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언론은 최근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미국 국제공화연구소와 영국 옥스퍼드 리서치 인터내셔널이 이라크 국민을 상대로 공동조사한 각국의 이라크 재건 기여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였다. 조사결과 이라크 재건에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로 일본이 가장 많은 26.4%를 차지, 미국의 20.4%를 웃돌며 1위로 꼽혔다. 뒤를 이어 프랑스 6.1%, 독일 4.1%, 영국 3.8%의 순서였다. 일부 일본언론은 자위대에 의한 부흥지원 활동, 일본정부의 자금원조에 대한 기대가 큰 데 따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말 아시아 대지진 발생시 일본의 움직임은 전광석화 같았다.
일본정부는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몰디브, 태국 등 4개국에 긴급원조대를 파견한 데 이어 자위대 호위함을 태국에 보내 원조 물자 전달 및 유해 수습을 맡겼다. 뒤이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피해국과 국제기관에 당시로서는 최고액인 5억달러의 무상원조 제공방침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아시아 국가로서 책임에 걸맞게 가능한 한 최대의 지원을 하겠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일본이 국제공헌을 기치로 내걸고 세계로 달려가고 있다. 미국 일극주의적 국제 상황에서 ‘세계의 경찰’인 미국과 정치·군사·경제 분야의 협력을 통해 ‘세계속의 일본’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세계로 질주하는 일본의 모습은 크게 보아 안보 기여와 정부개발원조(ODA)라는 두 바퀴로 이뤄지고 있다.
안보면에서 일본의 국제공헌은 요즘 ‘욱일승천’의 기세다. 도쿄의 한 관찰자는 “최근의 일본은 마치 ‘지금까지의 일본은 진짜 일본이 아니었다. 패전의 굴레 속에서 강요된 이념 속에 살았다’고 여기고 있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이는 일본의 각종 움직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일본은 지난해 작성한 ‘미래에의 안전보장·방위력 비전 보고서’와 ‘새 방위대강’에서 안보 개념을 기존의 자국방위에서 국제평화 환경 구축이란 이름 아래 세계로 눈을 돌렸다. 국제 테러 등 이른바 새로운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전수(專守) 방위’ 개념의 ‘기반적 방위력’이 폐기되고 국제분쟁에 적극 참여하는 ‘다기능·탄력적 방위력’의 개념이 도입됐다.
자위대의 국제협력 활동도 그간의 ‘부수적 임무’에서 ‘본래 임무’로 격상해 해외 파병 확대 노선을 명확히 했다. 1991년 걸프전때 지뢰제거를 위한 소해정 파견으로 시작된 자위대의 해외파병은 유엔평화유지활동(PKO) 명분으로 캄보디아(92년), 모잠비크(93년), 자이레(94년), 골란고원(96년)으로 이어졌다. 9·11 대미 테러공격 뒤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파병으로 계속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과정에서 ‘분쟁 해결수단으로 무력사용은 영원히 포기한다’는 평화헌법 해석을 조금씩 완화하면서 안보 금기를 하나씩 풀어헤치고 있다. 9·11테러 이후 세계전략의 재편을 꾀하는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오랜 숙원인 군사 대국화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은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 “미국은 미국식이 있고, 일본은 일본식이 있다. 전혀 다른 분야나 기능을 양국이 동시 추진하는 실험”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자위대 파병 등이 안보 기여라면 ODA는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영향력 확대다.
일본의 ODA는 1954년 아·태지역 경제사회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발족한 지역협력기관 ‘콜롬보 플랜’ 가맹으로 시작됐다. 일본 ODA백서(2004년판)에 따르면 54년부터 2003년까지 과거 50년동안 세계 각국에 지원한 액수는 2천2백10억달러에 이른다. 2004년 한해만도 85억7천8백만달러를 세계 각국에 쏟아부었을 정도다.
최근에는 ODA의 목적을 기존 인도주의 최우선에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발전 공헌 최우선’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민족·종교·역사 분쟁 다발 지역에 자금 지원을 집중하면서 일본이 세계평화 구축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크게 부각하겠다는 의도다. 자금제공 원칙도 민주화, 시장경제 도입, 기본적 인권·자유보장 등에 집중하면서 일본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일본의 이같은 외교전략의 종착점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다. 일본은 지난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상임이사국 진출 의지를 공식화한 데 이어 독일, 브라질, 인도 등과도 손을 잡고 티켓 확보에 열중하면서 전력투구 전략을 펴고 있다. 외무성내에는 유엔강화대책 대사가 임명됐고, 대책본부가 설치돼 유엔은 물론 주변국 설득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이 상임이사국 진출에 집착하는 것은 국력에 걸맞은 대접도 받고, 역할도 하겠다는 뜻이다.
일본의 유엔분담금은 19.3%로 미국(21.7%)에 이어 세계 2위다. 국제사회는 아직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일본은 국제공헌이 가속화될 경우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도쿄 외교소식통은 “일본은 냉전붕괴와 9·11테러 뒤 국제공헌을 내세워 전세계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즉각 과거의 영광 재현으로 해석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과거 회귀를 막았던 제도적 틀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도쿄|박용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