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만에 엄마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생태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주셨다. 아무리 내가 매운 걸 못 먹어도 그렇지. 고춧가루를 더 넣었어야 하는데, 그래도 맛있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아빠는 내가 생선을 잘 발라 먹지 못한다고 옆에서 계속 뭐라고 하셨다. 내 나이 서른 셋. 게다가 생선 가시 발라 내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아빠 기술로 볼 땐 내가 어림도 없는 거다. 실력자인 아빠가 숭덩숭덩 살을 발라 주셨다. 나는 잘도 받아 먹었다. 엄마가 말했다. 배추 김치가 금방 익어 버렸어, 그래도 좀 갖고 가. 응. 너 좋아하는 알타리 김치도 담갔는데, 그건 아직 안 익었어, 알타리 무가 맵더라. 고춧가루가 매워야 맛있는데, 무가 매우면 좀 쓴데, 엄마, 그래도 익으면 나 꼭 줘.

엄마가 싸주신 배추 김치를 들고 일어나는데, 엄마가 강아지들 오줌 뉘어야 한다며 나를 쫓아 나오신다. 아빠가 따라 나올까 봐 얼른, '금방 올게요' 하고 덧붙이면서. 아파트 마당에서 엄마 나 갈게, 하고 돌아서는데 엄마가 내 소매를 잡는다. 너 무슨 일 있니? 아니, 내가 왜? 근데 얼굴이 왜 그래. 응, 피곤해서 그래, 나 오늘 출근했잖아. 그런데 네꼬야, 엄마는 네꼬 편.

엄마의 알쏭달쏭한 말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데, 에이 참, 조금 울고 싶었다. 하지만 김치 통을 들고 울면서 걷는 건 아무래도 웃기는 것 같아서 어떻게 잘 참고 집에 왔다.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눕기도 전에 벌써부터 뒤척이는 밤. 참, 아까 주차장 들어올 때 어떤 참새가 내 앞에 걸어가는 바람에 급히 차를 세웠다. 다행히 뒤에 차가 없어서 후진해서 좀 기다렸다가 겨우 들어왔는데, 그 참새는 누구였을까? 사실은 내가 아는 참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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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6-1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네꼬편.!

네꼬 2008-06-15 10:13   좋아요 0 | URL
나도! (나도 네꼬 편!) 히히.

순오기 2008-06-1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네꼬편, 든든한 빽!

네꼬 2008-06-15 14:25   좋아요 0 | URL
내 편 현재까지 세 명. 으하하핫. 네꼬는 천하무적. 뭐든지 할 수 있어.
: )


(순오기님, 광주 광주 ㅠㅠ)

도넛공주 2008-06-1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네꼬님 차였어요? 나참,다음엔 뭘로 둔갑을 해야 아는 사람을 안 만나나.

네꼬 2008-06-15 14:26   좋아요 0 | URL
아아, 어쩐지, 참새 날아갈 때 설탕 냄새 같은 게 나는 것도 같더라니. 도넛공주님이었구나, 난 또 누구라고.

웽스북스 2008-06-15 20:44   좋아요 0 | URL
저도 그참새 봤었잖아요 배추김치로 둔갑해서 ㅋㅋ
그게 도넛님이었구나

다락방 2008-06-15 22:28   좋아요 0 | URL
앗. 나는 네꼬님 차로 둔갑해서 네꼬님 태웠다가 그 참새 봤잖아요. 배추김치도 태우고 ㅋ

Mephistopheles 2008-06-15 22:47   좋아요 0 | URL
내가 어제 사무실 앞에서 도넛을 물고 날아가는 까치를 봤는데....
헛것을 본게 아니였군요...난 정신적으로 뭔가 문제가 생겼나 했어요.

네꼬 2008-06-15 23:23   좋아요 0 | URL
아이고오 어질어질 @_@ 한분씩 나타나셔야 제가 그때그때 인사를 하지요. 그러니까 어제 내가 만난 참새는 도넛공주님이고, 내가 운전한 건 다락님인데, 차에 태운 건 웬디양님이고, 지나가던 아저씨는 메피님이었던 거? 으와. 마법이 난무하는 이 마을!


으휴우 좋아라.



