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면 남는 시간 덕에 책을 꽤 많이 읽겠지 라고 생각한 건, (언제나 그래왔듯) 섣부른 예측을 단순히 하고 그대로 될 줄 아는 내 아둔한 성격 탓이다.

그러나 실제 한달 가까이 책을 별로 읽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도 조금이나마 심각하거나 두꺼운 책은 엄두도 안나는, 그러니까 나는 그런 심각한 것을 한번도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산다고 믿고 싶은 억지스러운 저항, 같은 것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아무튼 그런 와중에 그나마 편하게 들춰볼만한 책이라면, 그건 이런 책.

 

 

 

 

 

 

 

솔직히 수상작이라는 전경린씨의 작품은 내 성정에 맞지 않았다. 우선 여자가 남자에게 디립다 맞는 내용이 등장하는 건 무조건 싫어한다. 그리고 전경린씨 문체의 심각함이, 자꾸 예의 어린아이스럽게 살고 싶어하는 내 저항심을 건드렸다.

작가들의 이름을 보면, 다 알만한 분들. 우리 시대에 상을 타는 작가들은 이렇게 딱 정해져있는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그렇게 눈이 번쩍 뜨일만큼 멋진 작품이 없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유독 마음을 끈 작품은, 의외로 그렇게나 나하고 안 맞는다고 외치고 다녔던 김연수 작가의 <내겐 휴가가 필요해>였다. 소재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도, 소설 속 대화에서 나는 감칠맛도, 무엇보다도 그토록 휴가가 필요하다는 절실함도, 모두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아, 김연수를 역시 잘못 봐 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블로그에서 이런 글(http://larvatus.egloos.com/3960109) 을 읽으니, 이사람은 좋은 작가 이전에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짧은 글에서 이런 매력을 발산하는 그가, 긴 글에선 왜 나를 사로잡지 못하는지, 흠 그것이 여전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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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8-10-3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그거예요. 김연수는, 작품보다는 사람이 좋다고 느껴요. 좋은 사람 같다는, 작품을 쓸 때도 어쨌거나 참 노력한다는 그게 든든함을 주는 작가, 라는 생각. 해서 장편보다는 단편에서, 단편보다는 조각산문에서 더 매력을 발산한다는, 작가 입장에선 좀 아플 수도 있는 장점을 가진 작가다 싶지요(제 개인적 견해일 뿐이지만). 그래서 결론은 새로 나온 장편 소설을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어요. 여행할 권리는 사고 싶다가도, 얼마전 책을 말하다에서 변 감독님이 너무 지나치게 좋아하시기에 오히려 제게 반감을 사버렸다는..

회사 관둔다고 마구 책을 읽는 건 아니라는 거, 무지 공감. ㅋㅋ 전 잠만 는 거 같아요 :)

치니 2008-10-30 12:14   좋아요 0 | URL
카이레님과 거의 99% 공감 중!
그것이 작가 입장에선 좀 아플 수도 있는 장점을 가진 작가다, 개인적 견해라고 하시지만 정말 예리하십니다. 아무튼 노력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존경스럽고, 반면 같은 부류인 것 같아서 편안하고, 그런 마음이 종종 들어요.
이번 장편에 대한 서론 비슷한 걸 작가의 블로그에서 봤던 기억이 있는데, 내용이 그닥 끌리지 않았어서, 나중에 끌리면 볼 생각입니다. (또 뒷북 칠테죠)
여행할 권리도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아직 못봤고, 지금 보면 여행 하고 싶어질까봐 자제 중. -_ㅠ

저도 잠 엄청 늘었어요, 하지만 일부러 안 일어나고 눈이 떠지는대로 일어나는 것이 매일 아침 여전히 너무 좋아요. ㅋㅋ

니나 2008-10-3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치고는 그놈의 사랑타령을 좀 맛있게 해줘서 김연수가 좋아요 하하하

치니 2008-10-30 20:39   좋아요 0 | URL
네, 어떤 면으로는 맛있다고 생각되지만...어떤 틀을 못 벗지 않나 하는 생각도...^-^;

토니 2008-11-10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드디어 인터넷 설치했어요. ^^ 근데 생각만큼 자주 사용 안하게 되네요. 책도 서울 발령나면 무자게 많이 읽을 줄 알았는데..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딸랑 다섯권 입니다요. ㅋㅋ 요즘엔 에이미와인하우스에 푹빠져있어서 책이 더욱 안 들어와요.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꼭 읽는 편인데 음악이 시들해지면 그때 꼭 읽어 볼께요. 그럼

치니 2008-11-11 12:18   좋아요 0 | URL
에이미와인하우스가 뭐지? 했는데 아마 음악인가보네요.
푹 빠지실 정도라니 한번 들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