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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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함, 배려, 부드러움, 잔잔함, 올곧음, 정직함, 아름다움에 대한 예의, 겸손한 태도, 열성. 모범적인 자료 조사, 인내심, 그리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고자 하는 열망을 오래 간직하면 급기야 '온 세상이 도와주는'  - 작가의 말에 보면, 온 세상이 도와줄 것이다 라는 말을 믿고 살다가 정말 이 소설을 완작 하기 전에 거짓말처럼 일이 술술 풀렸다고 술회한다 - , 그런 사람.

이런 작가에게 영영 완전히 끌리지 못하는 나는, 대체...소설에서 무엇을 원하는 걸까, 자꾸 그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이 소설을 읽은 친구와 나눴던 대화에서처럼, '우리는 천재만을 흠모하는, 주제도 모르면서 도저히 나로서는 안 될 것 같은 경지에 있는 작가만을 쳐주는 독자'인 걸까.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을 들고 땀을 닦으며 씨익 웃는 청년의 모습이 떠오르는 이 작가보다는, 닐리리 맘보 베짱이 노릇 하고 얼치기 궤변을 늘어놓다가도 어느날 툭 던지듯 내놓은 글이 기함할 만큼 놀라운, 그렇게 속으로는 어떨 지 몰라도 겉으로는 천재 연 하는 치들에게 아직도 마음을 뺏기고 사는 걸까.

이렇든 저렇든 난독은 여전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보다야 나았지만, 이 책 역시 민생단이라는 처음 듣는 단체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늠하는 것 조차 힘든 와중에 (작가 스스로 표현한대로) 혼돈 그 자체를 느끼면서, 고심고심하여 조율하고 열을 갖추었을 거라고 거의 확신하게 되는 단아한 문장들에 감동하는데에는 또다시 인색해지고 말았다.

광활한 만주 땅, 가보지 못한 곳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에 지레 억눌렸다고 해야 할까. 등장인물들에게 하나 하나 집중하려면 그 광활함을 잊고, 광활함을 보면서 인물을 보려면 어느새 어떤 연유로 그 인물이 거기까지 왔는지 잊고 ... 나무를 보려면 숲이 보이고, 숲을 보려니 나무가 보이고. 그런 식.

그리하여 작가는 온 세상이 도와준 열망을 이뤄 낸 이 마당에, 나는 그가 적은 밤의 노래들을 이해하는데 또 다시 약간 실패한 느낌이다만, 책 뒤에 적혀진 한홍구 교수의 요약된 페이지를 읽으면서 적어도 이렇게 묻혀진 이야기들을 김연수 같은 작가가 풀어준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유의미할 뿐 아니라 꼭 밝혀져야 하는 내용이며, 그 안에는 작가의 땀 한방울 한방울이 문장마다 촉촉히 적셔져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사족이다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만 영화 <색.계>가 떠올랐는데...그건 단지 여주인공 이정희가 스파이로 접근한 남자를 결국 사랑한다는 내용 때문이었을까? 영화에 나왔던 일제에 맞서는 중국 반정부 단체들과 이 민생단이 활동하는 시기가 일치하는 건가?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역사적으로 궁금한 질문들은 풀리지 않았고 어찌 보면 알고 있는 새털 만큼의 근대사에 대한 확신조차 미궁으로 빠지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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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3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3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게다예요 2008-12-0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해요. 저도 김연수의 성실함에 대해선 따로 할 말이 없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때론 죽어라 노력하는 사람들이 끼있는 사람보다 매력이 덜할 때가 종종 있죠. 김연수의 경우도 그런 거 같아요. 작가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겠지만..

치니 2008-12-04 13:49   좋아요 0 | URL
죽어라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닌 경우도 있고,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 노력하는 경우도 있을테니,
김연수 작가에게 그런 단정을 쉬이 지어버릴 수 없지만...
비범하다고 하게 되지 않는 건 사실이에요.
그나저나 오랜만! 반갑습니다. :)

니나 2008-12-04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훕, 전 김연수꺼는 청춘의 문장들이 제일 좋았어요. 그러나 그건 소설이 아니라능 ㅋㅋ
내가 훔친 여름 주문해서 방금 받았어요. 냐흘~~~~~~!!!

치니 2008-12-05 16:0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청춘의 문장들 좋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한번 읽어봐야 할 듯.
김연수 블로그의 글들이 가끔 꽤 좋은데, 그 글들이 소설은 아니죠. ^-^;;

아으, 이제 김승옥에게 빠져들 준비가 되셨군요!

