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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상처받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관계의 심리학
양창순 지음 / 센추리원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까칠하게 살기!!
어쩌다 이책을 읽게 되었을까.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살짝 살짝 보다보면 언제나 진부한 이야기에 뻔한 이야기만 늘어 놓는다는 생각
이 든다. 거의 대부분의 심리학 책을 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도 그런 편견에서 온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그래 제목이 이정도는 되어야 심리학 분야에서 눈길을 끌지. 거기에다 부재가 '상처받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관게의 심리학'이란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몇년 전 부터 꾸준히 들어 왔다 그리고 '소통'이 화두인 해도 있었지.
지금도 응답없는 '소통'만 외치고 있는 분들이 계시지만...
'관계'하면 '소통'이란 단어가 연상되는게 당연시 되어 버린 사회에서 '까칠함'을 말하는 심리학책을 처
음 접해서 그런지 몇장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웃기도 하며 나를 돌아 보느라 하루꼬박 책만 읽었다.
프롤로그에서 말하는 '까칠함'에는 3가지 조건이 만족해야 한다.
1. 내 의견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정보
2.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와 사랑
3. 매너(어떠한 경우에도 끝까지 매너 지키기)
요 세가지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까칠함'이 아니라 '오만'이고 '방만'일 수도 있으며, 관계에 치명타
를 입힐 수 있으니 주의 하시길. '까칠하기'도 아무렇게나 함부로 하는게 아니다.
진부해서 진부한 말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어쩔수 없이 진부한 말을 써야할때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진부하다보니 진심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은 걱적이 들기도 한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역시 진부함의 결정이다.
심리학,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에서 빠지지 않는 말, '반성'하고 '소통'하고 '관심'갖고, '내려'놓고, '사
랑'하고, '이해'하는 뭐 이런 말들 역시 빠짐없이 전부 들어 있다.
그런데 '진부함'보다는 '색다름'과 '위안'을 느꼈다.
책을 다 읽고나니 관계에 대해서 위로 받고 싶고 지쳐 있었던 나를 발견했다는 것.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종일 빠질 수 밖에 없었나 보다.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종류의 책을 나도 모르게 푹 빠져 읽고 마지막 장을 덥고 '게운함'을 느껴보는것도
오랜만이다.
그래서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의 평점은 후함.
진부한 이야기 들이지만 진부하기에 어려운 이야기들을 마음에 팍팍 꽂히고, 생각하게 하는 힘이 진부
함을 넘어 설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정신과 전문의로써 경험과 진심이 담겨있음을 느꼈기에 좋게
다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독서는 그 책을 읽을때의 상태에 따라서 보이는것이 정말 다양하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에서 이번에 나를 위로한 문장들을 모와 봤더니 생각보다 많다.
그 문장들을 중심으로 책과 내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p.78 "인생의 과제는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는 것의 가장 첫 번째 과제는 바로 나 자신에 대해 아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눈을 통해, 나의 귀를 통해, 나의 생각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나의 언어와 행동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곧 세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상을 안다는 것은 바로 나를 아는 것이고, 나를 아는 것은 세상을 아는 것이다. 자기를 아는 것이 힘이 되는 이유는 바로 자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고, 세상 그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알아야만 우린 운명을, 그리고 인생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아는 것' 그것도 나 자신을 아는것.
이것 만큼 어려운게 또 어디 있을까
살다 보면 정말 많은 문제들이 놓여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 문제를 객관 적으로 바라보
느냐 이고 그러려면 우선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이번 처럼 마
음에 깊숙히 들어오긴 처음이다. 아무래도 내 상황이 많이 불안 했나보다.
거울을 마주보고 빤히 나를 처다 본다고 나 자신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는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고, 때때로 나도 모르는 내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의외이기도 한... 그 모두가 나인데 내가 그렇게 다양하게 있는데 나 스스로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니 수용의 마음가짐이 답인듯 싶다.
그렇게 다양한 내가 있다는 것을 받아 들이는 것, 머리 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나'를
조금은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어쩌면 살아가면서 평생의 과제중 하나가 바로 '나'를 알아가
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나'를 알기는 참 힘들다.
