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새 클래식그림씨리즈 3
존 제임스 오듀본 지음, 김성호 해설 / 그림씨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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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는 책이 있습니다.
참신한 그림책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그림씨 출판사에서 "북미의 새"를 출간했습니다.
제목이 참 낯설지만 재미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학자가 기록한 위대한 도감입니다.
저자인 존 제임스 오듀본은 18세기 사람입니다.
책은 당시 미국에 서식하는 많은 새를 직접 그려 담은 도감을 추려 담았습니다.
12년이란 시간 무려 4권이나 되는 분량. 정말 대단하죠.

망원경과 카메라로 탐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직접 관찰하고 그림으로 남기는 것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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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97종의 새를 실물크기로 제작한 345점의 동판!!
당시 기술로 엄청난 제작비까지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작업입니다.
사진으로는 잡아낼 수 없고 잘 구별하기 어려운 새들의 모습을 그림을 통해서 보니 그 특징들이
명확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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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서식지의 모습까지 함께 담아냈다는 것이에요.
'새'만 딱 놓고 본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어떻게 서식하고 있는지까지 그림으로 파악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은 끈기 있는 관찰과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작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남긴 놀라운 책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우리 돈으로 무려 120억 원가량에 낙찰된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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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기억을 이긴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누군가의 기록이 역사로 남기도 하고, 마래 세대에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하기도 하죠. 지금은 21세기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려 2세기가 넘는 시간 북미의 새를 보면 생태계의 변화까지 세세하게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동물의 수명으로는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으니
지금 북미에 서식하고 있는 새와 존 제임스 오듀본이 기록한 새는 참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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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 -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 문익환 평전
김형수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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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일생을 글로 담아낸 다는 것은 무던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글로 담아낸 일생을 읽어가는 일 또한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1900년대 조선, 아니 일제시대는 글과 그림 흑백사진으로 배워왔습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우리의 근현대사는 매 순간이 기억해야 할 역사로 남아 있다는 것을 시험공부를 하며 원망했습니다. 비슷한 이름 비슷한 사건 전혀 다른 결과,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연결되어 일어나기도 했던 수많은 사건들, 조선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기록들이 싫기도 했죠.

지난 한 달 '문익환 평전'을 읽어가며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교과서나 박물관, 책 속에서 만나던 역사를 몸으로 살아낸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그 순간의 현장에서 '꿈'을 외쳤다는 것에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기도 했고, 사람의 삶을 생각하며 전율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평전 또한 전기이기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한 사람의 생을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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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된 천재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쩌면 삶 그 자체가 역사를 살아간 사람들의 목격자이며 증언자 일지도 모릅니다.
순간 반짝이며 빛을 내는 불꽃보다는 꺼지지 않는 촛불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제의 마지막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제국주의 폭력 속을 살아 나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문익환 자신의 이야기 보다 그 시대 어른들의 이야기가 배경이 됩니다.
독립을 위해서 목숨조차 내놓는 사람들.
한 쪽에선 저항을 다른 한 쪽에서는 순응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요?
그 시대의 이야기는 '기린갑이와 고만녜의꿈', '윤동주 평전', '문동환 자서전'을 통해 보충했습니다.

독립의 시간에 분단을 바라보며 통일을 외쳤습니다.
어쩌면 도망이라 보일 수 있는 선택도 더러 있었지요.
분단을 확인하고 떠난 유학길, 다시 돌아온 한국은 여전히 격동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간 것은 시대의 아픔을 숨기기 위해서였을까요.
여섯 번의 감옥생활이 남긴 것은 '경의로움'입니다.
제가 아는 단어 중에서 '경이롭다'라는 단어 그 이상의 무엇을 찾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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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을 읽고도 부족하다 느꼈던 것은 남아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요.
교과서와 책 속에서 만나는 20세기는 전쟁 후 삶을 위한 몸부림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공존하기보다는 이기는 게 우선이었던 세상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좌와 우가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지난 선거 공약만 놓고 보면 보수와 진보가 서로 다른 것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요.
문익환 목사가 바랬던 것도 어려운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형제처럼 서로 티격태격해도 결국은 같이 살아가는 것.
민족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것.
그것이 진짜 통일로 가는 길 아닐까요.

