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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평점 :
흔하지 않는 소재를 지루하지 않고 재치 있게 풀어나갔다. 우선 제목부터 눈길을 확 끈다.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스파이 - 007(더블오세븐). 사실 지금까지 본드영화는 스파이에 초점을 맞췄지 그 상대방인 본드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한국 여성이 본드걸이란 걸 상상도 해봤는가? 이 책은 여기서부터 우리의 고정관념을 흔든다.
본드와 뉴질랜드에서 모험을 즐겨 사랑에 빠진 미미양이 서울에 돌아오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본드는 너무도 평범한 한국 남자이다. 딱딱한 마룻바닥에서 축구경기를 시청하기도 하고 공포영화를 무서워하며 그다지 멋있지도 않다.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봐왔던 늠름하고 다가가기 힘든 본드가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여성 편력이 심한 책임감이 없는 그런 인물이다. 반면 주인공 미미는 퀴즈쇼에서 일등을 한 만물박사이고 어려서 도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덕분에 각종 무술을 연마한 평범하지만 의지의 한국여성이다. 본드한테 버림받은 미미는 복수를 위해 스파이가 되기를 결심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황당하고 개연성이 없을 것 같은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빨려 들어가는 이유는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인 주인공의 서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스파이 생활에 대한 환상이나 미화를 벗기고 어느 직장과 마찬가지로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우리의 주인공 미미는 완벽하지도 않으며 첫 번째 맡은 임무가 적에게 들키면서 실패로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습격당하는 본드를 구하는가 하면 이중 스파이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는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 몇 가지 설정이 있다. 가령 적의 스파이인 미스 플라워를 취조할 때 미미양은 흔히 쓰는 수법인 위협이나 고문이 아닌 지극히 여성적인 수법인 대화를 통해 적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칠 일간 쉬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미미양의 이야기를 듣고 미스 플라워도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한다. 오현종씨의 소설은 소재의 다양화와 한 여성의 자아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무겁지 않게 풀어나가는 점이 특징이다. 한 남자로 인해 뜻하지 않는 길을 걸어가게 되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홀로서기를 하는 미미양은 현대 여성의 자화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