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 영화 '남영동 1985'의 주인공 김근태 이야기
방현석 지음 / 이야기공작소 / 2012년 11월
구판절판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한 번도 해명하지 않았지만 그가 걸어가게 될 길이 무엇인지는 너무나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이 그가 앞으로 살아갈 방법이었다. 그것이 그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지 않는 진정한 이유라는 걸 나는 최근에야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의 과거가 곧 그의 미래였다. -91쪽

이것은 아니었다. 나는 자신의 국민을 비열한 인간으로 만드는 정부의 도덕성에 대해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국민을 책임진 정부가 국민에게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고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92쪽

1980.5.20 그러나 광주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젊은이들이 대검에 난자당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공포에 질려 도망쳐 온 사람들은 지난밤 단 한잠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놀랍게도 공포를 넘어 광주의 민중들이 다시 악기들을 향해 행진하는 것은 스스로 짐승임을 승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물질적 형태라고는 없는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확인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쪽

"이날 이때까지 태일이가 죽을 때 한 약속 지키면서 사느라고 살았어. 수없이 매 맞고 감옥에 잽혀 가고, 그래서 남은 건 골병든 몸뚱이뿐 이지만 후회되는 것도 없어. 내가 걱정되고 두려운건 약자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는 지금 같은 세상에서 젊은 사람들이 뭘 배우고 어떻게 살아갈지 그거 하나라고. 쌍용자동차 기륭전자에서 하는거 봐. 힘없는 놈은 죽으라는 거잖아. 그래서 걱정이 돼서 기운만 나면 거기 가, 가서 내가 빌어. 제발 죽지는 말고 싸우라고. 너희는 죽으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부모들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사냐고. " 고 이소선-140쪽

나는 그 뒤에 그들이 어덯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가끔 생각이 날 때면 그들이 마음의 지옥에 살지는 않더라도 마음에 부담은 가지고 살아주기를 바란다. 죽임을 당한 자들의 슬픔은 살아남은 가족들의 삶 속에서 더욱 설펐다는 사실을 그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216쪽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1975.4.11 김상진 양심선언문 중-221쪽

모든 것이 끝나버린 줄 알았는데 동일방직 노조원들은 놀랍게도 다시 똘똘 뭉쳐 싸워 나가기 시작했다...동일방직 노조원들은 자신의 존재를 걸고 싸워 나갔다.-245쪽

윤상원은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며 우리는 오늘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자로 만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275쪽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붉은 피
두부처럼 잘려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찔렀지 왜 쏘았지 트럭에 실고 어디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스에 붉은 피 솟네-318쪽

9월 4일 8일 13일 각각 두차례씩 5일 10일 20일 25일 각각 한 차례씩 당했어 한번에 네시간에서 일곱시간씩 온몸을 꽁꽁 묶어 놓고 전기고문, 물고문, 고춧가루 물 먹이기, 소금물 먹이기 등 온갖 고문을 다 당했어-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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