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라이프
이케자와 나쓰키 지음, 김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그러니까 이제, 소설가는 현대 문물과 동떨어진 사람이라거나 우주나 물리 같은 것과는 학교 다닐 때부터 참 멀었던 사람이라거나 하는 생각은 바뀌어야 마땅하다.

그다지 많지 않은 내 독서 목록들을 들춰봐도, 수학자 과학자 물리학자 출신들이 꽤 되는데다가, 그 학문들이 사유를 하고 그것들을 논리정연하게 풀어내는 과정이 필요한 학문이어서 더더욱 그런지, 이 사람들의 글은 어디 다른데서 들었다면 헛소리 같았을 이야기도 아주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솜씨 - 소설가라면 무릇 갖추어야 하는 - 가 일품이라는 것이 (독자에게는 물론) 즐거운 공통점이다.

이 작가 또한 그런 즐거움을 준 고마운 분.

소설을 읽으면서, 아 맞아 나는 우주 안의 조그마한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지, 라고 여러번 자각했던 소설은, 이 작품 말고는 그 유명한 '어린왕자' 뿐인 나에게, 스틸라이프는 묘하면서도 여운이 긴 작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눈에게 올라가는 것이라는 설정을 할만큼 엉뚱하면서도 환상적이다가 공금횡령과 증권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미스테리 느낌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벚꽃놀이와 자아 찾기로 되돌아가는, 은근히 발칙한 요 아저씨야.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만큼 고집이 세실 것 같아서.

장편은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고 단편은 읽을만하면 뚝 끊어져서 별로라는 독자가 있다면, 이렇게 중편 2개가 사이좋게 들어가 있는 작품집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처럼 두 작품이 고루 재미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기본.

첫번 째 스틸라이프가 다소 엉뚱한 소재였다면, 두번 째 작품인 '난 갈매기다'는 싱글파파와 딸이 등장하면서 조금은 일반화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파파는 핵무기 프로그램에 관련되어 있는 무언가 중요한 과학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면서 끊임없이 인간 존재를 우주 안에서 바라보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 게다가 러시아사람을 만나서 하는 대화를 보라! 역시 이 작가의 고집이 뚜렷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는 소소한 재미를 준다.

우주는 광대하고 나는 그 안의 점만도 못할만큼 작다. 그래도 내가 없어지면 우주도 없어진다. 아 ,인간, 그 지겹고도 알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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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가 되면 남는 시간 덕에 책을 꽤 많이 읽겠지 라고 생각한 건, (언제나 그래왔듯) 섣부른 예측을 단순히 하고 그대로 될 줄 아는 내 아둔한 성격 탓이다.

그러나 실제 한달 가까이 책을 별로 읽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도 조금이나마 심각하거나 두꺼운 책은 엄두도 안나는, 그러니까 나는 그런 심각한 것을 한번도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산다고 믿고 싶은 억지스러운 저항, 같은 것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아무튼 그런 와중에 그나마 편하게 들춰볼만한 책이라면, 그건 이런 책.

 

 

 

 

 

 

 

솔직히 수상작이라는 전경린씨의 작품은 내 성정에 맞지 않았다. 우선 여자가 남자에게 디립다 맞는 내용이 등장하는 건 무조건 싫어한다. 그리고 전경린씨 문체의 심각함이, 자꾸 예의 어린아이스럽게 살고 싶어하는 내 저항심을 건드렸다.

