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글쓰기 - 당신의 노동을 쓰는 나의 노동에 관하여
희정 지음 / 오월의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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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부쩍 관심이 생겼다. 

논픽션을 좋아하지만 내가 직접 기록을 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남의 쓴 기록을 읽는 건 좋아한다. 

르포, 인터뷰 집. 물론 르포보다 인터뷰 집이 단편적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건 몇 배로 더 힘들 것 같다.


희정 작가는 대학교 졸업 이후 학교의 청소 노동자들을 인터뷰 하면서 본격적으로 기록노동자의 길을 걸었다. 


나이대 별로 기록노동자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꼼꼼이 알려주고 있다. 주로 싸우는 사람을 기록하는 저자. 


질문을 받은 사람은 침묵하거나 속에 담긴 것과 다른 말을 꺼낸다. 그렇게 말문이 막힌 사람들을 두고 세상은 '소외된 사람' '목소리가 없는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 명명한다. 그제야 기록자는 '그'를 만나러 간다. 가서 묻는다. 자신이 그에게 첫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그러다가 깨닫게 된다. 자신 또한 세상의 질문과 다를 바 없는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33쪽)


저자는 솔직하게 망친 경험도 서술한다. 질문의 전제가 자신의 고정관념을 나타내서, 무지해서, 경험이 부족해서.  

당연함은 특권이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나의 보편적 경험은 달라진다. 


20대 때는 라포 형성을 위해 억지로 ㄹ웃기도 하고, '무난한 여자'인 척 한다. 나와 달라서 불편함을 느껴서 입을 열지 않은 경우도 있다.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의 217일 파업,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의 네 번째 해고, 퀴어 세 사람의 A/S 인터뷰, 대학 청소 노동자 노조 설립 등을 다루고 있다.

 A/S 인터뷰 집이 참 좋다. 그렇게 치열하게 산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들은 해고 통고 앞에 아쉬울 것도, 절망스러울 것도 없다. "해고한다면 겁낼 줄 아냐."  "쌓여온 게 폭발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아줌마'고 비정규직이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그게 있어, 울분이. 그 열기가 폭발력이 있었어요." (119쪽)


노화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인데, 나이에 이런 비하가 따라붙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비하의 대상이 되는 일을 유예하려면 '돈'이 있거나 돈으로 형성한 절음(안티-에이징)이 있어야 한다. (122쪽)


"우리의 지나온 삶 자체가, 용역 히ㅗ사에 있으면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는 것을 본인(도로공사)들이 더 잘 알아요."

자리 한 켠, 설 곳 하나 마련하려고 치열하게 살아냈다. 그 전력으로 이들은 자신들을 단순무식으로 보는 시선, 자신들의 싸움을 막무가내로 보는 시선, 자신들의 노동을 아무나 할 수 있는 단순반복으로 보는 시선을 거부했다.

옆 사람과 함께 가는 일, 뭉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들이 치열하게 살아온 과정에서 획득한 교훈이다. 함께했고, 조직했고, 그러므로 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25쪽)


 

정확히 관찰되고 기록된 현실은 언제나 가장 대담한 작가의 상상력보다 더 상상력이 풍부하고 흥미진진하다. (귄터 발라프)



그의 인생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와 나눈 한두 차례의 인터뷰가 아니었다. 나를 거쳐 세상에 쏟아낸 몇 마디 말도 아니다. 그가 말하고 움직이고 관계 맺어온 시간 사이에 나와의 만남도 놓여 있을 뿐이다. (105쪽)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온다. 아무래도 억울해서 목소리를 내다보면 그 목소리를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순간 사람이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님을 각성한다. 본인도 옆 사람을 위해 좀 더 버텨준다. 그렇게 서로를 버티게 해준 사람들의 행렬을 뒤쫓아 나도 녹음기와 노트북을 챙겨 들고 간다. 그제야, 그러니 내가 보게 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겪어내고 있는(또는 겪어낸) 사람이다.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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