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교수가 최근 '한국전쟁은 북한 지도부의 의해 이루어진 통일전쟁'이라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지금 난 그의 주장 전체를 읽지 않았으며 다만 그의 주장에 대한 글과 그의 인터뷰를 읽어 알고 있는 정도다).
난 오래전부터 통일운동과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통일하자면서 한민족이 어쩌고 하는 것에 대해서, 달가워하지 않았다. 난 그들에게 물었다. 왜 통일하자는 거야 ? 통일이 뭐야 ?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 ? 왜 하나의 국가가 되어야 하는데 ? 하나의 민족이니까 ? 하나의 민족이면 꼭 통일해야 해 ? 민족과 국가라는 것이 뭐길래 그렇게 해야 해 ? 내 민족, 내 국가 하는 게 결국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 ? 알맹이가 빠졌다. 어떤 통일을 해야 하는지. 북한은 위대한 영도자의 지도력으로 순식간에 인민의 해방 세상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고, 인민의 자주성이 발현되어 누구나 다 그런 세상을 만들고자 들고 일어날 것으로 아는지도 모르겠다만은, 천만의 말씀이다.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뭔가 환상에 빠져 있는 느낌이다. 미국이 사라진다고 하면, 통일이 된다고 하면 뭐가 달라져야 하며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도대체 고민이 있는 것인지, 북한이 혁명기지로서 그래도 하면 된다는 것인가 ? 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지금도 그런 생각이 내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다. 아무튼 통일운동에 내 생각은 크게 변한 게 없다.
또 딴데로 갔군.
다시 강정구 교수 얘기로 돌아가자. 강정구 교수의 학문적 업적에 대해서는 말머리에 고백한 것처럼 난 잘 모른다. 다만 그가 통일운동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실천하는 학자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잘못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통일운동에 대한 위와 같은 생각은 자연스럽게 그의 주장에도 동조하기 어렵게 할 수 있고, 실제 그의 말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면 아마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의 삶이나 학문적 업적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든 그를 비난하거나 하려면 그의 주장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보기는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한국전쟁 당시로 돌아가자. 한국전쟁이 북한에 의한 전면전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아마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전면전은 북한에 의해서든 남한에 의해서든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 적어도 소위 우파라고 하는 세력이 한반도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갖지 못했다는 것, 당시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세력에 다수가 우호적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들에 의한 역사 발전의 기대 가능성이 상당하였다는 것, 그리고 당시에 그들의 활동과 정책은 그 가능성이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임을 보여주었다는 것, 또한 그들의 그러한 활동과 정책은 타당하였다는 것, 여기서 그들은 남한과 북한에 모두 존재했다는 것, 그럼에도 그에 저항하는 제국주의 세력과 그것을 등에 업고 기생했고 앞으로도 기생하려는 세력의 저항이 강력했으며(특히 남한에) 그로 인해 분쟁은 격화되었고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었다는 것 등등.. 당시 상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할 만한 것들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 한편 북한은 적어도 당시에는 위에서 말한 그들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과 남한은 그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이것을 부정한다면 더 이상 논의의 진전은 없게 된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논쟁의 일방은 대개 소위 보수세력이고 박정희 같은 이에게 우호적인데 그들은 제국주의와 기생한 것에 대해 여러 상황을 들이대고, 박정희 등의 행적에 대해서도 여러 논리를 들이대면서도, 왜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오로지 남침을 왜 인정 안해 ? 공산주의 되면 좋아 ? 등등 유치하기 그지없는 질문만 해대는 걸까 ?).
자, 이렇게 인정하고 나면 결론은 ? 난 한국전쟁이 한반도 내에서의 계급전쟁 또는 계급혁명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90년대 초 강의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담당 교수는 내 결론에 이의를 제기했으며, 나 역시 그의 이의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였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들이 그들에 저항하려는 세력을 향해 일으킨 전쟁이었고, 한반도 내에서는 그것이 북한에 의한 남한에 대한 전면전이었고, 북한의 의도은 한반도의 그들에 의한 통일이었다. 이승만 역시 북진통일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북한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역시 자본주의로의 흡수통일이 통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그것 역시 통일이라 한다면, 한국전쟁 역시 마찬가지로 보는 것이 상식적인 결론이 아닐까 ? 물론 단순히 통일전쟁이었다는 것에서 논의가 멈추어서는 안되겠지만, 일단 강정구 교수의 주장의 취지가 '북한 지도부에 의한 통일전쟁'이라면 그에 굳이 동의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그는 어떤 인터뷰에서 통일은 되어야 하는데 그 통일 후의 경제 체제는 '시장중심적 자본주의 경제체제'라고 했다. 그래서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역시 공부하는 학자군. 그렇다면 그를 법으로 처벌할 필요가 없겠군. 학자는 자기가 공부한 것을 밝힐 수 있으니까. 그러나 학자가 아니라 위에서 말한 그들이라면, 어차피 어느 사회든 자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법이라는 것이 존재의의를 갖는 것이니까 그 법이 힘을 갖는 것은 당연하니까, 어쩔 수 없구나 하겠지만 말이다(그렇다고 그런 법을 받아들이고자 함이 아니다. 법의 존재의의를 건조하게 말한 것 뿐이다).
고로 강정구 교수를 처벌하지 마라. 그냥 학자일 뿐인데.
참, 그건 그렇고.....대한민국은 그 누구도 경쟁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라고 한다. 경쟁이 없는 사회는 망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상은 왜 경쟁하면 안될까 ? 대한민국은 누구나 다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 헌법 어디에도 '사상의 자유'는 없는 것일까 ? 너무나 순진한 질문인가 ? 그렇다. 너무나 순진한 질문이다. 그래도 답을 듣고 싶다. 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