책을 읽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남과 북,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20세기 전쟁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평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작은 이익이라도 놓치기 싫어 아둥바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평화를 바라봅니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 통일이 된다면 무척 기쁠 것 같지만
통일이 아니라도 평화적으로 남과 북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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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0
존 스튜어트 밀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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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제12조
①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②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③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④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
⑤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자의 가족등 법률이 정하는 자에게는 그 이유와 일시·장소가 지체없이 통지되어야 한다.
⑥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
⑦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
 
제13조
①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
②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③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제14조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제16조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18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제20조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제21조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③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④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제22조
①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②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

 

헌법에서 자유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으면서 헌법을 떠올렸습니다.
법에 명시된 포괄적인 자유에 대한 권리.
자유는 국민이 가진 권리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유'보다는 '제약(制弱)', '제약(制約)', '제한(制限)'을 느끼는 일이 더 많습니다. 시민이 자유를 얻은 것은 프랑스 혁명부터라고 합니다. 전에는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죠.
18세기에서 19세기 프랑스의 고전 작품들을 통해 우린 '자유'의 획득 과정을 배우고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는 어땠을까요?
유교적 원리로 국가가 운영된 조선시대 자유는 양반들의 전유물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지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국가가 탄생했지만 국민들에게 자유는 없었습니다. 법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말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통제의 시대였지요. 우리 역시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피로 만들어 올린 역사.

오늘 우린 광장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요.
존 스튜어트 밀이 우리의 광장을 봤으면 자유로웠다 말했을까요?
최고 권력자라 생각하는 사람도 법을 통해서 교체할 수 있는 자유. 물론 반대하는 자유도 있지요.
광장에서의 촛불과 태극기, 얼마 전에는 지방선거도 있었습니다.
결과를 보며 '자유'란 말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바꿀 수 있는 자유.

한편으론 뒤늦은 자유의 목소리들을 접하게 돼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게 만드는 일들.
저는 잘 몰랐던 생활 속에서 '여성'이란 이름으로 선을 긋고 행해지던 차별, 억압 같은 것들이요.
'자유론'이란 제목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어요.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을 통해서 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요?

 개인의 자유는 자신의 사고와 말, 행위가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 모든 범위에서 절대적이다. 국가의 법률이나 일반적인 도덕적 판단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옮긴이가 뽑은 이 책의 핵심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 모든 범위에서 절대적이라는 것.
이것만 지킨다면 그 무엇도 허용되고 인정되는 것이 '자유'죠.

이 전제를 통해 양심의 자유, 의견의 자유, 토론의 자유, 행동의 자유, 다원주의와 소수 발언의 자유, 다양한 삶의 방식들 존중, 진리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개인의 불가침성, 공중 의견으로부터 의식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자유, 사회의 아웃사이더, 이익집단을 조직할 수 있는 권리, 도덕의 독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개인의 권리 등을 옹호한다고 썼습니다.

책은 정의와 예시를 통해서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하고 있습니다.
짧지 않은 페이지에 담긴 말들이 결론은 '자유'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자유'롭다.

어쩌면 이 문장이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를 증명해주는 명제 아닐까요?

옮긴이는 친절하게 존 스튜어트 밀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을 담음으로 '자유론'이 탄생했던 그 시대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해줍니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오늘날 우리 사회 모습들이 생각납니다.
교육,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으로 각자의 생활 속에서 생각하는 자유를 상상하게 되죠.