절에서 평생 수행만 하는 스님들도 스스로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데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깊히 생각하고 성찰하고 있을까?
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 전지전능하고 완벽한 그분만 스스로를 잘 알것 같다.
사람이야 워낙 불안전한 상태니까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찾아 가는것이 삶이겠지...
그래도 '나'를 좀 알아보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해본다.
'나'는 누구인가?, 내 마음은 지금 어떤지, 내 생각은 무엇인지, 내 고민은 뭐가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등등... 일년에 한두번 이라도 시간을 내어 한번 물어 보자.
지금의 '난' 누구 이고, 나에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p.97 "사람들은 쉽게 익숙한 것에 길들여 진다. 그리고 한번 익숙해진 것은 웬만해선 바꾸지 못한다."
p.99
"그렇다면 우린 왜 그처럼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질과 상관없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 ... 우리가 그토록 낯선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모르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익숨함에 대한 이야기 이다. 관계에서도 익숙함에 젖어 새로운 관계가 두려울때가 참 많다.
나만 그런줄 알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다 그렇다니 적잖이 안심이 된다.
SNS덕에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는 것 처럼 보이기는 하
지만 막상 실제적인 만남에 대해서는 더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SNS라는 특별한 공간에서는 '내'가 직접적으로 다치는 일이 드물기도 하고 여차하면 '가면'을 씌운
'나'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 아니 그도 아닐때 그냥 도망가도 상관은 없다.
SNS란 공간이 그렇다.
전부 진심이기도 하고 전부 거짓이기도 한 공간 그런 공간에서 상처를 받으면 현실에서의 관계에 더욱
어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트라우마'라는 녀석이 높고 단단한 벽을 쳐버리기 때문에 그렇지... 그래서 우리는 알고 있는 관계, 편
안한 관계를 좋아하고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은 있지만 두려움 때문에 망설여지고 그러다 보면 결국은
익숙함을 선택하게 되는 것.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잘 했다.
낯섬에 대해서는 위험이 뒤따른 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경험적으로 저 깊은 심연에 내재되어 있다.
여기서 새로움에 대한 의지와 호기심의 크기에 따라 새로움과 익숨함의 선택이 달라진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익숙함을 이겨내면 새로움을 선택하게 되는 것.
좀더 생각해 보면 역시 '나를 아는 것'과 관련이 있다.
나를 잘 알고 있다면 그 어떤 위험과 돌발 상황이 와도 의연히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또는 '자존
감'이 두려움을 극복해서 새로움을 선택하게 된다. 이건 또 '여유'와도 같다.
'있는 자의 여유'라는 말 자주는 아니더라고 이맘때 쯤이면 한두번은 들어보거나 써보거나 했을테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지니 자연스럽게 '여유'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변하지 않는 '진리'중 하나 아닐까.
'관계'에 대해서도 이런 여유와 자신을 갖자.
어찌 됐든 내가 관심이 가고 호감이 있어야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이는 상대방 역시 같
을 거라는 생각.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잠깐 접어 두고 상대방도 관계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먼
저 관계를 맺어 보자.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좋다는데 싫다는 사람... 그렇게 많지는 안겠지...
p. 126 "특별한 기회를 기다리지 마라. 평범한 기회를 잡아서 위대한 것으로 만들라"는 말이 있다. "오직 하느님만이 처음 하는 일도 완벽하게 하는 법이다."란 말도 있다. 완벽주의에 대한 욕구 때문에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유용한 경구가 있을까 싶다.
인용된 문장이긴해도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읽고 또 읽은 문장... 특별한 준비와 완벽한 기회! 사람이란 원래 완벽하지 못한 존재인데 어느 순간부
터 완벽해 지려 그리 애를 쓰게 되는지.. 기회도 그렇다. 아직 준비가 안됐기에 거절한다.
좀더 완벽해 지고 나서 한다는 생각 버리자. 요즘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완벽함을 위해서 너무 심하게 상처를 냈다.
