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쁜 일들을 끝내고 잠시 숨을 고르는 시기. 체력이 이 지경까지 와 있었는데 어떻게 버텼지? 싶을 정도로 2,3일간 피로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주위의 증언에 의하면, 상태는 엉망이나 눈빛만은 일 끝나고 즐거워서 죽어가는 사람이었다고.) 어제는 정말로 오래간만에 장을 봐서 밥을 해 먹었다. 밥을 새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기도 볶고 오뎅조림도 하고 국도 만들어 먹었다. 가루가 녹다 못해 가라앉을 정도로 진한 아이스티를 마시면서 태권도 경기를 관람. 10시도 되기 전에 졸음을 이기지 못해서 겨우 설거지만 해놓고 잠을 잤다. 출장 갔던 동거녀가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듣고 쿨쿨. 그런데 새벽에 눈을 떠 보니 바깥에 눈이 오는 게 아닌가. 좁쌀만 한 하얀 눈이 쌓일락 말락, 그 위로 우리 개 똘이가 뛰어다닌다. 어? 여긴 옛날 우리집 마당인데? 아이코, 꿈이잖아. 덕분에 새벽부터 "나는 눈이 좋아서 꿈에 눈이 오나 봐. 온세상이 모두 하얀나라였지 어젯밤 꿈 속에" 하는 동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나 눈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데.

2. 바쁜 중에 이따금 올림픽 경기를 보았다. (초기에 내가 보던 시점에서) 은메달 7개 동메달 4개 딴 프랑스보다 금메달 하나 딴 타이가 메달 순위 우위에 있는 걸 보고, 저러니 금메달 금메달 통곡을 하지 쯧쯧 소리가 절로 났다. 올림픽 방송의 상업성이야 더 말할 것 없지만, 이렇게 한번씩 나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다. 나는 베드민턴은 그냥 점심 먹고 하는 운동인 줄 알았다.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운동이었다니! 화면으로도 잘 못 알아보겠는 셔틀콕을 어떻게 보고 쳐 낸담? 인간이 어떻게 저만큼이나 뛰어? 나와 동거녀는 "악! 얘! 얘! 얘들아! 어머!" 소리를 연발하며 다소 방정맞게 베드민턴 경기를 보았다. '역도'라는 경기의 특별한 뉘앙스에 대해 숙고해보았는데 그건 꽃양배추님이 너무 훌륭하게 써주셨으므로 패스.("나는 못생긴 나무를 본 적이 없다"라니 꽃양배추님 너무 멋져! ♡.♡) 육상 남자 100미터 경기를 보면서는 경이로운 인간의 근육에 찬탄했다. 한치의 비효율도 허용하지 않는 몸의 움직임이란. 이름은 까먹었는데 그 신기록 세우고 금메달 딴 자메이카 청년. 자기가 1등인 걸 알고 약간 설렁설렁 뛰어 들어오는 걸 보고 우리 이사님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고 (아주 조금) 욕을 하셨지만, 뭐 내가 보기엔 그래서 재미나던데. 이사님, 꼭 최선을 다해야 돼요? 전 회사에서도 최선 잘 안 다하는데.... 욕하실라. 

3. 언젠가 책꽂이를 혼자 힘으로 옮기고 섬이라도 하나 옮긴 양 잘난척을 했던 네꼬씨이지만, 고백하건대 내겐 어려운 일들이 참으로 많다. 다음은 혼자서 작성해본 난이도 부등식.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를테면 다림질이 청소보다 어렵단 뜻이다.

다림질 > 청소

비빔면 만들기 < 짜파게티 만들기

T자 주차 < 일렬주차

물약 먹기 < 가루약 먹기

계란후라이 > 된장찌개

계란후라이 > 오뎅 볶음 (계란후라이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띄어쓰기 > 맞춤법

자랑하기 < 가만 있기

얼굴 외우기 < 이름 외우기

웃었던 일 잊기 > 억울한 일 잊기

4. 아무래도 마음은 줏대가 없는 모양이다. 체력이 떨어지니 마음도 덩달아 약해지고, "바쁨" 모드로 빗장을 걸어 막아두었던 상심의 파도가 고양이 노란 털을 흠뻑 적신다. 다음 주부터는 특별 체력 관리에 들어간다. 운동도 하고(이 얘기를 여기 적는 것은 '공언'을 함으로써 나를 압박하려는..... 말하자면 배수진. ㅠㅠ) 술도 줄이고(끊을 수는 없으니) 아침 꼭 먹고 일찍 자겠다. 재밌는 책 많이 읽고 웃기는 글을 쓰고 좋은 음악을 듣고 멋진 그림을 보겠다. 다른 서재에도 열심히 기웃대고 온갖 참견을 서슴대지 말아야지. (응? 이건 좀 이상한가?) 지금 네꼬씨는 이런 분들과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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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8-2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너지가 펄떡펄떡 느껴지는걸요! 다음 페이퍼 예고제 완전 좋아요! 함께 하는 책들도 근사!
전 이름보다 얼굴 외우기가 더 어렵구요, 그리고 길은 절대 못 외워요ㅠ.ㅠ

