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따져 묻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능이지만 우주의 차원에서 볼 때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의미란 우리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통해, 우리가 심는 씨앗을 통해, 우리 개성을 조각하는 체계화된 원칙을 통해 만들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검약하면서 산다고 해도 이 순환 매체 없이는 살 수 없어. 네가 아무리 돈을 경멸한다 해도 말이야. 이 문제를 좀더 깊이 생각해본다면 돈이 예술과 문학의 창작에서, 문명인을 문명인으로 만드는 모든 것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해왔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물론 모든 좋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돈 또한 남용될 수 있어. 하지만 돈이 없이는 네 호라티우스도 베르길리우스도 없었을 거야.

선택은 차선과 차악 사이에 있을 뿐이야.

불쾌한 주제에서 희망적인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나이팅게일은 파이 모양의 도표를 고안했다. 오늘날 나이팅게일의 장미 도표Rose Diagram라고 알려진 도표이다. 이 도표에서는 시간에 따른 사망률을 단순하고 우아한 도수분포도로 표현했다. 나이팅게일이 "맨드라미"라고 부른, 파란색, 빨간색, 검은색 쐐기 모양이 한 점을 중심으로 부채 모양으로 펼쳐진 도표는 위생 전략의 효과를 한눈에 명확하게 전달했다. 나이팅게일은 이 도표를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내면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대중의 머릿속에 전달하지 못하는 사실을 이제는 눈으로 전달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썼다. 나이팅게일이 이 선구적인 시각 자료를 발표하자 즉시 대소동이 벌어졌고, 곧 그녀는 왕립통계학회Royal Statistical Society 최초의 여성 회원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풀러는 단기적인 관점으로는 진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해 보이는 그 전쟁의 폭력이 결코 "인류의 품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래가 없는 제단에 과거의 피투성이 공물을 바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와 함께 어렵게 손에 넣은 지성과 상상력의 위업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 예술과 아름다움이 인류의 생명력이며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 지속되는 진실이라는 것을 풀러는 깨달았다.

관계의 충만함과 관계의 영속성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영속성이란 사실상 사랑에 자멸적인 도구가 된다는 생각이다.

인생은 더없이 불확실해요. 그래서 좋은 일들은 최대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너무 자세하게 캐고 따지는 일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기 평생 관습이나 운에 자신을 맡기길 거부해온 여자가 있었다. 생리적 특징과 문화가 막아놓은 천장을 뚫고 올라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온 여자가 있었다. 운이 우주를 다스린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베토벤이 했던 일을 해내리라 결심한 여자가 있었다. 운명이 청력을 앗아갔을 때 베토벤이 한 일은 바로 "운명의 멱살을 틀어쥐는" 일이었다. 이런 여자가 마음의 절반으로는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똑똑히 자각하면서도 나머지 마음의 절반을 미신에게 내주었다는 것은 공포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증명한다. 공포는 우리의 진화된 반응을 벗겨버리고 우리의 수준을 낮춰 가장 원시적인 반응을 보이도록 만든다.

마거릿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아름답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마음은 허영심 때문이 아니며 가장 인간다운 인간성 때문이다. 이 인간성 안에서 모든 것, 즉 사랑과 진실, 아름다움은 하나이다.

희망이야말로 우리가 절망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탤벗은 자신의 위업에 기뻐했지만 박식한 정신이 곧잘 빠지곤 하는 만성 질환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다른 일에 열중하게 된 것이다.

예술 자체에 믿음을 가져라. 예술을 과대평가하는 것보다 과소평가하는 일이 훨씬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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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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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행하는 소재와 문체라고 하면 너무 섣부른가. 속도감은 있는데 사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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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변모에 대한 역설이 있다. 우리의 상상력은 세계가 돌아가는 방법에 대한 기존의 지식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위대한 변모가 어떻게 다가올지 우리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친숙한 것들과 완전히 동떨어진 사건과 만날 때, 현실의 지도가 변화하고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도록 떠밀린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적 같은 발명품들이 쏟아진 끝에 지금 내가 비행기에서 무선 인터넷에 접속된 디지털 태블릿으로 플라톤을 읽을 수 있으리라고는 절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역설은 문명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상상력에도 적용된다.