니나 2008-12-05 15:2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연수옵하 소설은 아쉬운 점이 쪼께 있더라고요 ㅎㅎ
저, 어제 퇴근길에 낄낄 깔깔 훌쩍 쿵 아주 죽었어요 승옥 아자씨가 훔쳐다준 여름때문에!!! 치니님 리뷰덕에 간만에 마음 깨지는 책 봤네요 넘 조아요!!!

치니 2008-12-05 16:07   좋아요 0 | URL
'마음 깨지는' 책, 표현이 정말 마음 깨지네요. ^-^
아무래도 이 전집을 사야 하나, 심각히 고민 중이에요.
지금 3권째 보고 있고, 4권까지 재미있으면...갈등 갈등.

산안개 2008-12-05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읽으면서 '색계'를 떠올렸어요..
처절한 역사와 이뤄질 수 없었던 사랑.. 절박한 상황속에서의 심리적 갈등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답니다

치니 2008-12-05 16:10   좋아요 0 | URL
앗, 저만 색.계 떠올린 게 아니군요, 괜시리 안도. ^-^;;
역사를 알아야 현재가 보인다 했던가요, 처절한 역사에 대한 걸 읽고나니 현상황도 쨌든 극복되리라...살짝 안이한 생각도 했다는 걸 고백합니다.

2008-12-08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9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8-12-09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요즘 치니님 덕분에 갑자기 김승옥 전집 판매고가 고!고!하고 있을 것 같아요.
저두 그 중 하나~
특정 시대, 특정 지역에 대한 연수씨의 사랑을 도저히 공유할 수가 없어요. ㅠ.ㅠ
전 그냥 재미있는 소설만 읽을래요.

치니 2008-12-10 10:36   좋아요 0 | URL
하핫,그러려나요. 그 양반 뒤로 갈수록 통속소설이란 이런거다, 대놓고 좍좍 써가는 걸 보고 있자니...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중.
꽃양배추님은 읽고 어떻게 느끼시나 새삼 궁금합니다.(포스팅이 너무 뜸하셔서 흑, 항상 기다린다구요)
특정 시대와 특정 지역에 대한 사랑, 네 듣고 보니 그래요. 아 , 제가 재미를 덜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겠군요.
 
내가 훔친 여름 김승옥 소설전집 3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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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을 저렇게 적어는 놨지만 유사 제목인 <책만 읽는 바보>는 읽어보지 못했다. 오랫동안 보관함에서 썩고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참 안 잊혀지는 제목이고, 또 어찌 된 연유에서인지 김승옥의 책을 읽고나서는 책만 읽는 바보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의 가지는 이리로 저리로 정한 데 없이 뻗치기만 한다.

초기 작품에 비해 약간은 때가(?) 묻었다거나 왠지 영화화 하기 좋은 소설 같다 싶었는데, 역시나 이 두 중편은 중앙일보와 선데이서울에 연재 되었다고 한다. 뭐 신문 잡지 연재물이 무조건 통속이라는 말은 아니다만, 너무 대중의 심리와 떨어져 있는 외골수 식 쓰기가 계속 된다면 더이상 연재 되기 힘들었을 것 아닌가.

김승옥 특유의 통찰력과 문장력은 여전히 비할 데 없이 훌륭하게 글 속에 나타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이전 읽었던 <환상수첩>에 비해 사뭇 더 유들유들하고, 내용 역시 남녀 간의 애정행각이나 서울사람 지방사람이 만났을 때의 묘사, 소위 엘리트 급에 있는 층과 무식한 층이 만났을 때의 묘사 등, 누구나 읽으면 흥미를 느낄만한 소재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내가 훔친 여름>에 나오는 장영일이라는 사기꾼 스러운 인물이 보여주듯이, 그 시대에는 지금보다는 돈도 돈이지만 아무래도 지식인의 교양 같은 것이 우상 시 되었으매, 자조 섞인 작가의 인물 묘사에 나오는 대사들은 얼핏 궤변 같기도 하고 촌철살인 같기도 하면서 통쾌한 느낌마저 준다.