네꼬 2008-08-22 20:17   좋아요 0 | URL
하하. 펄떡펄떡이래. 내가 무슨 물고긴가? 고양이 얼굴을 한 물고기라, 그것도 재밌겠어요. 하하핫.
나는 길 되게 잘 외우는데. 마노아님, 나랑 같이 다녀요. (^^)

mong 2008-08-22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47, 총 17717
오오-숫자가 맘에 드네
그런데 비빔면하고 짜파게티하고 난이도가 똑같은 저는 머에요~
비빔면, 짜파게티 < 냉면

네꼬 2008-08-22 20:18   좋아요 0 | URL
아휴 난 냉면은 아예 시도도 못 해봤어요. 할 줄 알면 아마 어렵더라도 여름 내내 해서 먹을 테지만. 17717은 어쩐지 늘씬한 게 보기 좋은 숫자네요.
: )

nada 2008-08-22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그, 계란후라이가 그렇게 어려워요? 응?
깨물어주고 싶소. (귀여워서.)

그러고 보니 그러네. 꼭 최선을 다해야 돼요?
그런 의미에서 전 그 동메달 거부했다는 성깔 있는 스웨덴 선수가 맘에 들어요.
(다른 의미에선가.. - -a 암튼.)
자긴 죽어도 고작 동메달 감은 아니라는 거잖아요.
약간 재수없는 자신감. 꼴통스런 고집. 그런 것도 매력 있드라구여.

제발 부탁인데 참견 좀 서슴대지 말아요.
네꼬 씨 없어서 심심했어요.

네꼬 2008-08-22 20:22   좋아요 0 | URL
아얏. 왜 남의 귀를 깨물고 그래요? >.<
이상하게 나는 계란후라이가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팬을 뜨겁게 달군다. 기름을 넉넉히 두른다. 계란을 깬다. 아래가 적당히 익으면 뒤집는다.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고 해도 항상 엉망. 나중엔 원래 스크렘블드 에그를 하려고 한 거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지만... ㅠㅠ 그래서 난, 동거녀가 계란후라이 해줄 때가 제일 좋아요.

동메달 내팽개친 그 선수, 나도 보았어요. 으하하. 성깔있데! 하긴 그런 사람 하나쯤 있어야지. 어떻게 모두가 승패 앞에 깔끔하겠어요? 우린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슬쩍 우리=꽃양배추님, 네꼬)

아주 그냥 귀가 아프게 옆에서 참견을 해댈 테니 각오하시라굿. ♬

마늘빵 2008-08-2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기>책사기, 네꼬놀리기>네꼬랑놀기

네꼬 2008-08-22 20:44   좋아요 0 | URL
책읽기 < 이해하기 (-_-a 긁적) 뭣이???

무스탕 2008-08-2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란후라이가 그리 어려워요? 전 계란 껍질깨기가 어려워요.
기분이 뭐랄까.. 계란 껍질을 께야 하는데 어딘가에 계란을 탁 칠때 계란이 깨질까봐 조금 조심스러운 말도 안되는 모순.. -_-a
껍질이 깨진 다음엔 거칠것 없는 후라이가 이루어 지는데 말이에요 ^^;

100미터 기록세운 자메이카 선수는 볼트에요. 이름을 들으며 너트는 어딨니? 했었어요. ㅎㅎ

네꼬 2008-08-24 16:16   좋아요 0 | URL
계란 깨는 거, 그것도 어렵죠. 엄마들이 요리할 때 냄비 한쪽에 톡 하고 계란 깨는 거 보면 경이로워요. -.- 저는 그렇게 했다간 냄비를 타고 계란이 줄줄... ㅠㅠ

너트 어딨니? ㅋㅋ 정성이 감각은 엄마 거였구나!

순오기 2008-08-23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모두 다!
네꼬님의 등장이면 뭐든 오.카.이!!^^

네꼬 2008-08-24 16:16   좋아요 0 | URL
호홋. 이렇게 반겨주시니, 자도 좋아요~ 모두 다!
순오기님의 "오카이"에 저도 힘이 납니다요.

다락방 2008-08-23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나는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계란후라이를 해다 바쳐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예요.
종로거리를 걸을때랑 계란후라이가 먹고 싶을때는 왜 이렇게 뜨거운 연애가 하고싶은지 모르겠어요. 흑흑. 그리고 계란후라이를 반숙으로 해준다면 저는 그에게 온몸을 내던질거예요. 정말로요. 불끈!


아, 여기까지 댓글쓰고 나니 너무 배가 고파요. 밥 좀 먹고 올게요.

네꼬님이 알라딘에 보이니 이제야 알라딘이 알라딘다워졌어요. 뭐랄까, 이제 나도 자주 들어와봐야지, 하는 기분이랄까요.
:)

네꼬 2008-08-24 16:18   좋아요 0 | URL
ㅠㅠ 다락님. ㅠㅠ

알라딘에 자주 들어오세요. 저 아니어도 다락님 기다리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나? 나는 말할 것도 없지. 다락님 댓글이 달려야 아 내가 지금 알라딘에 들어왔구나, 하는 걸.

:)

치니 2008-08-29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갖 참견 대환영!
네꼬님은 독일 여행기도 이렇게 예고해놓고 더이상 안써줬다는 거, 흑흑.

네꼬 2008-09-12 16:17   좋아요 0 | URL
어멋. 이 댓글에 나 답도 못 달고.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