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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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생. 2011년 사망. 80세에 사망했다.

이렇게 625에 대해 사실적으로 기억하고 쓴 작가는 드물다.

역사책에서 볼 수 없는 사실들...작가는 사춘기라 불리는 시절 민족의 격동기였다. 식민지시대 입학해서 같은 학교에서 해방을 맞고 미군정시대를 거쳐 남한의 독립을 이룩했다. 어리둥절할 정도로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궁핍과 불안이었다고 한다. 내남없이 하루하루의 삶은 고달프고 남루했다. 학교에서는 열심히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가르쳤고, 세상에도 그 소리가 넘쳤지만 그걸 써먹는 일엔 다들 서툴렀다. 

가령 중학교 재학 중에 해방을 맞았는데 8월이었다. 다음 해 봄에 진급을 시키지 않고 일 년 있다가 9월에 진급 시켰다고 한다. 식민지를 벗어난 독립국에 맞는 국정교과서나 커리큘럼이 정해지기도 전, 단지 해방됬을 뿐인 혼란기에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한다. 그 후 몇 년 동안 8월을 학기말로 하고 9월에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과도 조치로 그해말 5월을 학기말로 했다. 졸업식도 5월에 있었고 대학입시도 5월에 이미 치르고 나서 합격했다고 한다. 대학 입학식은 6월 초에 있었다. 1950년 6월. 입학식을 치르고 며칠 다니지도 않아 전쟁이 일어났다.


작가에게 625는 결정적 계기였다. 625 경험이 없었으면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늦은 나이에 소설이라는 쓰면서 위안을 얻고 치유받은 것 같다고 했다.


전쟁 때 오빠까 다리를 다쳐 작가가 직접 부실한 손수래를 끌고 피난갔다고 한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해 허술한 집에 들어가 인민군과 중공군에 들킬까봐 불도 못 때고 밥도 짓지 못해 고생한 경험을 생생히 전달한다. 작가는 그 후 일어난 일들은 날짜별로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 겨울의 추위가 냉동보관시킨 기억은 마치 장구한 세월을 냉동보관된 식품처럼 썩은 것보다 더 기분 나쁜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으니 이건 기억이 아니라 차라리 질병이다라고 한다. (65)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 할 것 천지였다.



남대문 입납. 입납이란 편지를 드린다는 뜻이다. 그 시절엔 편지 겉봉에 흔히 쓰던 문자였다. 그러니까 남대문 입납은 주소를 정확하게 쓰지 않고 남대문이라고만 쓴 편지를 가리키는 말로 주소도 모르고 사람을 찾아 나서는 사람을 조롱하거나 핀잔 줄 때 쓰는 말이었다. - P71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레이몬드 카버 대성당
영화 Away from her

삶이란 존엄한 건지, 치사한 건지 이 나이에도 잘 모르겠다.
일본의 친절이 우월감의 소산이라면 우리의 불친절은 열등감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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