저는 책을 읽기 전 생각했던 것들에 '존중'과 '여유'라는 답을 생각했어요.
우리에게 자유가 없다는 것은 '존중'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으며, 생활 속에서 '존중'을 느낀 일이 정말 드물기 때문에 갑과 을이라는 관계에서 '갑질'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말이죠.
또 생활하는 데 있어서 '여유'가 있었더라면 자연스럽게 서로 존중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존중과 여유를 위해서는 신뢰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자유를 위해서 행하는 모든 것들을 타인과 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정해주는 것.
타인의 자유 또한 존중하는 신뢰가 있어야만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은 인내를 가지고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에요.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하는 '토론'이죠. 토론의 전제는 단 하나입니다.
그 무엇이 되었든 "타인을 해치지 않는 모든 생각과 말, 행위는 절대적이다."
이것만 명심한다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160년이 지나 자유론을 다시 펼쳐야 하는 것은 끝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위해서요.

ps. 현대 지성에서 출간된 책이라 믿음이 갔지만 번역의 말에서 아쉬움이 큽니다.
필요 없는 곳에 '의'가 많이 쓰여서 읽는데 불편합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의'때문에 이해를 방해합니다. 원서를 읽을 실력이 아니라서 어떻게 말해야 고민했지만 문장이 정돈되지 않고 조금은 난잡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존 스튜어트 밀의 글이 난잡했을까? 싶기도 했지만 해제와 연보를 읽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번역자 또는 편집자님의 문제였다는 것을요. 조금만 더 문장이 정돈되었더라면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을 단축하고, 이해하는데 한결 편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유론'은 다른 곳에서도 많이 번역되어 있기에 책을 읽는다면 꼭 한두 장 정도 읽어보며 비교해서 고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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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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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였을까요, 불편해지기 시작한 게.
불편했던 것을 알게 됐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강남역 사건에서 막연했던 것이 선명해진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뒤 벌어진 많은 일들,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이라고 해야겠죠.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간접 경험일 수밖에 없어 여전히 잘 모릅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요.
여성 그중에서도 평범함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일이 매 순간 공포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뉴스 속에서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만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저 사회구조 문제 탓을 했죠.
그 구조를 만들어 온 것이 사람이란 것을 외면했던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세상의 절반이라는 '그녀'들의 삶을 생각해 봤습니다.

뉴스와 통계 속에서는 치안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불안을 느꼈던 적이 그렇게 많진 않았어요.
한밤중에 돌아다녀도 안전한 몇 안 되는 나라, 그게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이죠.

남자로 살아온 시간,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장남, 번듯한 직장을 가져야 하고 부모님의 노후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책임이란 말의 무게감에 익숙해지고 나니 이제서야 주변이 보이는 걸까요. 조남주님의 소설을 읽으면서 "아!"라는 탄식, 한 편으론 생각 전달이 잘 안된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린 여자 혼자서'에서는 20대 자취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어느 늦은 밤, 여름이었습니다.
대학 동기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고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이었죠.
집에 가는 골목길은 조금 어두운 편입니다. 대로에서 살짝 들어간 골목은 사람도 잘 다니지 않죠.
버스정류장에서 골목길을 통해 걸어가는 편이 대로를 통해 가는 것보다 10분을 절약할 수 있어 평소에 다니던 길이었어요. 손에 휴대폰을 보면서 집에 가던 중에 배에서 신호가 왔죠. 근처에 화장실은 없고 집까지 5분 정도 거리,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발걸음을 조금 빠르게 걷다가 눈앞에 집이 보여 살짝 뛰었는데 앞에 가던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 거예요. 저도 놀랐죠.
앞에 사람이 쓰러지는데 갑자기 긴장했죠. 심하게 다친 건 아닐까 걱정되어 다가갔어요. 괜찮냐고 어디 다쳤냐고 물어보는데 대답은 없고 온몸을 떨고 있어 119에 신고를 했어요.
혹시 평소에 지병이 있어 비상약을 가지고 다닐까 싶어 가방을 찾았어요.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여성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뭐라고 말을 했어요. 잘 안 들려 조금 가까이 다가가 "네?, 말씀하세요."라며 대답을 했죠. 저는 계속 가방 속에 약이 있나 찾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왔어요. 다가온 구급대원에게 저분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져 바로 신고했다 말하고 화장실이 정말 급해서 집에 간다고 얘기하고 들어갔어요. 집에서 편하게 볼일을 보고 나왔는데 문 앞에 구급대원 분이 기다리고 있었죠. 신고자 신원확인 때문이라고 해서 신분증 보여주고 전화번호 확인하고 있는데 경찰분들이 또 올라오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쓰러진 여성분이 저 때문에 놀랐던 거였어요.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신경 쓰여 티 내지 않고 빨리 걸어가던 중이었데요. 늦은 시간 단둘만 내렸는데 하필 방향이 같아 제가 뒤따라 가는 것처럼 느껴졌었데요. 불안해서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평소에 잘 안 가던 골목길로 들어섰고, 골목에 들어서자 걸음이 빨라진 저를 보고 아차 싶었데요. 그렇게 불안해하면서 집에 가던 거였죠. 골목만 벗어나면 바로 집인데 제가 뛰니까 놀란 거였데요. 제가 다가갈 때 극도로 불안했었고, 갑자기 어딘가에 전화를 하니까 이상했고, 가방을 찾으니까 다행이다 싶었데요. 지갑을 찾는 줄 알았데요. 구급대원이 오고 제가 사라지자 그제서야 안심이 되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확인차 경찰에 신고하고 혹시나 해서 문 앞에서 지키고 있던 거였다는 것을 뒤늦게 듣고 참 당혹스러웠어요.
신분조회하고 계약서 확인시켜드리고 혹시 몰라 주인집 아저씨까지 대면하시고, 경찰분이 확인하시고 서로 상황을 설명해주고 서로 죄송합니다 사과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되었죠. 
아! 그 여자분은 아랫집에 살던 분이었어요. 서로 비슷한 시기에 입주를 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도록 얼굴 한 번 못 보고 누가 사는지도 몰랐던 거죠.   