작가들의 이름을 보면, 다 알만한 분들. 우리 시대에 상을 타는 작가들은 이렇게 딱 정해져있는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그렇게 눈이 번쩍 뜨일만큼 멋진 작품이 없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유독 마음을 끈 작품은, 의외로 그렇게나 나하고 안 맞는다고 외치고 다녔던 김연수 작가의 <내겐 휴가가 필요해>였다. 소재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도, 소설 속 대화에서 나는 감칠맛도, 무엇보다도 그토록 휴가가 필요하다는 절실함도, 모두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아, 김연수를 역시 잘못 봐 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블로그에서 이런 글(http://larvatus.egloos.com/3960109) 을 읽으니, 이사람은 좋은 작가 이전에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짧은 글에서 이런 매력을 발산하는 그가, 긴 글에선 왜 나를 사로잡지 못하는지, 흠 그것이 여전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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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8-10-3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그거예요. 김연수는, 작품보다는 사람이 좋다고 느껴요. 좋은 사람 같다는, 작품을 쓸 때도 어쨌거나 참 노력한다는 그게 든든함을 주는 작가, 라는 생각. 해서 장편보다는 단편에서, 단편보다는 조각산문에서 더 매력을 발산한다는, 작가 입장에선 좀 아플 수도 있는 장점을 가진 작가다 싶지요(제 개인적 견해일 뿐이지만). 그래서 결론은 새로 나온 장편 소설을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어요. 여행할 권리는 사고 싶다가도, 얼마전 책을 말하다에서 변 감독님이 너무 지나치게 좋아하시기에 오히려 제게 반감을 사버렸다는..

회사 관둔다고 마구 책을 읽는 건 아니라는 거, 무지 공감. ㅋㅋ 전 잠만 는 거 같아요 :)

치니 2008-10-30 12:14   좋아요 0 | URL
카이레님과 거의 99% 공감 중!
그것이 작가 입장에선 좀 아플 수도 있는 장점을 가진 작가다, 개인적 견해라고 하시지만 정말 예리하십니다. 아무튼 노력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존경스럽고, 반면 같은 부류인 것 같아서 편안하고, 그런 마음이 종종 들어요.
이번 장편에 대한 서론 비슷한 걸 작가의 블로그에서 봤던 기억이 있는데, 내용이 그닥 끌리지 않았어서, 나중에 끌리면 볼 생각입니다. (또 뒷북 칠테죠)
여행할 권리도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아직 못봤고, 지금 보면 여행 하고 싶어질까봐 자제 중. -_ㅠ

저도 잠 엄청 늘었어요, 하지만 일부러 안 일어나고 눈이 떠지는대로 일어나는 것이 매일 아침 여전히 너무 좋아요. ㅋㅋ

니나 2008-10-3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치고는 그놈의 사랑타령을 좀 맛있게 해줘서 김연수가 좋아요 하하하

치니 2008-10-30 20:39   좋아요 0 | URL
네, 어떤 면으로는 맛있다고 생각되지만...어떤 틀을 못 벗지 않나 하는 생각도...^-^;

토니 2008-11-10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드디어 인터넷 설치했어요. ^^ 근데 생각만큼 자주 사용 안하게 되네요. 책도 서울 발령나면 무자게 많이 읽을 줄 알았는데..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딸랑 다섯권 입니다요. ㅋㅋ 요즘엔 에이미와인하우스에 푹빠져있어서 책이 더욱 안 들어와요.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꼭 읽는 편인데 음악이 시들해지면 그때 꼭 읽어 볼께요. 그럼

치니 2008-11-11 12:18   좋아요 0 | URL
에이미와인하우스가 뭐지? 했는데 아마 음악인가보네요.
푹 빠지실 정도라니 한번 들어봐야겠어요.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프롤로그를 읽은 순간부터 내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 선망과 질투. 이 사람은 대체 왜 이리 똑똑한거야! 타고나면서부터 다른 자질이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달까. 다음 느낌은, 그래서 이 하나의 똑똑한 엘리트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의혹. 그리고 그나마 아주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 우석훈씨의 "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어렴풋하게 문제점들만 알았었다면, 보다 개념적이고 광범위하지만, 각각의 사례가 역사적으로 설명된 것에서 구체적인 희망을 제시해주는 이 책을 쓴 저자에게 꽤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호흡이 길었던 독서를 마침. 이제는 나, 치니도 티비에서 외환 위기와 주가 폭등 따위의 이야기를 떠들어 댈 때 약간은 알아듣게 되었도다. 역시 좋은 선생님은 아무리 무지한 아이라도 눈을 뜨게 해주는 것. 우리나라 뿐 아니라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일독해야 하는 명서. 고전이 될 수 있는 책. 장하준씨,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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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8-10-17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한 나라 모든 사람이 일독해야 하는 명서, 라니 가히 최고의 칭찬이자 가난한 나라의 당사자들에게는 조금 씁쓸한 이야기이군요. 어쨌든, 장하준 씨, 짝짝짝!^^

