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이야기, 제22회 양성평등미디어상 우수상 수상작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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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을 때까지 공감가지 않은 내용이 없었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역사는 태초부터 이어져온 것이란 걸 그림을 통해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여성은 그저 남성의 소유물이고, 아내 경매, 노예, 족쇄, 성폭력 등은 만연했다. 그나마 현재가 여성에게 가장 안전한 시대라고나 할까.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고 원통할 일인가. 페미니즘이 없어지려면 아직 멀었다. 여성해방, 남녀 차별, 여성 혐오가 사라지지 전에 페미니즘은 더 확산해 나가야 한다.

여성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 힘 없고 나약하고 귀여운 이미지는 거부해야 한다. 나이팅게일의 별명을 '백의의 천사'가 아닌 '망치를 든 여인'으로 바꿔야 하고 여성을 대상화한 작품들을 재평가해야 한다. 

루벤스, 피카소, 렘브란트, 디킨스, 모네, 고갱, 자코메티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 중의 하나는 노예제를 반대했던 '진보' 운동가 토머스 데이의 '아내 만들기' 프로젝트다. 고아 소녀를 구매해 억지로 자신의 여성관에 맞춰 기른 뒤 아내로 삼으려 했다. 다행히도 그 고아 사브리나는 하녀 훈련을 받는 것으로 알고 데이의 지시를 따랐지만 진짜 의도를 간파하고 아내답지 않게 행동해서 아내 실험에 탈락했다. 하지만 지금도 '트로피 와이프'라는 말이 있듯이 여성을 길들이려는 남성들의 왜곡된 권력욕은 만연하다. 

루벤스도  53세의 나이에 16세 아내를 맞이했다. 그리고 자신과 아내의 얼굴을 자신의 그림에 투영했다. 이런 작품을 외설로 봐야지 예술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앞으로 이런 그림을 미술관에서 보지 않을 날이 언제 올까?


자코메티도 22살 연하인 아내를 구했다. 강박적으로 검소한 삶을 강요한 자코메티 때문에 아내는 수도도 실내 화장실도 없는 7평 남짓한 작업실에 살아야 했다. 

세상은 남편 돈 쓰는 아내에겐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하다. 반면 아내의 시간을 가로채는 남편에겐 너무나  관대하다. 아내의 삶과 시간을 많이 착취한 남편일수록  더 성공하게 되기에, 가부장 사회는 아내의 헌실을 더 독려하기도 한다.  (154쪽)

여성을 그저 남편 성장의 도구로 보는 역사 때문에 희생된 여성들이 얼마나 많을까?


또한 고전 그림 중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종의 포르노그래피라고 봐야한다. 남성들의 관음증. 예술과 신화라는 포장으로 사디스트적인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옛날에는 가부장 남성에게 순종하는 고정된 성역할을 거부하거나, 성격이 너무 사납거나 공격적인 여성을 '병든' 것으로 간주했다. 정신 병원, 마녀, 결혼은 모두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여성 화가들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조선 시대 엘리자베스 키스는 한국의 빨래 하는 여인들을 목판화로 남겼다. (함흥의 어느 주부)

17세기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 18세기 베네치아에서 활동한 줄리아 라마 스위스 화가 앙겔리카 카우프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엘리자베스 시달, 베르트 모리조, 안나도로테아 테르부슈, 로테 라저슈타인, 실비아 슬레이, 메리 모저, 판위량.

특히 판위량은 고아였고 혈육이라고는 아편쟁이 도박중독자 외삼촌뿐. 그는 조카를 기방으로 팔아넘겼다. 위량은 도망도 치고 자살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1913년 판짠화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뀐다. 판짠화와 결혼하고 글을 배우고 상하이미술전문학교에 입학을 한다. 1921년 국비장학생으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1927년 이탈리아 국제미술전람회에 <나녀>가 중국인 최초로 3등에 당선된다. 1928년 중국으로 금의환향했지만 창녀라는 꼬리표 때문에 1937년 프랑스로 떠난다. 중국 여성 최초로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을 입성했다. 1955년이 되어서야 그녀의 유작이 중국에 들어왔다.


남자의 적은 남자

와 같은 말로 받아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두팔체 - 혼자 사는 여성이 이웃에게 층간소음 항의 같은 생활민팔체
유엔여성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의 3분의 1이 육체적 성적 폭력을 겪었는데, 가해자는 대부분 친밀한 파트너였다. 2012년 살해된 여성 2명 중 1명은 배우자나 남성 가족에 의해 숨졌으며 가정폭력 희생자의 85퍼센트는 여성이었다. 법원도 남자 편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맞아 죽어도 사법부는 고의가 아니었다며 선처한다. 매일 같이 두들겨 맞던 아내가 어느 날 대응하다 남편을 죽이면 고의라며 엄벌한다. 남자 없이 살아도 위험하고 남자와 함께 살아도 위험하다. 여성이 안전한 자리는 과연 어디인가. - P174

그래서 여자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진짜 효과 있는‘ 생존 요령을 따로 은밀히 교육받는다.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불이랴!‘라고 외치라고.아이에게 끌려가더라도 주변 가게의 물건들을 부수고 돌멩이로 유리창을 깨라고 조언했다. 그러면 가게 주인이 배상을 받기 우해서라도 아이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막을 거라고. 여자아이들에게 ‘만지지 마세요‘를 말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남자아이들에게 ‘허락 없이 만지면 안 돼‘라고 가르치는 게 먼저 아닐까. 가해자가 없으면 피해자도 없어지게 마련이니까. - P176

그 여자가 창녀처럼 옷을 입은 게 아니야. 네가 강간범처럼 생각한 거지.
가해자답게 ‘셀프 용서‘하지 말기를, 가해자답게 숨죽이고 살기를, 가해자답게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건 생각도 하지 않기를, 가해자는 가해자답게 살도록 압박하자. 치욕은 성폭력 피해자의 짐이 아니라 가해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 P181

끈끈한 남성연대의 존재는 선배 남성이 사회 초년생 후배 남성에게 종종 건네는 다음과 같은 충고에서도 확인된다. "앞으로 세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술 조심, 노름 조심, 여자 조심." 이 나열 안에서 여성은 인격체라기보다 술 노름과 더불어 남성의 앞길을 망치는 하나의 사물, 유혹, 함정으로 자리할 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여성에게 남성은 어떤 존재일까.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가해자가 되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는 남성의 입장과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선택할 수 없는 여성의 입장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 P207

하물며 성폭력 가해자가 하필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고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면, 즉시 피해자가 꽃뱀으로 몰리는 판국에 말이다. 오히려 그토록 성 인지적 관점이 부족했던 사람이 ‘잘나갔던‘ 사회가 어딘가 단닪디 망가져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더욱 치열하게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구조적인 젠더 권력 문제를 단순한 개인의 스캔들로 축소하는 발언만 여전히 만연한 것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 멀었다. - P207

여싱이 받는 모든 교육은 남성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남성의 마음에 들고, 남성에게 이로우며, 남성에게 사랑을 받고, 남성을 자랑스러워하고, 아들을 키우고, 돌보고, 조언하고, 위로하며, 쾌적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여성의 의무이고 어릴 때부터 여성이 배워야 하는 것이다. 가부장 남성의 기대에서 벗어나 공부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새 길‘을 개척하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위기감을 느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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