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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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지방시'가 유명해서 주저없이 선택하게 된 책.

저자의 실제적 대리운전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갑과 을, '대리인생'에 대한 생각에 공감하게 되었다.

내가 차가 없어서 대리를 부를 일이 없다 보니, 대리기사의 입장에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대리기사'야 말로 한국사회의 압축적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특히 타인을 주체로서 일으켜세우는 이들에 대한 사례에서 묘한 감동을 받았다. '선생님 차라고 생각하고 운전해 주세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기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하고 자신과 타인을 함께 주체의 언어로서...(10쪽)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더이상 온전한 나로서 현상을 바라보고 사유하지 않는다. 스스로 판단하고 질문하는 법을 점차 잊어가고 있다.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러한 통제에 익숙해진 대리인간을 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올해 촛불 대선을 바라보며 우리사회에서는 대리보다는 주체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태극기' 집회에 나간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가 안갔는데 36쪽에서 말한 '대리 국민'을 읽으며 이해가 조금 갔다. ('국가 시스템에 효율적으로 통제되면서도 자신을 주체로 믿는 동시에 사유하지 않고 모든 현상을 바라보는 국민은 지금의 국민 국가가 지향하는 '대리사회'의 이상향이다. 그렇게 '대리국민'이 된 이들은 국가를 위한 싸움에 스스로 나선다.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국가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자신들의 국가'를 위해 그에 순응하지 않는 이들과 몸소 싸워나간다.)


대리기사 문화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직업이란 걸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한국의 음주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수도권이나 아파트 단지라는 특수한 지형적 현상도 원인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운전면허증이라는 자격증이 얼마나 유용한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여자 운전대리가 적다는 것은 여전히 남녀차별적인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각자 또 같이 연대할 수 있는 대리기사들의 네트워크가 부럽기도 하다.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국가라는 단위를 벗어나더라도 그러한 시대의 논리를 몸에 새긴 개인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는 개인들을 주저앉힌다. 하지만 그것이 대리된 욕망임은 알지 못하고 주체로서 정의로운 행위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국가/조직 시스템에 편입되어 있는 모든 개인의 문제일 것이다. - P36

직접 ‘을의 공간‘으로 내려와 손을 내미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정말이지 많은 손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의 운전석에 앉은 이들을 주체로서 일으켜세운다. 그것은 따뜻한 한마디이거나 반갑게 맞이하는 인사와 미소이고 무엇보다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담배를 피우기 전에 음악을 틀기 전에 전화 통화 하기 전에 ‘죄송하지만 제가 무엇을 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 그것은 그들이 나를 그 공간의 한 주체로서 존중한다는 의미다. 그 자체로 나는 ‘함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P37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은 주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행위다. 그러고 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행동과 말은 통제되더라도 사유하는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 P77

우리가 합리적이라 믿는 시스템은 결국 노동자를 소외시킨다. 오히려 우리가 아는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조직일수록, 개인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늦게 지불한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출판사, 신문/잡지사, 대학, 방송국, 관공서와 같은 곳이 그렇다. 외부인에게는 더욱 복잡한 지급 절차를 거친다. 실제로 큰 조직일수록 "내부 결재가 복잡해서 지급일을 확인해 주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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