치니 2008-10-17 12:23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쉼표를 잘못 찍어 가난한 나라 모든 사람이 일독...이라고 읽힌 것 같아서 급 수정했어요. ^-^;; 별 건 아니지만.
원 뜻은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거였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부자나라 사람들이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사람들이 과연 읽고 느끼는 바가 있을 지, 아니면 기분 나빠하면서 책을 던져 버릴 지, 그건 모르겠네요.
혼자만 유난히 잘 살지 말고 다 같이 조금씩 더 잘 살자, 그게 결국 너에게도 좋을거야, 이건 정말 너무 공허하게 들리는 이야기일 뿐일까...어쩌면, 장하준씨는 그들에게 경제학자라기보단 몽상가처럼 보일지도 몰라요.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 서평단 알림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
폴 인그램 지음, 홍성녕 옮김 / 알마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이 리뷰는 알라딘 서평단 도서에 대한 리뷰입니다.>

살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억울했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체제 그 자체 때문에 억울했던 건 뒤로 하고, 소소한 관계들에서 그야말로 실제적인 느낌으로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들끓던 기억들.

그것은 이 책을 읽다가 눈에 띤 한 줄, 그러니까 이런 문장과 유사한 감정이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가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자신은 중국인에게 아무런 적의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끔찍한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 진정한 문제는 중국이 언제나 친근함과 유연성을 약함과 연결 짓는다는 것이다."

아무런 적의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그래서 나름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필요한 만큼의 친근함으로 상냥하게 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빌미로 은연 중에 나를 '약한'사람으로 취급하고 도구로 이용하거나 무시하고 짓밟아도 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억울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일로 내가, 인간이, 원래는 타자에게 유연하고 친근할 수 있는 선한 면을 가지고 있음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자, 세상이 온통 불신으로만 뒤덮여져서 마음이 쑥대밭이 되는 것이, 참을 수 없이 서글퍼졌었다.

오늘날 많은 소수민들이나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 내가 겪은 짧은 해프닝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열악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그 저변이 비슷할 것이라고 감히 상상해본다. 악을 갖고 전쟁을 준비했거나, 누군가를 짓누르고 올라서려고 한 적 없이, 그저 조용하고 평화롭게 내가 가진 것들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것 뿐이라도, 그것을 빼앗기로 작심하고 덤비는 무리들이 그들에게 이유 없는 폭력을 휘두를 때, 이들은 억울하고 또 억울한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이 상황을 도저히 타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예의 그 선량함 때문에 이런 것들에 대한 준비를 미처 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들은 이러한 폭력을 자행하는 지도부 혹은 정부만을 비판하는데 그치기 보다는 침묵하고 있는 다수에 대한 부끄러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지금 내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지녀왔던 침묵의 방관자 자세와도 유사하고, 중국의 지식인들이 언급 하지 않거나 중국중심주의에 오도 되어 활자화 한 책들의 민망함과도 유사하고, 중국과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들의 자국 이기주의와도 유사하며, 더럽고 무서운 것이 있으면 그저 눈을 돌리고 안 보고 안 듣되, 그것을 감추기 위한 포장만 겉핥기 식으로 배우고 마는 중국 내 다수 한족들의 자세와도 유사할 것이다.

아무도 무책임하게 '저건 나랑 상관 없는 일이야'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놈의 글로벌 시대의 진면목인 것을 굳이 피하려 한다면, 결국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그 여파가 돌아오는 것을 먼 훗날 통감할 뿐이리라.