몇 주 안돼 아랫집에 그분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가셨다 했어요.

소설을 읽으면서 저에게는 어이없고 당황스럽던 일, 가끔 이렇게 계기가 없다면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는 작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시달리 수밖에 없는 큰일이 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날 하필이면 그 동네에 '뭇지마 살인사건'이 있었다고 뉴스에 보도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이 문장을 읽는데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존을 위협받는 일 이란 것.
그때의 그 분도 생존을 위협받는 공포 때문이겠죠.

조남주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해하는 많은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방향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같은 상황이지만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거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사회적 이유도 적지 않다는 것을. 살면서 남자로서 여자로서 참 쉽게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생각해 볼 것들이란 것까지요.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키워졌다.
꼭 엄마와 딸 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가장 작은 사회 가족, 부모가 살아왔던 생활과 행동을 그대로 보고 배우면서 문화를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과정에서 왜?라는 질문이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생각났어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자유'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존중한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도를 가지고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커가길 바라잖아요.

 

 

 

눈치 없을 수 있는 권력
생각이 많아졌어요. 그냥 평상시에 나도 모르게 하는 말속에 눈치 없는 권력이 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자연스럽게 하는 많은 생각들 중에서도 누군가는 눈치를 봐야 하는 것들도 있었던 것 같은 기분.
아니 사실이겠죠. '좋다' '예쁘다' 한 마디도 상황에 따라서는 강요일 수 있겠다 싶어요.

서로 많은 대화를 했다면 괜찮았을까요?
의미 없는 말에 많은 의미를 담았던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 그랬어요.
오해의 반대말은 더 큰 오해라고.
서로의 오해를 오해하기에 우리에겐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주의와 간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에는 '개성'을 존중할 줄 아는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우린 지금 '경쟁'만 있는 것 같아요.

뉴스 속에서 남성과 여성, 고용주와 노동자. 대립관계를 부치기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해요.

혐오, 갑과 을, 격리, 격차, 차이, 조정 같은 단어들이 품고 있는 뜻 속에는 이기고 지는 명확한 선이 있어 구분된다는 것을요.

 

 

 

'엄마'라는 위대한 이름이 있죠.
어느 순간 '개인'은 사라지고 관계 속에 끼인 존재가 되어 버린.
평생 '희생'하며 살아가는 이름 '엄마'

당연하다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서야 배워요.
함께라는 말보다 '사랑'이라는 희생을 먼저 했던 '엄마' 누구를 위해서가 당연한 것이 아닌데
우린 왜 당연하다 생각했을까요.

