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 융과 사라진 성 푸른숲 역사 동화 4
박효미 지음, 조승연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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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의 어린시절의 이야기다. 475년 백제가 고구려에 도성을 빼앗긴 시점이다. 

어린 여륭 왕자는 위례 남성인 몽촌토성에서 2 계절을 무너미 마을에 나와 산다. 성은 북쪽 풍납토성에 있다. 외숙부 목협만치네 집에 있으면서 칠기방의 백아리와 친하게 지낸다.

어느 날 백아리의 아버지 백도라가 칠기방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깨진 찻잔을 보고 융은 찻잎의 정체를 찾다가 독차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칠지도가 사라진 날 갑자기 성벽이 무너진다. 융이 괜한 의심을 산다. 성벽 복원을 위해 백성들이 부역을 한다. 

알고 보니 고구려의 세작 도림 스님이 칠지도를 훔치려 했지만 수혜 스님이 빼돌렸다. 수혜 스님에게 칠지도를 받은 융은 안전한 곳으로 칠지도를 옮긴다.


백제 역사 700여 년 가운데 500여 년 동안의 수도가 위례성, 지금의 서울이다. 

내용은 조금 엉상하고 재미는 없다.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릉인 사마 혹은 융의 어린시절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바둑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불필요한 설정 같다. 무령왕은 위례성이 고구려에 함락당한 지 26년쨰 되던 해인 501년에 왕위에 올랐다. 40세의 나이에. 

융은 왜의 작음 섬 카카라시마에서 태어나 백제로 보내졌다. 선대왕들이 고구려군과 귀족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걸 봤다. 무령왕은 왕위에 올라 반란 귀족 세력을 눌러 내부적으로 안정을 꾀했고 양나라와 신라, 왜 등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백제 부활의 기틑을 마련했다고 한다.



1971년 7월 공주 송산리 고분의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왕릉이 발굴되었다. 청회색 섬록암에 새겨진 묘지석 글귀는 능의 주인이 무령왕임을 고했다.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62세인 계묘년(서기 523년) 5월 7일 붕어하시어 을사년 (서기 525)년 8월 12일 대묘에 모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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