티벳에 대해서 많은 환상과 프로퍼간다가 횡행해왔고, 우리들 대다수는 그저 최근에 베이징 올림픽 때 보도 된 사태들에 대한 가벼운 호기심을 느끼는 정도에 그쳐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책이 티벳 문제에 대한 어떤 논리나 주장을 자제하고 그저 말 그대로 보고서의 형식을 취하고 팩트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고맙다. 그 팩트의 보고가 이 책의 원안인 1984년 초판에 의지한 개정판이라서 현 상황에 대한 팩트는 알 수 없다는 점이 상당히 아쉽기는 하다만, 이런 책이 나오기까지의 어려움을 참작하면, 그 쯤은 아량을 가지고 바라봐주어야 할 것이다. 밥 한 술에 배부를 수야 없지마는, 이런 시작이 우리들의 눈과 귀를 깨워줄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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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8-10-04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이만큼 잘 써야 서평단이 될 수 있는 것이군요. -_-

맥북! 드뎌 지르신 거예요? 으앗 사진 좀 사진 좀!


치니 2008-10-05 14:30   좋아요 0 | URL
아이 참, 이만큼 잘 써야라뇨...^-^;;;
서평단 신청 안해보셨나봐요.
전 공짜 책 너무 밝혀서 여러번 시도 끝에...헤헤.
네꼬님이야말로, 썼다 하면 출판사에서 절할텐데.

맥북, 지금 흥분만 하지 사진 찍을 정신도 없어요, 너무 배울게 많고 신기하고 살앙스럽습니다. 주이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데, 히힛.

nada 2008-10-04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근함과 유연성을 약함과 연결짓는 게 비단 중국만은 아닌 거 같아요.
조금이라도 누가 얕잡아볼까 싶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도끼눈을 치뜨는 세상인걸요.
요즘 사람들이 글로벌 시대의 진면목을 실감하는 건 오로지 금융위기뿐인 걸까요.. - -;;

치니 2008-10-05 14:31   좋아요 0 | URL
네, 비단 중국만이 아니라, 저 잘난 맛에 사는 힘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면이 있지 않나...책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금융위기도 정말 , 책 한권 사서 읽어봐야 하나, 휴 바빠요. ^-^;;

이게다예요 2008-10-05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치니님 글 읽네요. 역시...!
유연함과 친근함을 약함으로 읽어내는 사람들, 주위에도 많죠. 저는 두려움이 많은지라 의심 또한 많아서, 유독 사람 사이에 경계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한 번 호되게 당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요. 아무튼 약하다는 것도, 나이가 드니 부끄러워요.

치니 2008-10-06 11:15   좋아요 0 | URL
와, 우리의 봄비는 무럭무럭 자라요? 여기서 뵈니 더 반가운 다예요님. ^-^

네, 그런 사람들 있구요, 저도 예전보단 덜 당할만큼은 자란 거 같지만...경계를 잘 못하는 맹순이라서요. 짭.
나이가 더 들어도 강해질 것 같진 않아요.

2008-10-06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6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튼 3부작 - 박스 세트 - 파리에 간 고양이, 프로방스에 간 고양이,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피터 게더스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노튼이라면 - 이 3부작 세트의 주인공 고양이 이름이다 - ,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일은 없었을 것이다.

타고난 지혜와 차분한 고상함,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귀엽고도 도도한 외모,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궤뚫고 행동하는 통찰력, 자신에게 쏟아지는 플래쉬 세례를 겁내지 않고 즐기는 당당함, 그럼에도 교만하거나 오바 하지 않는 진중함을 두루 갖춘 노튼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고양이 노튼이 아니라)치니다.
타고나기도 어리석고, 고상함과는 거리도 멀고, 귀엽고도 도도한 외모 같은 것은 꿈꾸기에도 이미 늦었고, 통찰력도 젬병이며, 조금만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어도 괜시리 오바하기 일쑤다.
그러니 호들갑을 떨었다 해도 스스로 이해를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모든 호들갑은 우연에서 기인했다.
지난 8월말에 휴가를 맞아 파리 여행을 다녀왔고, 여기저기 프로방스에 대해 막연한 로망이 있다고 떠들어 댔으며, 고양이는 아니지만 같은 반려동물인 개, 그러니까 우리 두리에 대해서도 떠들어댔었다.
이 모든 것을 합한, 그러니까 내 로망과 내 경험과 내 특별한 애정 같은 것이 다 포함된 책 세트가 어느날 툭 하고 내 책상에 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메시지 하나 없이,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택배 상자 안에, 모르는 전화번호와 사용하지 않는 웹싸이트가 보내는 이의 이름으로 적혀서.

