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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의 딸들, 한국 여성의 반쪽짜리 계보학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3
백문임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전에 KBS스페셜인가 MBC스페셜인가에서 한국에서 미국 아이비리그로 유학 간 학생들을 취재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하버드인지 예일인지 아무튼 짱짱한 대학교에 입학한 이 학생들은 서로 돕고 살자는 취지로 한국 유학생 모임을 결성해서 활동하는 모양이었다. 이들이 나름대로 한국 문화를 알리겠다며 “춘향전”을 짧게 각색해 학생회관에서 공연했다.
TV로 방영된 내용만 가지고서 이들이 공연한 내용을 다 파악했다고 하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이 정말 어떻게 해서 공연 내용을 결정하고 대본을 썼는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TV에서 간략히 보여준 바로는, 나는 이들이 한국 문화를 알린다며 왜 “춘향전”을 택했는지, 춘향전이 이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도령과 성춘향이 사랑했다, 이 도령이 과거 시험을 보려고 떠났다, 고을 사또 변학도가 춘향이에게 수청을 들라고 요구하며 고문했다, 춘향이는 고문을 견디며 이 도령을 기다렸다, 이 도령이 더 높은 벼슬을 받고 찾아와서 변학도를 혼내준다.”
이들의 공연은 이게 전부다. 이것은 춘향전의 앙상한 뼈다귀다. 이 앙상한 뼈다귀의 어디에 “한국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 걸까? 전문 연극인도 아닌 이들이 춘향이와 몽룡이의 로맨스를 아름답게 표현하지는 못했을 터이다. 춘향전의 감칠맛 나는 대사를 영어로 제대로 번역했을 리도 없고. 언뜻 보면 무기력하게 괴롭힘만 당하며 남자의 “구원”만 기다리는 춘향, 지위를 이용해 여자를 괴롭히는 관리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 관리를 혼내주는 이 도령도 역시 지위를 이용한다. 오리엔탈리즘에 기대지 않는다면, 현대 미국인 학생들이 여기서 무슨 “한국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변치 않는 사랑?
전에 TV의 코미디 프로에서 “캔디”를 울기만 하는 힘없는 소녀로 표현하고, 캔디의 문제는 오로지 남자의 도움을 받아 해결되는 양 묘사해서 격분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캔디 캔디>의 주인공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본래 춘향이는 나약하지 않다. 춘향이가 변학도에게 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도리어 춘향이가 재치와 학식을 뽐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춘향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저항한다.
하지만 솔직히,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은, <춘향전>이 무슨 이야기예요, 하고 누가 묻는다면, 바로 저 앙상한 뼈다귀를 그대로 읊지 않을까? 우리 머릿속의 춘향이는, 식민지 시대 이후 한국 여성이 살아온 방식과 대중 매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확대재생산해 형성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이다.
2.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다가, 중반 이후 논리와 주장이 되풀이되어 조금 지루했다. 그래도 다양한 신소설, 신파극, 영화의 장면 장면을 인용해, 그 인용문을 읽는 재미가 있어서 괜찮았다.
3.
가장 큰 성과는 “가부장의 재산권”이라는 개념을 배운 것이다. 전부터 일본군 위안부들에 대해 일본의 요인들이 망언을 하거나 미군 병사에게 “양공주”가 살해되거나... 하여 “국민적인 분노”가 일어날 때면, 나는 그 “분노”가 불편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가해진 국가적인 폭력, 인권 유린, 잃어버린 시간, 그리고 미군기지 근처에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받은 성적 학대와 착취, 살인이라는 폭력 등등에는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 “국민적 분노”라는 게, 마땅히 분노해야 할 그것들 때문에 나오는 것 같지가 않았다. 피해 여성의 아픔과 삶을 슬퍼해서 나오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어디서 나오는 거지? 그 이름을 붙이기 어려웠는데, 이 책에서 그 답을 가르쳐주었다. “가부장의 재산권 침해”에 따른 박탈감과 분노.
외세의 군사 폭력에 희생된 여성들을 가리킬 때 “우리 누이”라고 표현하는 것부터 남성의 시각을 전제로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부장의 허락을 받지 않고 그 집안 여성이 정조를 잃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가부장은 권력 관계에 따라 자기 집안 여성(딸이나 누이)의 정조를 상납하거나 거래하거나 하사한다. 그런데 외세의 성적 침탈은 바로 이러한 가부장의 권한을 침해한다. 몸서리나는 결론이다. 지은이는 (전에 따우님이 추천한 바 있는) <내셔널리즘과 젠더>란 책에 기대어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 <내셔널리즘과 젠더>, 조만간 읽어야겠다.
한 가지 오타 지적. 25쪽의 “뜨게질”은 “뜨개질”인 듯. 실로 뜨는 뜨개질이 아니라, 남의 속내를 떠보는 짓을 가리키는 뜨개질.
매우매우 아쉬운 점. 책 뒤에 “더 읽어야 할 자료들”로 제시된 책 중 태반이 절판되었다. 그중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미리 사두었으니 그나마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