책 뒤 편에 소개된 이응준씨의 글은, 얼마 전 내가 <환상수첩>을 쓸 때 간절히 김승옥이 소설가로 컴백 했으면 하고 바랐던 내용과 닮아 있다. (물론 글은 천만배 더 멋지게 쓰셨지요!) 비록 전두환 정권에서 너무 실망하여 그 길로 하느님에게로 가버린 그라고는 하지만, 이런 작가가 다시 소설을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리어 하느님이 그의 속세에서의 의무를 잊고 있는 것일 거라는...그래서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이렇게까지 기다리는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배웠을까, 아니 그런 생각이 어떻게 떠오를까 궁금해 죽겠는 김승옥만의 각종 표현들에 푹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돌아온다고 꼭 그걸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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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i 2008-11-27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덕분에 당분간은 치니님 리뷰업데도 꾸준히 많을 듯인가요? ^^
전 김승옥은 무진기행 달랑 하나 본 다음에 저자근황같은거 찾아보다가
하느님과 어쩌구 하는 걸 보구는 손을 딱 끊었는데... ^^;
치니님이 자꾸 옆구리를 찌르시니 은근 다시 보고 싶은 맘도 좀 들고 그러네요.

치니 2008-11-27 10:36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이전엔 '무진기행' 달랑 이었어요. 그거나마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거라 아주 잘 썼다 라는 기억 외엔 남은 게 없었고...
지금은 전집으로 나와 있어서 이 사람이 시대별로 살금살금 변화하는게 느껴진다랄까, 쏠쏠한 재미가 있네요.
(산 거라면 보내드렸을텐데, ^-^;;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실정)

2008-11-27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27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er 2008-11-2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전 Thanks To.. ^_^

치니 2008-11-27 10:40   좋아요 0 | URL
아 , 맞아요, 레이니어님의 글에서도 제가 가끔 찾게 되는 그런 절묘한 비유들이 빵빵 터지죠. ^-^

2008-11-27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27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29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30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30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30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십대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바버라 스트로치 지음, 강수정 옮김 / 해나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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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개인적으로 내가 십대의 아들을 두고 있으므로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다 읽어보고 나서는 십대의 부모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이 십대에 했던 행동들의 뇌 변화에 대해 되짚어보면서 내가 왜 이런 성인이 되었는가, 정체성 파악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만)

게다가 사회학적, 심리학적으로 청소년기의 문제점을 다룬 책들은 많지만, 오, 신경과학적 접근이라니, 항상 우주에서 가장 신비롭다고 생각되는 우리 인간의 뇌를 통해 풀어가는 이야기라니, 구미가 좍 당기는 것.

구미가 당기기는 했지만 그 오묘한 뇌 속에서 일어나는 청소년기의 변화에 대해 간단한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를 애초에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은, 이 책이 아직까지는 아기의 걸음마 수준에 겨우 도달한 청소년기의 뇌 발달에 대한 연구의 중간 점검 보고서와 같다는 것을 서문에서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 역시 예상대로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질풍노도의 시기에 대한 뇌 속 전후사정을 다 알게 되었다는 안도감보다는 실낱 같은 기미만을 감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진부한 것 같은 이런 문장,

"아이들이 우리가 하는 말을 우리가 의도한 대로 듣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와 같은 문장에서 그간 내가 십대 자녀의 부모로써 간과했던 점, 나도 모르게 아이가 거의 성인이 된 취급을 했던 점을 (좀 더 과학적으로 증명된 토대 위에서) 반성하고, 소위 '모험의 행동화' (실현 가능성이 없는 무의식적 소망이나 충동을 억제하지 않고, 그것에 수반되는 감정을 의식하지 않고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 이란다)를 나쁜 것으로 취급하기보다는 발달에 필요한 정상적 도구로 암암리에 인식한 개방성에 스스로 뿌듯하기도 하면서도, 이런 위험 감수 수준이 파괴적일 정도로 높아지는 경우 안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하고. 다양한 자극에 노출시킬 필요를 인정하되 이해할 수 없는 나이에 지나치게 일찍 제공해서는 안되는 지라 그 시기를 조정해야 하는 신중함을 견지해야 하는 압박감도 만만치 않아진다.

결국 토론은 지금 시작되었으나, 연구는 전문가들이 하고 있으나, 결론은 사회가 내려야 하며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책무에 소홀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묵직해진다.

