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 였을까요, 불편해지기 시작한 게.
불편했던 것을 알게 됐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강남역 사건에서 막연했던 것이 선명해진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뒤 벌어진 많은 일들,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이라고 해야겠죠.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간접 경험일 수밖에 없어 여전히 잘 모릅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요.
여성 그중에서도 평범함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일이 매 순간 공포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뉴스 속에서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만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저 사회구조 문제 탓을 했죠.
그 구조를 만들어 온 것이 사람이란 것을 외면했던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세상의 절반이라는 '그녀'들의 삶을 생각해 봤습니다.

뉴스와 통계 속에서는 치안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불안을 느꼈던 적이 그렇게 많진 않았어요.
한밤중에 돌아다녀도 안전한 몇 안 되는 나라, 그게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이죠.

남자로 살아온 시간,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장남, 번듯한 직장을 가져야 하고 부모님의 노후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책임이란 말의 무게감에 익숙해지고 나니 이제서야 주변이 보이는 걸까요. 조남주님의 소설을 읽으면서 "아!"라는 탄식, 한 편으론 생각 전달이 잘 안된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린 여자 혼자서'에서는 20대 자취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어느 늦은 밤, 여름이었습니다.
대학 동기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고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이었죠.
집에 가는 골목길은 조금 어두운 편입니다. 대로에서 살짝 들어간 골목은 사람도 잘 다니지 않죠.
버스정류장에서 골목길을 통해 걸어가는 편이 대로를 통해 가는 것보다 10분을 절약할 수 있어 평소에 다니던 길이었어요. 손에 휴대폰을 보면서 집에 가던 중에 배에서 신호가 왔죠. 근처에 화장실은 없고 집까지 5분 정도 거리,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발걸음을 조금 빠르게 걷다가 눈앞에 집이 보여 살짝 뛰었는데 앞에 가던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 거예요. 저도 놀랐죠.
앞에 사람이 쓰러지는데 갑자기 긴장했죠. 심하게 다친 건 아닐까 걱정되어 다가갔어요. 괜찮냐고 어디 다쳤냐고 물어보는데 대답은 없고 온몸을 떨고 있어 119에 신고를 했어요.
혹시 평소에 지병이 있어 비상약을 가지고 다닐까 싶어 가방을 찾았어요.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여성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뭐라고 말을 했어요. 잘 안 들려 조금 가까이 다가가 "네?, 말씀하세요."라며 대답을 했죠. 저는 계속 가방 속에 약이 있나 찾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왔어요. 다가온 구급대원에게 저분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져 바로 신고했다 말하고 화장실이 정말 급해서 집에 간다고 얘기하고 들어갔어요. 집에서 편하게 볼일을 보고 나왔는데 문 앞에 구급대원 분이 기다리고 있었죠. 신고자 신원확인 때문이라고 해서 신분증 보여주고 전화번호 확인하고 있는데 경찰분들이 또 올라오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쓰러진 여성분이 저 때문에 놀랐던 거였어요.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신경 쓰여 티 내지 않고 빨리 걸어가던 중이었데요. 늦은 시간 단둘만 내렸는데 하필 방향이 같아 제가 뒤따라 가는 것처럼 느껴졌었데요. 불안해서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평소에 잘 안 가던 골목길로 들어섰고, 골목에 들어서자 걸음이 빨라진 저를 보고 아차 싶었데요. 그렇게 불안해하면서 집에 가던 거였죠. 골목만 벗어나면 바로 집인데 제가 뛰니까 놀란 거였데요. 제가 다가갈 때 극도로 불안했었고, 갑자기 어딘가에 전화를 하니까 이상했고, 가방을 찾으니까 다행이다 싶었데요. 지갑을 찾는 줄 알았데요. 구급대원이 오고 제가 사라지자 그제서야 안심이 되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확인차 경찰에 신고하고 혹시나 해서 문 앞에서 지키고 있던 거였다는 것을 뒤늦게 듣고 참 당혹스러웠어요.
신분조회하고 계약서 확인시켜드리고 혹시 몰라 주인집 아저씨까지 대면하시고, 경찰분이 확인하시고 서로 상황을 설명해주고 서로 죄송합니다 사과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되었죠. 
아! 그 여자분은 아랫집에 살던 분이었어요. 서로 비슷한 시기에 입주를 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도록 얼굴 한 번 못 보고 누가 사는지도 몰랐던 거죠.   

