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맑고 더움.
1. 아침에 동거녀가 구워준 떡을 먹고 출근했다. 일단 시작이 보람차다.
2. 회사에 오니 대뜸, 나의 완소 동료(이자 친구) 클레어 씨(가명)가 잘 입지 않는 옷이라며 갱장 예쁜 티셔츠와 갱장 예쁜 셔츠를 준다. 클레어씨의 안목은 평소에 믿음이 가는 데다, 그 중 한 벌은 아예 가격표도 떼지 않은 새옷. (게다가 비싼 옷이다) 나는 그만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3. 그 기념으로 점심 때 클레어 씨에게 냉면과 수육을 쐈다. 비싼 만큼 맛있었고, 러블리 클레어 씨와 간만에 둘이 밥 먹는 것도 넘 좋았다. 먹다 보니 회사의 다른 팀 식구들이 들어와 옆 테이블에 자리잡고 냉면을 시켜 먹는다. 넷이 서로 거의 말이 없다. 음, 우리 팀만 썰렁하게 먹는 건 아니구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4. 오후에 몇 가지 귀찮은 일이 있었으나 상쾌하게 해결해주고, 일도 그럭저럭 열심히 했다. (그럭저럭 열심히는 좀 이상한가? 아무튼.)
5. 퇴근 전 클레어씨와 이야기 중에 갑자기 함께 교보문고에 가기로 의기투합. 미술팀 언니에게 빵을 얻어서 광화문 가는 길에 먹고, 한산한 서점에서 각자 실컷 책을 보았다. 나는 몇 권의 잡지를 구입. (잡지를 사면 어쩐지 내가 부자같다.)
6. 그 이름도 유명한 청진식당을 드디어 방문. 자리에 앉자 마자 "#$$%%##$%@ 드릴까요?" 하시는 아주머니의 능숙한 질문에 얼떨결에 "네" 했더니 불판 가득 불고기부터 주신다. 메뉴판을 보니 메뉴는 단 두 가지. 불고기 / 오징어볶음 (각 5,000원!) 나와 클레어 씨는 이것이 분명 2인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잠시 뒤 역시 2인분으로 가늠되는 오징어볶음 등장. 눈이 ♡.♡ 요렇게 돼서 밥 한 공기를 가뿐히 비운 뒤, 공기밥을 추가해 남은 불고기+오징어볶음과 함께 볶아 먹었다. 양이 문제가 아니라, 맛, 그 맛이.....!!! (더 길게 쓰고 싶지만 앞으로 남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만.) 그래도 이 정보는 빠뜨릴 수 없는데, 공기밥은 공짜다. (오 예!)
7. 클레어 씨를 안전하게 집까지 모시고 나도 집에 왔다. 기분이 계속 좋다. 여전히 배도 부르다. 쓰레기도 버릴 겸, 맥주도 살 겸, 집에서 도로 나와 룰룰루 단지 앞 가게에 갔다. 별 생각 없이 가게 앞 냉장고를 들여다보니 세상에, "초키초키"가 있는 것이다! 집 앞에! 초키초키가!! 초키초키는 나의 여름에서 슈퍼 울트라 나이스 판타스틱 프레셔스 아이템이다. (초키초키를 위한 페이퍼 조만간 작성 예정.) 나는 이성을 잃고 가게에 있는 초키초키 4개를 몽땅 사버렸다. 맥주도 5 캔. 나의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8. 까만 비닐 봉다리 두 개 아이스크림과 맥주를 나누어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현관 앞에서, 왜 그랬을까 (이 부분 미스테리)
문득,
작게작게님 생각이 났다.
초키초키 사진을 찍어서 작게님 서재로 찾아가 방명록에 올리면, 보아주실까? 예를 들면 이렇게.
"작게님, 제가 정말 아끼는 건데 이거 드릴게요. 이제 그만 서재를 열어주세요. 네?"
그런데 방명록에는 사진을 못 올리잖아? 아, 2.0에선 올릴 수 있던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여기까지 생각했는데
우당탕탕탕!!!
소리 3초 뒤, 사람의 움직임이 없자 센서가 꺼져 깜깜한 계단. 다시 2초 뒤, 계단 4개에 걸쳐 엎어져 있는 네꼬 씨 발견됨. 캔맥주 5개와 초키초키 4개가 계단 아래로 돌돌돌 굴러내려가고, 지갑은 계단참으로 날아가 있음. 일어나려고 하는데 너무 너무 (정말로) 아프다. 정강이가 제대로 나갔다. (나중에 보니 양쪽 무릎 아래에 각각 직경 5cm의 멍이 들었다. 오른쪽 팔꿈치 아래의 초록색 멍은 덤으로.) 나, 새파랗고 짧은 원피스 사서 아직 한번도 안 입었는데, 이 멍 어떡해.
작게님도 없는데 알라딘 마을이 통째로 이사 갈 때 너무 서럽고 속상했지만 작게님이 "걱정 근심 금지"라고 하셔서 내가 눈물을 꾹 참았다. 나는 너무 억울하다. 그렇게 참았는데 원피스도 못 입게 되다니. 너무 억울해서 이제 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작게님은 돌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