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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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알쓸신잡3에서 유시민 작가가 우리나라 집단주의를 비판하고 개인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 기억난다. 

100프로 동감한다. 사람들이 도시에 사는 이유가 뭘까? 바로 농촌사회의 지나친 공동체주의, 집단주의 때문 이닐까? 인간은 어느 정도 독립된 공간/익명성이 필요하다. 관계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연대는 바로 개인주의에서 나온다. 합리적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한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톨레랑스, 즉 차이에 대한 용인, 소수자 보호, 다양성의 존중은 보다 많은 개인들이 주눅들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37쪽)


원래 행복의 원천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인데 집단주의 문화가 오히려 불행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요즘은 집단주의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70%는 넘는 것 같다. 제발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해주자.


최근에 <카운터스>라는 다큐를 봤다. 일본의 혐한 분위기에서 한 청년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 친하게 지내요"

사람 사는 거, 복잡하지 않다. 서로 다르더라도 인정하고 간섭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놔두면 된다. 

왜 굳이 반감을 드러낼까? 


"제발 우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요. 어차피 한동안은 이 땅에 다 같이 발붙이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니 서로 노력을 해나가자고요"


작가는 판사이기 때문에 그 어떤 직업보다 중립적이어야 하고 쉽게 말을 믿지 않고 비판적이어야 한다. 

작가의 가치관과 나의 가치관이 한 80% 일치하는 것 같다.

앞으로는 이런 개인주의가 당연한 것처럼 인식될 수 있게 이와 같은 책이 안 나오면 좋겠다. 그런 세상에 살고 싶다.



누구나 자기 몫의 아픔을 안고 살고 있다. 13쪽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
한 개인으로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인간이 가장 행복을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인간이다.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51쪽
북미나 유럽 국가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는 높은 소득보다 개인주의적 문화 때문.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다(56쪽)
개미연구자 에드워드 윌슨 : 이론은 훌륜한데 종이 틀렸다.

황현산 :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세 황금문 :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코끼리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과 맞서 싸우기보다 슬쩍 다른 길로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거창하고 근본적인 해결책만 고집하지 않고 당장 개선가능한 작은 방법들을 바로 적용했고 작지만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켰다. (163쪽)
조너선 하이트 : 사람들은 도덕적 판단을 하는 데 있어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의 의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함.
68혁명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저항의 목적인 휴머니즘보다 저항 그 자체를 더 신성시하는 근본주의에 빠져?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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