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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조형근 작가는 한림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파주 교하의 협동조합 책방에서 집필과 강연에 전념하고 있다. 그가 쓰는 책은 역사사회학, 문화, 과학 등을 아우른다.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다>는 300쪽 분량이지만 글자 크기나 자평을 보면 500쪽 분량 느낌이다.
총 1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음악, 과학 등에서 발전해 역사적 사실로 이어진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이 어떻게 문화를 이용해 제국주의의 도구로 활용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리샹란이다. 리샹란은 고아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일본인 부모 밑에 자랐다. "1933년 만주국 국가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가수 리샹란이 데뷔했다. 그녀는 일본인 야마구치 요시코였다."(p.25)
침략의 앞잡이 노릇을 한 리샹란은 일본인임을 증명하는 호적 서류가 도착하자 매국노라는 죄명이 성립하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 영화에 여러 편 출연했고, 미국에서 셜리 야마구치라는 이름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인물들. 이런 인물들을 조명하며 식민지 시대, 제국주의 시대 한중일의 다층적인 면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일제시기에 세계 일주를 한 조선인들도 있었다. 이순탁, 최린, 나혜석, 박인덕, 허헌.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박인덕의 예가 가장 흥미롭다. 서울에서 이화학당을 나온 박인덕은 이화학당에서 교사로 일했는데, 유관순의 지도교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31운동 당시 학생들을 선동한 혐의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고, 그해 말에 대한애국부인회 사건으로 다시 옥고를 치렀다. 3월 2일 박인덕의 이화학당 기숙사 방에서 만세 시위를 논의할 때 나헤석, 김마리아, 황애시덕 등이 함께했다.
박인덕은 미국 기독교여성단체의 후원을 받아 1926년 미국 조지아주의 웨슬리언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1928년부터 1931년, 1935년부터 1937년까지 35개국을 일주한다. 박인덕은 1930년에 귀국해 남편과 이혼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훗날 박인덕은 친일의 길에 나섰다. 1939년 황도주의 사상단체 '녹기연맹'에 참가했고,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이 결성될 때는 아예 발기인으로 참가해, 대의원과 부인대 지도 위원으로 활동했다.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사람이 훗날 친일을 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렇기 때문에 끝까지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더 존경스럽고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한다. 쉬운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 시대의 엄혹함, 선택의 무게감을 생각하게 된다. 역사에 대한 저자의 호기심에 박수를 보낸다.
저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에 대해 계속 파헤쳐 호기심을 유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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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