예를 들어, 잠만 봐도 그렇다.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청소년기 뇌 변화 중 가장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이, 그야말로 '수면의 과학' (미셸 공드리는 천재다, 이 영화를 보면 그가 마치 사람의 뇌를 신경과학자 만큼 아는 것 같다) 면이다. 한 연구가에 따르면, 십대들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경향이란다. 즉, 십대에는 수면 물질인 멜라토닌이 어린 시절보다 급속하게 지체 분비되므로, 자연히 늦게 무언가를 하고 잠을 미루게 되고, 적어도 9시간은 자야 충분한 수면이 되는 그 시기에 아침 7시부터 학교에 가는 생활을 하니 항상 피곤하다는 거다. 그것은 다시 십대 특유의 광포한 짜증으로 이어지고, 악순환이 거듭된다는 것. 그렇다면, 어른들은 무한경쟁에만 노출시키는 지금까지의 학교 행정과 제도 중에서 아침 등교시간부터 그들의 뇌에 맞게 조정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거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평범한 뇌를 수없이 반복해서 들여다 본 후 평범함의 적정 수준을 알아내는 것으로써 그 범위를 벗어나는, 즉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도우려는, 나아가서 그런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이루려는 목적 아래 씌여진 만큼 신경과학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 배경이 없더라도 쉽게 이해할 만한 레벨에서 흥미로운 사례들과 조심스럽지만 품어볼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고, 이 정도면 완벽한 수준의 과학서적이 될 수는 없어도 많은 무개념 부모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으니,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인생 공부는, 다름 아닌 자식 제대로 키우기에서 가장 명백히 중요하니까. 그리고 막연한 짐작 보다는 과학적인 지식과 사랑을 겸비해서 키운다면야, 아무래도 조금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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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1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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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야 허영만씨의 <식객> 같기는 하다만, 이 도서를 검색했을 때 주루룩 밑에 깔리는 <식객>들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이건 아니에요 하고 싶어진다.

그만큼 독특한 거라고 우기고 싶은 거겠지.

무엇보다도 읽는 내내 내 마음을 사로잡는 건 다름 아닌 - 제목 그 자체 - 심야식당이라는 컨셉이 주는 유혹이다. 전 세계에서 심야 영업이 가장 활발하고 무성한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직 모자라단 걸까. 심야에 아무때고 집에서 한 것 같은 밥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공간, 이라는 자체에 무조건 넘어갈 수 밖에 없다니.

상상하는 그대로, 이 컨셉에서 당연히 유발되는 소재는 심야식당의 단골 손님들의 이야기.

그들의 은밀하기도 하고 독특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피하고싶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한, 이야기들을 시종일관 묵묵히 들어주고 있는 주인장을 통해 곁눈질 하는 재미는 남의 숨겨둔 일기장을 펼쳐 낸 것처럼 중독성이 짙다.

마침 이 시기에 찾아낸 이 가게 돈부리. http://www.menupan.com/Restaurant/OnePage.asp?acode=J103545  하악하악 숨 고르기를 안 할 수 없어요. 심야식당의 그 컨셉,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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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8-11-17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악하악, 이란 표현을 왠...지 싫어하지만 블로거뉴스 추천은 했어요. ㅋㅋ. 돈부리 한번 가봐야겠군요.^^

치니 2008-11-18 11:51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지금 막 제목을 보고, 내가 미쳤지 왜 저런 제목을 썼을까나, 하고 있다가 댓글을 보고 푹 웃었답니다. 저도 이 표현이 별루에요.
그런데 지금서야 고치자니 너무 표나고...그냥 놔두고 한숨 쉽니다. ㅋ
돈부리 가서 우연히 만나면 묵묵히 밥 나눠 먹어요, 우리. 헤헤.

nada 2008-11-18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단 시스템을 도입하셨군요. 저도 추천.^^
하악하악은 뭐랄까... 너무 '죽어도좋아' 풍이에요.
차라리 헉헉은 뭔가 열심스러운 느낌이라도 나지만요.

치니 2008-11-19 10: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너무 좀 너무한 느낌이죠(뭐래니). 하악하악, 이제 저리 가! 하고 싶네요. 저를 비롯 모두 못마땅해 하시니. ㅋㅋ
첨단 시스템을 호기심에 해보긴 했는데 도무지 뭐가 좋은 건지 모르겠어서 다시 뺄까 어쩔까 하고 있어요.


로드무비 2008-11-29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을 며칠 전 읽었답니다.
젊은날 한가닥(락?)하셨을 것 같은 심야식당 주인장 참 매력적이죠?

치니 2008-11-30 17:4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2권까지 읽었어요.
참 매력적이고 만화도 여운 있게 좋은데, 문제는 딱 하나.
읽다보면 너무 너무 식욕 당기는데, 집에 재료 없다는 거.
동네에 이런 식당 있음 얼마나 좋아, 자꾸 그런 실현 가능성 제로 희망을 품게 된다는 거. ^_^;
 
환상수첩 김승옥 소설전집 2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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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통제라, 절필 작가는 이제 신을 위한 봉사만을 하신다.

