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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바버라 스트로치 지음, 강수정 옮김 / 해나무 / 2004년 12월
평점 :
우선, 개인적으로 내가 십대의 아들을 두고 있으므로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다 읽어보고 나서는 십대의 부모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이 십대에 했던 행동들의 뇌 변화에 대해 되짚어보면서 내가 왜 이런 성인이 되었는가, 정체성 파악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만)
게다가 사회학적, 심리학적으로 청소년기의 문제점을 다룬 책들은 많지만, 오, 신경과학적 접근이라니, 항상 우주에서 가장 신비롭다고 생각되는 우리 인간의 뇌를 통해 풀어가는 이야기라니, 구미가 좍 당기는 것.
구미가 당기기는 했지만 그 오묘한 뇌 속에서 일어나는 청소년기의 변화에 대해 간단한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를 애초에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은, 이 책이 아직까지는 아기의 걸음마 수준에 겨우 도달한 청소년기의 뇌 발달에 대한 연구의 중간 점검 보고서와 같다는 것을 서문에서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 역시 예상대로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질풍노도의 시기에 대한 뇌 속 전후사정을 다 알게 되었다는 안도감보다는 실낱 같은 기미만을 감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진부한 것 같은 이런 문장,
"아이들이 우리가 하는 말을 우리가 의도한 대로 듣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와 같은 문장에서 그간 내가 십대 자녀의 부모로써 간과했던 점, 나도 모르게 아이가 거의 성인이 된 취급을 했던 점을 (좀 더 과학적으로 증명된 토대 위에서) 반성하고, 소위 '모험의 행동화' (실현 가능성이 없는 무의식적 소망이나 충동을 억제하지 않고, 그것에 수반되는 감정을 의식하지 않고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 이란다)를 나쁜 것으로 취급하기보다는 발달에 필요한 정상적 도구로 암암리에 인식한 개방성에 스스로 뿌듯하기도 하면서도, 이런 위험 감수 수준이 파괴적일 정도로 높아지는 경우 안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하고. 다양한 자극에 노출시킬 필요를 인정하되 이해할 수 없는 나이에 지나치게 일찍 제공해서는 안되는 지라 그 시기를 조정해야 하는 신중함을 견지해야 하는 압박감도 만만치 않아진다.
결국 토론은 지금 시작되었으나, 연구는 전문가들이 하고 있으나, 결론은 사회가 내려야 하며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책무에 소홀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묵직해진다.
예를 들어, 잠만 봐도 그렇다.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청소년기 뇌 변화 중 가장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이, 그야말로 '수면의 과학' (미셸 공드리는 천재다, 이 영화를 보면 그가 마치 사람의 뇌를 신경과학자 만큼 아는 것 같다) 면이다. 한 연구가에 따르면, 십대들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경향이란다. 즉, 십대에는 수면 물질인 멜라토닌이 어린 시절보다 급속하게 지체 분비되므로, 자연히 늦게 무언가를 하고 잠을 미루게 되고, 적어도 9시간은 자야 충분한 수면이 되는 그 시기에 아침 7시부터 학교에 가는 생활을 하니 항상 피곤하다는 거다. 그것은 다시 십대 특유의 광포한 짜증으로 이어지고, 악순환이 거듭된다는 것. 그렇다면, 어른들은 무한경쟁에만 노출시키는 지금까지의 학교 행정과 제도 중에서 아침 등교시간부터 그들의 뇌에 맞게 조정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거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평범한 뇌를 수없이 반복해서 들여다 본 후 평범함의 적정 수준을 알아내는 것으로써 그 범위를 벗어나는, 즉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도우려는, 나아가서 그런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이루려는 목적 아래 씌여진 만큼 신경과학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 배경이 없더라도 쉽게 이해할 만한 레벨에서 흥미로운 사례들과 조심스럽지만 품어볼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고, 이 정도면 완벽한 수준의 과학서적이 될 수는 없어도 많은 무개념 부모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으니,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인생 공부는, 다름 아닌 자식 제대로 키우기에서 가장 명백히 중요하니까. 그리고 막연한 짐작 보다는 과학적인 지식과 사랑을 겸비해서 키운다면야, 아무래도 조금 낫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