때는 추석 전날이었으니, 우선 거래처를 떠올려 봤다. 거래처가 내 파리 여행이나 내 로망, 사생활 따위를 알 리가 없다. (발설한 적이 없으니까)
다음으로는, (솔직히 민망하긴 하지만) 알라디너들을 떠올려 봤다. 콩스탕스님처럼 일면식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주 오시는 지도 몰랐던 알라디너분이 친절하게 책을 보내주셨던 경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왜 아무런 메시지가 없는 것일까.
그 다음으로는, 친구들을 떠올려 봤다. 친구들은 나를 잘 알기는 하지만 책을 비밀리에 부쳐줄 이유가 더더군다나 없다. 서프라이즈 이벤트 같은 걸 즐기는 친구도 별로 없거니와, 그랬다 해도 책이 도착할 즈음에는 뭔가 신호가 있었을 거다. 아니 이제쯤에는 그게 나야! 할만하지 않은가.
다음으로는, (이런 행운이 내게 온다는게 이상하지만) 그야말로 나도 모르게 경품 응모가 되어서 (이런 경우 있다는 소리는 어디서 주워들었다), 오*뮤직 출판사업부가 나에게 띡 책만 보낸 것일 거라는 추측이 가장 타당성 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 그렇지만, 왜 그 중에서도 파리, 프로방스, 고양이 일까.

풀리지 않는 의구심을 뒤로 한 채 추석 연휴 동안 세권의 책을 다 읽었다. 이젠 우연의 음악이야 어떻게 흐르든 상관 없다. 누가 되었든 나에게 보내준 사람에게 그냥 감사한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미소 짓고, 낄낄 거리고, 울었던 시간들이 아깝지 않을 뿐더러, 소중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한 인간의 삶을 통째로 변화 시키는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많이 들었고, 보았지만, 여행기이자 성장 소설이기도 한 이 세트는 재미와 감동이 남다른 데가 있다.

유일하게 못마땅한 대목은 우리 두리와 같은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가끔 멍청하고 우둔하고 먹을 것만 밝히는 큰 동물 쯤으로 묘사한 것인데, 종종 영물이라 일컬어지기까지 하는 고양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역지사지 해보면 그렇게 보일 것 같기도 하니, 최대한 관대하게 넘어가주기로 했다.

내 생각에 반려동물과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인간과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훨씬 콩깍지가 오래 (아니 평생) 안 벗겨진다. 내가 키우는 ㅇㅇ가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가끔, 이런 맹목적인 사랑을 인간에게 주었다가 받을 마음의 상처 때문에 애완동물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만, 어쩌겠는가, 인간은 가장 약하고 외로운 동물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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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8-09-1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머감각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란 없다'는 문장을 알려준 책. 고양이건 사람이건 개건 체온이 있는 것들은 다 약하고 외로워요. 태그에 (눈물의) 동의.

치니 2008-09-19 11:35   좋아요 0 | URL
아, 네꼬님도 읽으셨군요, 하긴 대문에 고양이 사진을 걸어놓은 네꼬 고양이가 이 책을안 읽었을 리가 없겠네요. ^-^
동물도 외롭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겠지만...사람만큼 이기적으로 상대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 같아요.

2008-09-19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9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8-09-19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굴까. 저도 궁금해 미치겠어요. (응? 미칠 것까지야?)
암튼 치니님은 복도 많으셔요.
스포일러를 알아버렸지만, 그래도 읽어야겠어요.
쿨 치니님을 울렸다는데.^^

치니 2008-09-19 14:02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엔 미치겠다 라는 말이 나오더니, 이젠 완전히 출판사에서 준 걸로 믿고 있어요.ㅋㅋ
실제 읽어보시면 저 정도는 스포일러가 전혀 아니라고 말씀하시게 될 걸요. 훗.
쿨 치니라는 말을 또 쓰시니, 네꼬님 볼까 무서버요. ㅠㅠ (그 이유가 궁금하시면 웬디양님 글에 단 네꼬님의 덧글을 보시랍, 네꼬님은 이 세상에서 쿨 한 사람이 제일 싫다고 그랬다구요)