전쟁 이후 망가져 버린 사회를 빠른 시간 동안 극복했던 부작용이라 하기도 합니다.
여유가 없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죠.
이제서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까요?

전쟁 직후 그 힘들었던 그때만큼 우리들이 살기 힘들어졌기에 벌어지는 일이라 생각해요
절대적인 수치로 비교하면 너무 잘 살고 있지만 '공정성'이 결여되어 정착된 사회가 만들어온 박탈감을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몰고 온 거죠.

무엇이 정답이라 말할 순 없지만 살아가는데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책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어쩔 수 없이 '자유론'이 떠오르는 문장이기도 하죠.
책임 없이 개인의 이익만을 위한다는 것은 도덕적 결여이자 '자유'에 반하는 일입니다.

우리 '경쟁'보다는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 그리고 그다음까지
웃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요.

p.48
돈이 없는 게 그저 조금 아쉬운 일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받는 일이더라

p.50
괜찮냐고 놀랐겠다고 마음 편안해질 때까지 곁에 있어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게 힘들었어.

p.51
근데 엄마 그거 알아? 나는 나 같은 딸로 태어난게 아니라 나 같은 딸로 키워진 거야, 엄마에 의해서.

p.95
"눈치 없을 수 있는 것도 권력이야"
언니 말이 맞다. 눈치가 없다는 것은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p.118
남편은 당연히 육아가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사회는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을 ‘극성‘이라 매도한다. 그럼에도 엄마들은 직장을 다니건 다니지 않건 서로 도우며 자기 몫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혜는 달라져야 하는 것은 엄마들이 아니라 남편과 학교와 회사와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p.273
아제는 내가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기만 하지 않는다. 내 삶과 태도와 가치관이 주변의 사람들을, 조직을, 더 넓게는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책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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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게 서른이 된다
편채원 지음 / 자화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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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를

 

리뷰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서른이란 나이를 지나왔다.
아니 아직 지나고 있는 중이다.

'서른'
십 대 때 바라본 서른 살은 너무나 눈부셨다.
찬란한 꿈을 이뤄가고 자신의 영역에서 빛나게 일하는 사람들을 봐왔다.

스무 살 무렵 바라본 서른은
반반이었다. 꿈을 향해 훨훨 날아가는 사람, 좌절 속에서 하루를 버텨내기 급급한 사람.
그들을 바라보며 정말 열심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지만

내가 서른이 되었을 땐
거창할 줄 알았던 모든 것들이 부질 없이 지나갔음을 느꼈다.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나 역시 겨우 하루를 버텨가는 서른을 살아가게 될 줄은 짐작조차 못 했는데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을까 후회를 넘어 자괴감이 들었었다.

누구나 그렇듯
지금의 서른은 살아가기 힘든 게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그 역시 이미 가진 자들의 폭력처럼 다가왔다.

서른... 두 번째, 세 번째 서른...
30이란 숫자가 하염없이 흘러가는 일상에
"누구나 그렇게 서른이 된다"라는 위로가 다가왔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시험공부를 하고 또 해도 늘어만 가는 불합격이란 글자에
자존감이 하염없이 떨어져 나가는 때.
오늘 하루라는 시간도 초조하게 보내면서 오로지 공부, 또 공부에 빠져 사는 일상에 찾아온
'쉼'이라는 작은 틈.

기억 저편에 묻어 놓고 외면해 왔던 지난 시간들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
꿈을 꿨고, 사랑에 행복했고, 이별에 아파했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사람을 만나 관계를 가져가며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더라고 밝게 빛나 생기 있던 그때
실패는 특권이라며 겁 없이 도전했던 수많은 모험

그리고...
이젠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사랑'...

언제나 머물러 있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서른'은 기억들이 쌓여 추억이 되어 버릴 정도이 시간이란 것을 알게 된다.
늦은 건 아닐까?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걸까?

자신 없는 고민에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 그대로 잘 하고 있다.
그렇게 서른이 되었고, 또 서른을 살아가고 있다.

토닥이는 편채원의 문장이
힘겹게 버텨오던 스물아홉, 서른둘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지금도 잘 하고 있다.
어루만져 준다.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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