불행한 집착이 중독적으로 반복되는 이유는 실망감 자체가 마약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랑이라도 오직 "일시적"으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절망해야 하는가, 기뻐해야 하는가? 시간에는 탄성이 있어서 사랑의 깊이와 정도에 따라 수축하고 확장하지만 결국 그 양은 한정되어 있다. 책처럼, 삶처럼, 우주 자체처럼 유한하다. 그러므로 사랑의 승리는 용기와 성실함에 있다. 그 용기와 성실함으로 우리는 초월적인 일시성이 우리를 결합시켜주는 사랑의 순간을 살아가며, 똑같은 용기와 성실함으로 그 사랑을 떠나보낸다.

혁명가가 된다는 것은 곧 상상력을 펼친다는 뜻이다. 친숙한 것의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질서를 머릿속에 그리며, 새로운 질서 안에서 얻게 될 것이 잃어버릴 것이 주는 잘못된 위안을 뒤덮고도 남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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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이 갈가리 분열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서로 다투고 있는 조각들의 총합이다. 우리는 조각나 있지만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모든 진실은 음악과 수학으로 구성된다"는 풀러의 명제를 입증하는 영원한 증거이다.

우리는 자신의 본성에 내재한 사소한 약점, 자아상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때 가장 냉혹해진다. 남을 탓하는 일은 나를 탓하는 일보다 언제나 쉽기 때문이다.

글쓰기에서 대화는 여러 겹으로 두껍게 포개져 있어야 한다. 예술 수준에 이른 글은 처음 정독할 때 일반적이고 평이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두 번째 정독에서는 준엄한 진실이 드러나야 한다. 세 번째 정독에서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글의 깊이와 현실성이 담보된 연후에야 우리는 글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

개혁가들은 자신의 논리에서 이 세계가 완전히 악인들과 배고픈 이들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정신의 음식에 굶주린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정신의 욕구 또한 몸의 욕구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 또한 개혁가들은 사회의 사슬이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고리와 고리가 연결된 사슬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한 남자를 그 동료들 위로 들어올릴 수 없다. 우리는 인류 전체를 들어올려야 한다. 뉴턴, 셰익스피어, 밀턴은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에게 직접 이득을 주지 않았지만 그들 덕분에 인류 전체가 고양되었다. 그들은 출판사를 찾기 어려웠을지도 모르지만 몇 세기가 지난 후 출판사가 그들을 찾았고 독자들도 그들을 찾았다. 인류 전체가 들어올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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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 관계가 친밀함을 확인하는 시험장이라는 잘못된 개념 탓에 우리는 연애의 구성 요소를 오랫동안 오해해왔다. 친밀함을 재는 척도는 피부와 피부의 마찰 지수가 될 수 없다. 이는 두 사람이 다른 모든 것과 다른 모든 사람을 물리치고 두 사람만의 세계에 거주할 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사랑과 신뢰, 기쁨과 평온의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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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29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 님, 이거 무슨 책인가요?

치니 2022-12-29 09:11   좋아요 0 | URL
앗 제가 북플처럼 밑줄만 긋다가 ㅋㅋ (피씨에서 처음 밑줄그어봄) 정작 책은 소개를 안했군요. 다락방 님은 ‘진리의 발견‘ 이미 읽으셨죠? 84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 전 지금 한 6개월 째 찔끔찔끔 읽고 있어요.

다락방 2022-12-29 09:14   좋아요 0 | URL
저 사놓기만 하고 아직 안읽었어요! ㅋㅋ

치니 2022-12-29 09:16   좋아요 0 | URL
두껍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저런 주옥같은 글귀가 불쑥불쑥 나타나서 흥미진진해요.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