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약속
문태준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볕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 방이 방 한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두듯 마음에 봄가을 없이 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하릴없이 전나무 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 나에게는 행복하였다
수십년 혹은 백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 울울창창한 고요를 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
한 걸음의 말도 내놓지 않고 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이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
그러나 전나무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뿐, 마음은 늘 빈집이어서
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 다른 것으로 메워졌다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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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저는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갑니다. 거의 이십 년 만에요.
벽지가 다 마르지도 않았는데 집을 비우려니
저 없는 동안 다들 집정리 마치시고 어디 모여 잔치라도 거하게 하실까봐,
그러느라 이 고양이 따위는 까맣게 잊으실까 봐 걱정입니다. -_-+
바닷바람을 고양이 폐에 가득 채우고 돌아오겠습니다.
제 빈집에 독사가 들어와 살던 때, 늦눈보라가 몰아쳐 서럽던 때,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했던 건, 님들이셔요.
다녀올게요.
저 없는 빈집을 부탁드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