살아가는 이유중 하나가 완벽 하지 못하기 때문에 빈 곳을 채워간다는 것.
분명 알고는 있는데 그동안 왜 외면하고 있었을까... 싶었던 말...
취업도 그렇다. 너무 완벽하게 준비한 다음에 도전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도전 부터 하자.
여러번 도전하다 보면 알게 되고 그렇다 보면 또 뜻하지 못한 기회를 잡을 수도 있고.
인생이란 정말 한치 앞을 모르는 거잖아.
그리고 또 하나. "오직 하느님만이 처음 하는 일도 완벽하게 하는 법이다."라는 말...
이 문장을 읽고나서.. 신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신'이 있다는 것은 믿는다. 다만 '유일신'은 믿지 않는다.
이유야 '신'이 유일하다면 우리도 다 하나의 의지이고 다 같은 신일 테니까.
사람이 각각의 개성이 있는 걸 보면, '신'은 유일한 존재도 아니고 완벽한 존재도 아닐 것이다.
완벽하다면 위의 말처럼, '처음하는 창조'부터 완벽해야하는데 세상은 실수 투성이에 생존 경쟁이 정말
치열한 전쟁터 이니까. 그런 관점에서 전지전능에 완벽하다면 우리의 존재 역시 있을수 없으니 유일하
지는 않다는 것이 내 논리이다. 그래도 '신'의 존재는 믿는다. 다만 우리가 그 의지를 알 수 없다는 생각
은 여전하다. 그러는 것이 삶이 좀더 윤택해지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p.183 '우리가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때로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 프랑수아즈 돌토는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버린 것들을 자신의 내면에서 다시 찾는 순간 성장한다"고 했을 것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주장하지만, 어느 순간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내가 모르는 생의 이면에 대해 열린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뜻에서 말이다.
생의 이면에 대한 열린생각. 이것도 어려운 일중에 하나.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험이 하나 둘 쌓이고 그러다 보면 정말 익숙한 것들이 생겨버린다.
그래 그렇게 익숙해 질때 그리고 그 익숙한 방법으로 무엇인가 큰 성취를 했을때. 그때 우리는 그 경험
에 갇혀 버려 다른 것을 볼 수 없게 된다.
내가 경험해서 성공한 그 방법 하나가 정답으로 보이기에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 오지도, 반하는 말은
철저히 무시하게 되는 것이겠지.
알면서도 참 안되는 것중 하나.
어쩔수 없다 매일 매일 나를 돌아보며 어땠는지 생각하는 것.
어쩌면 방법은 이것 하나 일 듯 싶다. 그래 어렵지만 한번 변해보기로 마음 먹었으면 실천은 해봐야지
어렵더라도 도전하고 변해보는 것 그리고 변할 수 있다는 것 그것역시 이간이 가진 장점이니까.
이책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뭔가 변해 보자는 마음을 먹었으니 그마음을 알아차리고 변해보자
열린 시각을 갖기 위한 노력! 편협해 지지 않기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 그리고 그들에게 공감해주기.
책속의 문장으로만 배웠던 것들
실천으로 하나 하나 채득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되는 일!
도망가지 말자, 포기하지 말자.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해야 될 것! 힘내자!!
p. 184 "유머감각이란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웃을 수 있는 능력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열린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만이 그런 유머를 이해 할 수 있다."
그렇지. 유머감각도 빼놓을 수 없지.
평소 진지하다는 말을 너무 자주 들어서.. 그 진지함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나도 좀 내려 놓기를 해보는데.. 이게 기질적인 문제인지 쉽지가 않네...
그래서들 술의 힘을 빌리는 가봐... 나도 아주 가끔은 그럴때가 있다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도저히 맨정신으로 술취한 척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딱 한잔의 술로 최면을 건다.
내려놓자. 그래 할 수 있다.^^
p.228 영국 작가 마크 해먼은 말했다.
"세상 그 어떤 일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문하는 태도, 그서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들은 늙기 시작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깊은 반성을...