비로그인 2008-09-19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랄까, 전 `고양이만이 이 세상 최고의 동물임' 이라고 말하는 듯한 작가의 말투가 이전 표지만큼이나 거슬렸어요. 물론 그정도야 개인의 호오에 따라 나뉠 수 있는 의견 중 하나라고 봅니다. 표지가 바뀌었군요. 정말, 천만다행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같아요. 그전의 표지는 정말, 구매욕은 둘째치고 독서욕까지도 뚝뚝 떨어뜨려줬거든요. 후훗

치니 2008-09-19 15:08   좋아요 0 | URL
작가 개인사가 자잘하게 나오니까 거슬리는 것을 일일히 적으면 족히 한 페이지는 나와요, 그럼에도 감동해줄 수밖에 없는 것이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가 싶어요.
예전 표지는 전혀 모르는데, ㅎㅎ Jude님의 평소 심미안에 비추어보면 어떨 지 짐작이 가네요.

mooni 2008-09-2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때 저예요. 하고 나서면 금방 믿으실 것같아요...ㅎㅎ 안보낸 선물, 보낸양 가로챌 훌륭한 기회! 라는 생각이 들지만. (실은 진짜 저예요. 히힛) 좋으셨겠다. 공짜로 얻었는데, 거기다 재밌기까지!! 보통 걍 주는 책들은 잼없잖아요. +_+


치니 2008-09-23 10:12   좋아요 0 | URL
마하연님이라고 하면 안 믿길거 같아요, 제가 아는 마하연님은 그렇게 미스테리하게 사람 애간장 태우는 분 아닌 거 같아서...^-^;
보통 걍 주는 책들이 재미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책 욕심 많아서 대개 무조건 받죠. 흐흐.

chaire 2008-09-2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가 그냥, 아무 쪽지도 없이, 저렇게 예쁜 짓을 할 리가 없어요.
그 출판사 직원이 평소 치니 님을 흠모했다면 모르지만.
대체 누굴까요? 뒤늦게 이 글을 읽은 저도 몹시 궁금합니다.
아, 차라리 제가 보냈으면 이렇게 궁금하지 않았을 텐데. 흐흐흐.
누군지 알게 되심, 전면광고 부탁드려요.

프로방스, 저도 가고 싶군요.



치니 2008-09-23 10:14   좋아요 0 | URL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으니, 아마 출판사나 오*뮤직에서 보낸 것이 맞는 듯 하고요, 아무런 연락을 못 받은건 강력한 스팸 차단 기능 때문에 메일이 사라진 게 아닐까 싶고...지금은 그렇게 마음 정리했어요. ^-^
음악이나 출판 쪽 싸이트를 하도 싸돌아다니니, 아마 자동 응모 같은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출판사 직원이 저를 흠모! 으흐 ,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만, 이건 결코 아닐 거라는데 내기를 걸고 싶어집니다요.

프로방스, ㅠㅠ 너무 가고 싶어요.

로드무비 2008-09-27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햄스터를 키워보니 그 기분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3부에서 죽을 노튼을 생각하며...)

전 창비 독자평가단을 하다가 연장 여부를 묻길래 안하겠다고 메일을 보냈는데요.
그 정도 결정을 내리는 것도 어렵더라고요.(아무래도 공짜책에 대한 미련이......)
고맙게도 그동안 감사했다며(리뷰도 많이 떼먹었는데) 마지막으로 또 책을
한 권 보내왔더군요.(창비 매너 짱~)

프로방스 책 저도 두어 권 사둔 것 있는데.
신이현이 쓴 책은 보셨어요?^^





치니 2008-09-27 23:21   좋아요 0 | URL
오옷, 역시, 로드무비님은 무려 독자평가단이시구나.
전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리뷰를 떼먹더라도, 막상 써주시는 리뷰는 그야말로 일품이니까, 감사했겠죠. 창비도 다 보는 눈이 있을테니까. ^-^

신이현의 <알자스> 관련 책 말씀 하시는거라면, 아직 못 읽었어요.
좋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는데...이 참에 한번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