산하여 주는 것인데, 왜 그게 연봉에 포함되어야 할까 ? 퇴직금은 퇴직할 때 주라고 하는 법을 무시한 것은 무효라는 견해(대법원은 그렇게 못을 박은지 오래다. 하지만 노동부라는 곳에서 뻘짓거리(엉뚱한 해석)를 하는 바람에 위와 같은 계약이 지금도 만연하고 있고 그래서 문제가 되고 있다)가 이미 오래전부터 거의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에도 왜 그런 계약을 했을까 ? .

자, 그렇다면 몰라서였든 의도적이든 법을 위반한 것은 분명한데, 그 이행을 그렇게 했다 ?

누가 더 기분 나빠야할까 ?

앞의 예에서 중년의 여성 노동자는 일부라도 그렇게 받은 게 어디냐면서 그 무거운 10원짜리를 은행으로 들고 갔단다. 그렇게라도 받아서 기분이 좋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난 기분 졸라 엿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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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10-28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월 말일에 쓴 것인데, 이제야 보다니.

물만두 2005-10-2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기분 나쁘다 ㅠ.ㅠ 이런 XXXX

진주 2005-10-28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너무 심했어요......동전으로......어떻게?

숨은아이 2005-10-28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 언니/그렇죠. 그런데 그렇게 동전으로 주려고 돈을 은행에서 바꿔오고 갯수를 세어 지급한 사람도 바로 그 회사의 다른 노동자겠죠... 그 노동자는 지시 받고 그 짓을 하면서 얼마나 한숨을 쉬었을까요.

숨은아이 2005-10-28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새 진주님 오셨네. ^^

瑚璉 2005-10-29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봉에 퇴직금이고 휴가비가 다 들어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는데, 그것을 달라고 하니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휴가비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난 다음에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최소한 퇴직금이 연봉에 포함되어 있다는 계약은 논리모순이다. 퇴직금은 퇴직할 때 그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계산하여 주는 것인데, 왜 그게 연봉에 포함되어야 할까 ? 퇴직금은 퇴직할 때 주라고 하는 법을 무시한 것은 무효라는 견해(대법원은 그렇게 못을 박은지 오래다. 하지만 노동부라는 곳에서 뻘짓거리(엉뚱한 해석)를 하는 바람에 위와 같은 계약이 지금도 만연하고 있고 그래서 문제가 되고 있다)가 이미 오래전부터 거의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에도 왜 그런 계약을 했을까 ? . "

노동문제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위에 제시된 지문을 근거로 따져보면 다음과 같은 쟁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1. 연봉에 퇴직금과 휴가비가 들어가 있는 계약 : 이런 식의 계약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한 가지 고려할 것은 계약을 맺을 당시 고용인과 피고용인 간의 양해가 있었느냐 하는 점입니다. 실지로 양자간의 양해가 있었다면 이런 계약을 무효라고 할 수 있을런지요?

2. 노동부의 해석 : 정부가 바보같은 일을 자주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이유는 가지고 있을 텐데 대법원의 판례에 반하는 유권해석을 한 근거가 무엇일까요?


숨은아이 2005-10-29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정무진님, 1번에 대해서는, 결국은 회사가 돈을 다 지급하기는 했으니(10원짜리 17만 개로... -.-) 회사측의 주장은 억지였던 것 같습니다. 2번은 그게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요, 정부 관서에는 업무 지침이라는 게 있어 공무원들은 그걸 원칙으로 생각한다는군요. 법은 모르고, 아무튼 지침대로 한다구요. 용인시청 공무원인 제 동생도 강변하더군요. 공무원들이 법이랑 판례 바뀌는 걸 다 어찌 아느냐구요. 모른다고 쳐요. 그래서 가르쳐주면 아 법이 바뀌었구나 하고 알아야 하는데, 법이 바뀌어도 지침이 안 바뀌었으니 안 된다고 그런대요. 결국 소송으로 이어져서 그 결과 지침이 잘못되었다는 게 판결로 드러나도 지침을 안 바꾸는 경우도 있어요. 과연 노동부 공무원들은 생각하는 인간인가 의심스러운 대목이죠.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노동부가 지침을 바꾸기로 했대요.

瑚璉 2005-10-29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글솜씨가 부족해서 논점을 제대로 말씀 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제기한 첫번째 논점은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계약시 합의가 있었냐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계약을 합니다. 이때 퇴직금을 적립해 둬야할텐데 모종의 사유로 고용인이 이렇게 하기 싫다고 하면 피고용인과 이른 바 딜을 하는거지요. '퇴직금을 적립하지 않고 월급에 포함시켜 주겠다'라고요. 이렇게 되면 불법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피고용인의 금전상 손해는 없는 셈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후에 불법이므로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라고 한다면 금전적인 면만 놓고 보면 고용인은 이중으로 지불을 한 셈이 되는 거지요(물론 탈법을 저지른 것이 일차적 잘못이겠지만요).

이런 측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애초의 합의 여부를 질문하여 보았습니다.

숨은아이 2005-10-2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잘못 알아들었군요. 죄송. ^^ 이번 경우에 대해 자세한 것은 저도 옆지기에게 물어봐야 알겠네요. 물어보고 말씀드릴게요.

그런데 제 경험이 비추어봤을 때, "연봉제"라 하면 고용주 측에서 일방적으로 퇴직금도 당연히 포함되는 걸로 생각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실제로는 명확한 합의가 없었는데도, 연봉제는 당연히 그러는 거 아니냐고 주장하는 거지요. 제가 전에 11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둔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한 달만 더 채우면 퇴직금 받을 수 있는데 저도 안타깝네요."라고 했더니, 사장 얼굴색이 변하더라고요. 그때 저나 다른 직원들이나, 퇴직금이 연봉에 포함된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거든요. 그러더니 제가 나간 뒤에, 남은 직원들에게 퇴직금도 연봉에 포함된다는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대요. 그 상황에서 그 회사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계약서에 서명 못 한다고 버티기가 쉽지 않지요. 겉으로는 "합의"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셈이죠.

숨은아이 2005-11-0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정무진님 답변이 늦었어요. 옆지기에게 물어봤더니,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건 강행 규정이기 때문에, 연봉에 퇴직금까지 포함된다는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불법이라는군요. 그러나 실제로는, 연봉이 퇴직금을 갈음할 만큼 충분히 만족스러운 사람이라면 법이 그러니 퇴직금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실상 연봉이 불만족스러워도 애초의 합의에 따라 순순히 물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일 듯...

瑚璉 2005-11-03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애초의 합의 여부에 따라 저 사업주의 심정에 공감하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숨은아이 2005-11-0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 경우에 따라 다 다르겠지요. 사업주에게 공감해주고 싶은 경우는 별로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