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면 남는 시간 덕에 책을 꽤 많이 읽겠지 라고 생각한 건, (언제나 그래왔듯) 섣부른 예측을 단순히 하고 그대로 될 줄 아는 내 아둔한 성격 탓이다.
그러나 실제 한달 가까이 책을 별로 읽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도 조금이나마 심각하거나 두꺼운 책은 엄두도 안나는, 그러니까 나는 그런 심각한 것을 한번도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산다고 믿고 싶은 억지스러운 저항, 같은 것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아무튼 그런 와중에 그나마 편하게 들춰볼만한 책이라면, 그건 이런 책.
솔직히 수상작이라는 전경린씨의 작품은 내 성정에 맞지 않았다. 우선 여자가 남자에게 디립다 맞는 내용이 등장하는 건 무조건 싫어한다. 그리고 전경린씨 문체의 심각함이, 자꾸 예의 어린아이스럽게 살고 싶어하는 내 저항심을 건드렸다.
작가들의 이름을 보면, 다 알만한 분들. 우리 시대에 상을 타는 작가들은 이렇게 딱 정해져있는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그렇게 눈이 번쩍 뜨일만큼 멋진 작품이 없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유독 마음을 끈 작품은, 의외로 그렇게나 나하고 안 맞는다고 외치고 다녔던 김연수 작가의 <내겐 휴가가 필요해>였다. 소재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도, 소설 속 대화에서 나는 감칠맛도, 무엇보다도 그토록 휴가가 필요하다는 절실함도, 모두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아, 김연수를 역시 잘못 봐 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블로그에서 이런 글(http://larvatus.egloos.com/3960109) 을 읽으니, 이사람은 좋은 작가 이전에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짧은 글에서 이런 매력을 발산하는 그가, 긴 글에선 왜 나를 사로잡지 못하는지, 흠 그것이 여전한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