몇 주 안돼 아랫집에 그분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가셨다 했어요.

소설을 읽으면서 저에게는 어이없고 당황스럽던 일, 가끔 이렇게 계기가 없다면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는 작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시달리 수밖에 없는 큰일이 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날 하필이면 그 동네에 '뭇지마 살인사건'이 있었다고 뉴스에 보도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이 문장을 읽는데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존을 위협받는 일 이란 것.
그때의 그 분도 생존을 위협받는 공포 때문이겠죠.

조남주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해하는 많은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방향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같은 상황이지만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거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사회적 이유도 적지 않다는 것을. 살면서 남자로서 여자로서 참 쉽게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생각해 볼 것들이란 것까지요.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키워졌다.
꼭 엄마와 딸 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가장 작은 사회 가족, 부모가 살아왔던 생활과 행동을 그대로 보고 배우면서 문화를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과정에서 왜?라는 질문이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생각났어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자유'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존중한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도를 가지고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커가길 바라잖아요.

 

 

 

눈치 없을 수 있는 권력
생각이 많아졌어요. 그냥 평상시에 나도 모르게 하는 말속에 눈치 없는 권력이 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자연스럽게 하는 많은 생각들 중에서도 누군가는 눈치를 봐야 하는 것들도 있었던 것 같은 기분.
아니 사실이겠죠. '좋다' '예쁘다' 한 마디도 상황에 따라서는 강요일 수 있겠다 싶어요.

서로 많은 대화를 했다면 괜찮았을까요?
의미 없는 말에 많은 의미를 담았던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 그랬어요.
오해의 반대말은 더 큰 오해라고.
서로의 오해를 오해하기에 우리에겐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주의와 간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에는 '개성'을 존중할 줄 아는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우린 지금 '경쟁'만 있는 것 같아요.

뉴스 속에서 남성과 여성, 고용주와 노동자. 대립관계를 부치기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해요.

혐오, 갑과 을, 격리, 격차, 차이, 조정 같은 단어들이 품고 있는 뜻 속에는 이기고 지는 명확한 선이 있어 구분된다는 것을요.

 

 

 

'엄마'라는 위대한 이름이 있죠.
어느 순간 '개인'은 사라지고 관계 속에 끼인 존재가 되어 버린.
평생 '희생'하며 살아가는 이름 '엄마'

당연하다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서야 배워요.
함께라는 말보다 '사랑'이라는 희생을 먼저 했던 '엄마' 누구를 위해서가 당연한 것이 아닌데
우린 왜 당연하다 생각했을까요.

전쟁 이후 망가져 버린 사회를 빠른 시간 동안 극복했던 부작용이라 하기도 합니다.
여유가 없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죠.
이제서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까요?

전쟁 직후 그 힘들었던 그때만큼 우리들이 살기 힘들어졌기에 벌어지는 일이라 생각해요
절대적인 수치로 비교하면 너무 잘 살고 있지만 '공정성'이 결여되어 정착된 사회가 만들어온 박탈감을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몰고 온 거죠.

무엇이 정답이라 말할 순 없지만 살아가는데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책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어쩔 수 없이 '자유론'이 떠오르는 문장이기도 하죠.
책임 없이 개인의 이익만을 위한다는 것은 도덕적 결여이자 '자유'에 반하는 일입니다.

우리 '경쟁'보다는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 그리고 그다음까지
웃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요.

p.48
돈이 없는 게 그저 조금 아쉬운 일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받는 일이더라

p.50
괜찮냐고 놀랐겠다고 마음 편안해질 때까지 곁에 있어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게 힘들었어.

p.51
근데 엄마 그거 알아? 나는 나 같은 딸로 태어난게 아니라 나 같은 딸로 키워진 거야, 엄마에 의해서.

p.95
"눈치 없을 수 있는 것도 권력이야"
언니 말이 맞다. 눈치가 없다는 것은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p.118
남편은 당연히 육아가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사회는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을 ‘극성‘이라 매도한다. 그럼에도 엄마들은 직장을 다니건 다니지 않건 서로 도우며 자기 몫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혜는 달라져야 하는 것은 엄마들이 아니라 남편과 학교와 회사와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p.273
아제는 내가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기만 하지 않는다. 내 삶과 태도와 가치관이 주변의 사람들을, 조직을, 더 넓게는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책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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