Mephistopheles 2008-06-16 00:56   좋아요 0 | URL
아저씨....라니....아저씨...라니....네꼬편..취소할까 고민 중...

네꼬 2008-06-16 08:56   좋아요 0 | URL
메피님 메피님, 아니아니, 청년으로 급 변경. (후아... 순간 메피님이 정말 메피스토펠레스로 보이고 말았다능;;; )

paviana 2008-06-17 00:49   좋아요 0 | URL
아니 아저씨를 아저씨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 비극을 어이해야 한단 말입니까? ㅋㅋ
메피님이 취소하세요.제가 대신 할거에욧!

네꼬 2008-06-26 17:21   좋아요 0 | URL
파비아나님 추가. 자자 그럼 내 편은 모두... 둘 네 여서 여덜 열. 열 명인가? (내 맘대로 계산.)

치니 2008-06-1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네꼬님은 부자네요.

네꼬 2008-06-15 23:14   좋아요 0 | URL
네, 보시다시피. (으쓱으쓱) 치니님이 더 부자이시면서. (잘생긴 아들도 있고.....응? 이건 아닌가?)

마노아 2008-06-15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두나두요. 네꼬님 배후할래요.^^

네꼬 2008-06-15 23:14   좋아요 0 | URL
천군만마가 여기 계셨네! (근데 안됨. 내가 마노아님 배후하기로 했잖아요!)

다락방 2008-06-15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정말로 내가 되고싶은건요, 네꼬님의 크리스마스예요.
나는 네꼬님의 크리스마스가 될게요.

네꼬 2008-06-15 23:15   좋아요 0 | URL
그럼 그렇지 우리 다락님. 자동차보단 크리스마스로 변신해주세요. 우리 올여름엔 크리스마스파티를 해볼까요? 을지로 삼겹살 후에 쥐포와 맥주를 나누며 선물을 교환하는 거야. (어머, 써놓고 보니 완전 근사하잖아!)

무스탕 2008-06-16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 잘 주무셨어요, 그날 밤 그리고 그 후 계속..?
필요하다면 말씀하세요. 얼마든지 언제든지 무릎을 빌려드릴께요.
살살 쓰다듬어도 줄께요.

네꼬 2008-06-16 19:07   좋아요 0 | URL
뒤척뒤척. 아침마다 졸려요. -_- 무스탕님...... 어흑. (엎드려 우는, 손길에 약한 고양이.)

L.SHIN 2008-06-1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가까운 사람한테서 '챙김'을 받으려면 멀리 떨어져 살아야 되는구나...
(하고 새로운 발견을 하는 외계인)

그 참새는 말이죠, 네팡이 잘 지내나~ 하고 가끔씩 안부 살피러 오는 천사에요.^ㅡ^
가끔은 흰 나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죠.

네꼬 2008-06-16 19:09   좋아요 0 | URL
음, 그래서 내가 쿠션님 챙기잖아요. (니가 언제? 뻔뻔하기는!)
참 이상한 일, 오늘 점심 때 손님이 오셔서 차를 타고 나가는데 정말 코앞에 또 참새가 지나지 뭐예요. 그분은 도넛공주님이셨을까요, 아님 천... 천사...라니, 이런 불량 고양이에게 천사가 웬 말. ㅠㅠ (그래도 그렇게 얘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L.SHIN 2008-06-22 16:03   좋아요 0 | URL
정말인데..

네꼬 2008-06-25 13:41   좋아요 0 | URL
하핫. 네, 그럼 그분이 혹시.... 쿠션님...?

2008-06-16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5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8-07-03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저도 네꼬님 편. 저는 네꼬님이 김치통을 들고 길에서 대성통곡하더라도 네꼬님 편!
그치만 울지는 말아요.. :)

네꼬 2008-07-10 14:36   좋아요 0 | URL
나.. 나... 나 왜 이거 인제 봤지? ㅠㅠ 낡은구두님, 김치통을 들고 대성통곡하는 네꼬의 모습을 상상해보았어요. 그리고 그 곁에 가만 서 있는 낡은구두 한 켤레도. 와, 서럽고 따뜻해요. (와,내 편 되게 많음.)

2008-07-15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