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선배가 갑자기 술을 사준다는데 때마침 시간이 맞아서 얼씨구나 달려나가는 저녁, 마을버스를 탔는데 어쩌다 완득이 생각이 났다. 이놈의 자식. 만난 게 언젠데, 몇 번이나 만났는데, 사람 심사 복잡하게 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계속 신경 쓰이네.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긴 한데.
그런데 ‘완득이’가 뭐야, 완득이가, 촌스럽게. 네이밍 센스 하고는. 소재는 더 한다. 열일곱살, 청춘, 선생님, 어머니, 첫사랑(얼씨구), 싸움짱, 게다가 희망이라니. 부끄럽다 정말.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요즘 살기가 어떤데, 내 나이가 몇인데 나한테 희망을 얘기하니.
완득이는 이름만큼 촌스러운 애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엄마가 집에 와서 라면을 먹고 갔는데, 그 라면 그릇이 전과 같지 않단다. 엄마한테 자기 집을 알려준 담임을 찾아가 '씨발' 왜 가르쳐줬냐면서, 고맙습니다, 라고 한다. '이상하게 재수 없는' 윤아의 마음을 확인하고는 하늘을 보고 ‘무슨 구름이 찢어져 있냐’ 며 배를 잡고 웃는다. 죽기를 바랐던 담임을 들쳐업고 병원으로 뛰어가면서 '지금은' 안 죽었으면 좋겠단다. 열심히 신문 돌린 돈으로 엄마한테 새 신발을 사준다. 촌스러워 죽겠네. 킥복싱 한답시고 만날 TKO로 뻗는 주제에, 진 만큼 이겨야 다시 스승님을 찾아뵙겠단다. ‘열등감이 아버지를 키웠을 테고, 이제 나도 키울 것이다.열등감 이녀석, 은근히 사람 노력하게 만든다’ 는 말로, 제가 어른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식이 아주 촌스럽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들은, 『완득이』의 표현이 좀 직접적이라고 뭐라고 한다. ‘자기 자리가 아버지 옆인 줄 아는’ 말더듬이 민구 삼촌을 보면서 완득이가 "가끔 저 미련한 사람 때문에 가슴이 뜨겁다.”고 할 때, 왜 난 먹먹하기만 하던데. 결말이 손쉽다고도 한다. 아니, 왜 소년 주인공들한텐 만날 고뇌만 시켜? 아이가 상처를 너무 쉽게 극복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왜? 성장하려면 꼭 아프기만 해야 해? 씨, 혼자 자라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죽도록 고생까지 시키려고 해? 소설인데 뭐 어때! 좋은 얘기만 좀 하면 안 돼?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고 아빠는 난쟁이고, 공부는 못하고 싸움은 잘 하고, 키는 큰데 기초생활수급자고, 아무하고도 말하기 싫은 정도면 됐지. 고뇌까지 해야 돼? (이렇게 줄줄 쓰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입이 나온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 말은! 내가 그만 완득이를 사랑하게 되었단 것이다! 만나지 않고 있는데도 자꾸 그 사람 생각이 난다는 게, 그 증거다. 이놈이 기어이 나를.......
*
내가 술 얻어먹으러 나가는 길에 어쩌다 완득이를 떠올린 사연은 이렇다;
촌스러운 것 투성이다. 손님이라곤 달랑 세 명인 저녁의 마을버스에서 뒷자리 어린 연인들이 “그 아르바이트 그만 둬, 여름에 너무 더울 거야.” “아니야, 그래도 재밌어.” 하고 소곤거리는 소릴 듣는 게. 차창 밖 가로등에 비친 나무에 새잎이 나는 걸 보는 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지친 퇴근 길 언니 방송을 들으면...” 하는 간지러운 사연이. ‘뱃살 다이어트 30일’ 아래 걸린 ‘음치 탈출’ 현수막이. 그리고 장례식장 불빛이. 그 옆 병원의 ‘암, 낳을 수 있다’ 현수막이. 그런 걸 대하는 나의 뻔하고 촌스러운 감상이, 그렇게 뜨끈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인생이 왜 이렇게 촌스럽냐, 진짜. 당신이 충분히 촌스러운 사람이라면 이럴 때 완득이가 떠오를 것이다. 게다가 가만히 ‘희망’이란 낯 뜨거운 단어까지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한 대 세게 맞아도 싸다. 누가 뭐라고 하건 120% 긍정의 힘만으로 주먹을 날리는 완득이에게 한 대 맞아도 싸다. 당신은 분명히 한 방에 쓰러질 것이다. 볼이 퉁퉁 부어서, 행복하게 웃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