아마 대 다수의 사람도 그럴껄...삶에 치여 먹고 사는 문제가 까마득해,
그도 아니면 정말 별생각 없이 살아가느랴고.... 끊임없이 자문해본적이 언제인지 아니 있기나 했는지
기억도 안날테지... 그런 생각을 하는 모두는 이미 늙기 시작 한것.!
늙어 버린 만큼의 시간을 붙잡아 본다.
삶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해 보기!!
나이 먹는건 당연한데.. 늙음에 대해서는 아직은 두렵잖아.^^;
p. 251 희망은 가장 절망했을 때 찾아온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지금 잘나간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니며 지금 불행하다고 해서 내 인생 전체가 잘못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기 전까지 내 인생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끝까지 살아봐야 하는 것이다.
깨달았다...
머리는 알고 있지만 아직은 잘 모르는 것. 깨달은 것은 아니네
그래도 믿는다 희망은 가장 절망했을 때 찾아온다는 말.
그리고 난 아직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
솔직히 절망이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 맞는 말,
크게 보면 삶이란 것도 잘 모르겠고, 성공이란 것도, 행복이란 것도, 슬픔과 아픔...
그래 그냥 살아가는 것 전체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아직은 어린아이지.
철이 안든 것이고, 무게가 없고, 그런 것이겠지...
최근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잘 모르겠는 것.
그것이 "삶"인데.... 나도 모르게 '자만'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
p. 296 파도를 잘 타는 사람은 파도의 움직임에 자기를 내맡긴다. 때로는 자연의 변화에 나를 내맡기면서 '아하, 나도 이래서 자연의 일부구나'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졸리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그러다가 뭔가 하고 싶은 새로운 기분이 들 때,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무르익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이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이다.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그저 '졸리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캬~!!
대한민국의 거의 대부분이 하고 있는 고민 아닐까?
먹고 싶을때 먹고 자고 싶을때 잘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들 살아가느랴고 바쁜데... 밥먹는 시간은 일하는 시간에서 정해져 있어 어느덧 그시간에 익숙해져
있고, 자는 시간 역시 사회의 통념상 자는 시간과 출근하는 시간이 있어 거기에 익숙해져 있는데.
그래서 그렇게들 주말만 되면 밤샘을 하고 그렇게 먹으러 다니고, 그렇게 자고 있는 것.
아무런 걱정 없이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고, 먹고 싶을때 먹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p. 313 "남들의 시선이라는 것도 결국은 자기 시선인 경우가 많다. 남이라는 것도 궁극적으로 자기가 자기를 비춰보고 싶은 신기루와 같은 거울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알 때 비로소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남의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고 사는 편이였나?
이 문장에 표시를 해둔것 보니까 그랬나 보다...
오늘 정말 나에 대해서 몰랐던 많은 부분을 느낀다.
그래 '내속엔 내가 정말 많아'... 그래도 그게 다 나인걸... 이젠 알게된 만큼 돌봐야지.
"안녕? 나야... 우리 앞으로 잘 지내자. 잊지 않고 잘 챙겨줄게. 사랑해~~"
p.318 내게는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사랑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제대로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도 나뿐이다. 우리의 문제는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어려워한다는 데 있다. 그저 한 걸음만 내디뎌도 나머지 걸음부터는 훨씬 수월하리란 걸 알면서도 선뜻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상투적이고 진부하지만 유효한 것 '사랑'하라!
그렇게 어렵도 다양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사랑' 한 단어로 귀결 된다.
'사랑'하라. 나 자신을
'사랑'하면 알고 싶고 알게 되고, 용기를 내어보기도 하며, 도전에 망설임도 줄어 든다.
스피노자의 철학을 이용해서 '사랑'을 이야기한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도 이미 배웠다.
'사랑'하라는 것을, 아니 그 전에 태어나기 전 엄마의 뱃속에 있을 그때부터 우리는 배웠다.
'사랑'을... 그것을 다만 잊고 살았을 뿐이야.
나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그리고 인생을 '사랑 하자'.
까칠함의 정체도 결국은 '사랑'이였어.
나 '사랑' 하리라~, 세상 모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