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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평점 :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소설은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인간 장강명은 참 재밌다. 주변에 있는 것 같으면서 없는 캐릭터다. 특히 이 나이 또래 남성군에 보기 드문 인물이다.
일단 결혼했지만 아이를 안 갖는 것도 흔치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 호주로 가자 기다리는 것이나 결혼식 대신 혼인 신고만 하고, 아내와 시댁이 안 만나도 이해하는 한국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작가의 결혼관도 나와 비슷하다. (운명적 사랑, 백년해로라는 개념을 우리는 운명을 구속함으로써 운명을 만든다. 188쪽)
에세이를 통해 작가님은 특이한 병? - 탄수화물 먹으면 잠이 오는 병-이 있다는 사실, 맥주애호가라는 것, 참 생각이 많다는 것.
아내와 둘의 대화를 보면 참 진지하다.
난 그런 생각을 하긴 하지만 누군가와 그렇게 진지한 대화는 잘 안 하는 것 같다.
소소한 에피소드도 진짜 재밌다. 와이프의 바닐라 칩, 바나나 칩 일화로 명사를 마구 헷갈리는 경우는 우리 엄마와 똑같다. 가끔 나도 그런 증상이 있다. 이거 생각보다 흔한 일이구나..ㅎㅎㅎ
사람마다 여행 스타일이 다르지만 난 절대 많이 따지는 편이 아니다. HJ처럼 강박적으로 블로그 보고, 음식점 물색하는 건 진짜 나와 안 맞다.
작가는 2014년 11월 보라카이 갔지만 나도 생각해보니 2015년 여름에 친구와 보라카이 갔었다.
그때도 워낙 여행객들이 많아서 생각보다 번잡했다. 몇 년 전에 필리핀 정부에서 보라카이 환경 정화를 위해 6개월 간 폐쇄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백 배 천 배 잘한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보라카이 풍경이 새록새록 떠 올라 좋았다.
나도 기회되면 꼭 다시 가고 싶었다. 사실 거기 부동산을 사서 여름 휴양지로 삼고 싶었다.(지금은 부동산 값이 엄청 올랐겠지만)
작가의 다음 에세이가 기대된다. <한국이 싫어서>를 꼭 읽어보고 싶다.
나는 이 여행이 인생에 대한 비유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의 중반을 넘기고서야 어떻게 하면 시간을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시작하면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생각하면서.
내 생각에 결혼의 핵심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지키겠다는 선언에 있었다. 그 선언을 더 넓은 세상에 할수록 우리의 사랑은 더 굳건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식은 거부하되 혼인신고는 했다. 우리는 국가를 향해 선언했다. 이 약속을 어기게 되면 그 상처가 반드시 어느 국가 서류에 흔적을 남기게 만들었다. 이것이 허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지키기 어려운 구속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고, 사제 서품을 통해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하고, 사제복을 입고 자신이 선언자임을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때문이다. 허구와, 허구가 만들어 내는 구속을 받아들일 때 의미 있는 삶이 시작된다. - P188
부모가 아닌 상태로 늙는다는 것도 이전에 내가 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부모로 사는 사람은 부모가 아닌 사람이 자녀 양육에 쓰지 않은 에너지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가능성을 펼칠 수 있을지 결코 알 수 없다. 자녀를 낳은 걸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울지 몰라도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 때 가서 다 큰 자식을 갑자기 내 자식 아니라며 내칠 수도 없다. - P171
우리가 물 밑에 들어갔다 나온 뒤 한동안 말이 없었던 이유는 수면 아래가 정말로 처음 보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신세계를 체험하면 새로운 감각들에 뇌가 놀라게 되고, 익숙한 구세계를 달리 보게 되고, 신세계의 영토만큼 넓어진 머릿속 세계지도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찾게 된다. 어릴 때는 그런 일들이 매일 일어났다. 하루하루가 열광과 감탄, 발견과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10대가 되고 20대가 되자 신세계라고 할 정도의 새로운 경험이 확 줄어들었다. 진짜 새로운 경험은 많지 않다.첫 비행은 대개 비행기 좌석에 안락하게 앉아서 경험하기 마련이고, 그 경험은 고속버스를 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른이 되자 그런 경험은 거의 남지 않았다. 어떤 신세계는 의도적으로 피했다. 출산이라든가 창업 같은 것. - P154
왜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는지, 왜 자전거를 타고, 왜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며 러닝하이를 느끼려 하는지. 사람들은 멍해지려고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피로하게 만든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대신 괴로움에 빠뜨린다. 이것이 선악과의 정체다. 생각하기로부터 해방. - P122
왜 이런 미친 짓거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 ㄱ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이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기 때문이다. 구세대가 미친 짓거리의 뼈대를 세우고, 신세대가 거기에 살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친 짓거리는 온 사회 구성원이 거기에 협조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점점 더 강화될 뿐이다. 사교육이나 학벌 같은 문제가 그렇다. - P49
효도는 셀프, 왕가네 식구들. 기타노 다케시 : 가족은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
우리 부모님이 특별히 나쁜 분들은 아니다. 사실 이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이 공통으로 갖는 문제다. 자식들의 인생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 자식이 타인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자식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신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는것. 그리고 나는 그 부모들을 이해한다. 그런 폭력의 원인은 대부분 사랑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식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위험에 빠지는 광경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안락한 감옥을 만들어 자식을 그 안에 가두고 싶어 한다. 과보호. 그리고 그 감옥 안에 갇혀 있는 한 자식은 영원히 성인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 - P37
그러나 10년 조금 넘게 일한 뒤에, 거기서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건 내 길이 아니다‘라고 깨닫게 되는 때가 왔다. 기자라는 일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자기 혐오와 회의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 업무 자체가 양립할 수 없는 가치(예를 들어 ‘신속‘과 ‘정확‘같은 것)을 하나의 이야기에, 또 한 개인에게 과도하게 요구한다. 단순히 노동 강도만 높은 게 아니라 사람을 계속해서 강한 도덕적 긴장 상태로 몰아넣는다. 그와 별도로 회사가 나아가는 방향이나 논조가 나와 맞지 않아 고민이 될때도 있었고, 하루만 지나만 잊힐 기사에 내 삶을 바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신문은 사양산업이 되었고, 우울하고 패배적인 공기가 업계에 가득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간부들이 그런 절박함 때문에 실수를 자주 했다. 사람이 절박해지만 시야가 좁아지고 생각이 완고해지기 마련이다. 회사를 그만뒀을 때는 이미 소설가 등단을 한 상태였다. 1년 반동안 장편소설 5편 썼다. - P20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마흔이 되어서까지 그런 걸 고민한다는 게 이상했다.
2001년 만나 2004년 헤어지고 2009년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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