오래 전에 읽었던 <무진기행>의 아스라하지만 쇼크로 아로새겨져 있는 김승옥이라는 이름을 전집 출간으로 다시 보면서 맨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런 식의 불경한 생각.

작가가 글을 쓸 권리가 있다면, 독자는 재미있는 글을 계속 쓰라고 강요할 권리가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은, 김승옥을 하느님에게 빼앗긴 것만 같아서 영 아쉬운 것일 뿐이니, 오해는 마시라.

쉬는 김에 읽고 싶은 책 목록 중 최상위급이었던 김승옥 전집에서 이미 대여된 1권을 제치고 2권 <환상수첩>을 먼저 빌려왔다.

하하하. 헛 웃음과 명치 끝이 푹 찔리는 것 같은 아픔이 동시에 잘도 지려 밟아주신다. 그러면서 자꾸 입을 삐죽이게 된다. 소설이 소설 답다는 것은 이런 걸 말하는 걸텐데, 아무래도 그 다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으니, 내 짧은 필력이 또 다시 문제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금기 시 된 것들을 깨려는 욕망과 그것들로부터 숨고자 하는 비겁함이 함께 보이기도 하고, 여성에 대한 어이없는 환상 때문에 자각하지 못하는 성 비하 발언도 보이고(어떤 순간에는 여주인공의 목소리가 '겨울여자'의 성우 목소리로 자연스레 더빙되어 들리는 효과 백배!),

당시 작가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치기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문장들도 더러 보이지만!

그래도 현대에 이 정도로 잘 쓰는 작가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을 깨우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느님, 그러니까 일단 다시 돌려주세요. 조금만 더, 최고의 표현, 깊은 감동, 알싸한 여운을 제대로 맛보고 싶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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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08-11-1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긍까요, 무진기행은 외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좋아했는데... 김승옥씨가 쓰신 내가 만난 하나님 읽고 쓰러졌다매요... 나 기독교인이라매요... ;;;

치니 2008-11-17 13:25   좋아요 0 | URL
긍까요, 저도 니나님이 기독교인인 걸 알고 있어서 ^-^;; 궁금해요. 저처럼 돌려주기를 원할 정도는 분명 아니실테죠.
내가 만난 하나님 읽고 쓰러지신 이유도 궁금궁금.

니나 2008-11-17 13:49   좋아요 0 | URL
아녀 돌려주기 원해요ㅠㅠ 내가 만난 하나님 읽고나면, 하나님이 안돌려주는게 아니라 혼자 멀리 가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죠 ㅋㅋㅋ

치니 2008-11-17 14:04   좋아요 0 | URL
아앗, 그렇단 말씀? 전 읽지 않았지만 니나님 느낌에 공감!

웽스북스 2008-11-18 00:51   좋아요 0 | URL
내가만난 하나님 읽고 쓰러진 1인 여기 더있습니다. ㅋㅋㅋㅋㅋ

치니 2008-11-18 11:47   좋아요 0 | URL
앗, 웬디님까지? ㅋㅋ 그렇다면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는데...

다락방 2008-11-17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니나님..무진 기행을 외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좋아했다구요? 그리고 치니님, 현대에 이정도로 잘 쓰는 작가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구요?

흐음.
저도 한번 도전해봐야 겠어요.

치니 2008-11-18 11:4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재미있다고 하실 것에 백만 표 겁니다. (으흐 장담이 너무 심했낭)

chaire 2008-11-1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승옥은 23세기에 읽어도 좋을 늙지 않는 소설을 쓰셨건만. 그랬건만.

치니 2008-11-18 11:48   좋아요 0 | URL
역시...카이레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흑.

니나 2008-11-18 12:0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야요. 무진기행 무지 어릴때 쓰셨잖아요. 군대도 가기전이든가

nada 2008-11-18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판에 하나님의 품에 안긴 밥 딜런처럼요. 역시 그런 걸까요?

치니 2008-11-19 10:48   좋아요 0 | URL
와락, 꽃양배추님. 어디 갔다 오십니껴. 그동안 그리웠어요.
후, 그렇죠 밥 딜런도.
일찍부터 어떤 경지에 도달해버리고 방황을 오래 하면, 모두 그 길로 가는 걸까요.
아직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