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약속
문태준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볕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 방이 방 한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두듯 마음에 봄가을 없이 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하릴없이 전나무 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 나에게는 행복하였다
수십년 혹은 백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 울울창창한 고요를 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
한 걸음의 말도 내놓지 않고 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이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
그러나 전나무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뿐, 마음은 늘 빈집이어서
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 다른 것으로 메워졌다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_


오늘 밤, 저는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갑니다. 거의 이십 년 만에요.
벽지가 다 마르지도 않았는데 집을 비우려니
저 없는 동안 다들 집정리 마치시고 어디 모여 잔치라도 거하게 하실까봐,
그러느라 이 고양이 따위는 까맣게 잊으실까 봐 걱정입니다. -_-+

바닷바람을 고양이 폐에 가득 채우고 돌아오겠습니다.
제 빈집에 독사가 들어와 살던 때, 늦눈보라가 몰아쳐 서럽던 때,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했던 건, 님들이셔요.


다녀올게요.

저 없는 빈집을 부탁드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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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15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메리칸 숏헤어인가요? 귀엽다~

네꼬 2007-06-18 11:51   좋아요 0 | URL
저도 종은 잘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귀엽죠? ^^

치유 2007-06-15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세요..빈집은 절대로 안봐 줍니다..메~롱~~~~~~~~~!!

네꼬 2007-06-18 11:52   좋아요 0 | URL
지켜 달란 말씀은 배꽃님을 타깃으로 한 거였는데. ^^ 에잉. 사설 경비업체를 부를 걸 그랬군요!!

마노아 2007-06-15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고양이가 네꼬님처럼 느껴져요. 잘 다녀오셔요. 행복하게 기다릴게요^^

네꼬 2007-06-18 11:53   좋아요 0 | URL
"행복하게 기다릴게요" 이런 예쁜 말은 도대체 어디서 배우는 거예요? ♡

비로그인 2007-06-15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두 가고파 부산~~~~ ㅠㅠ
나도 델고 가지~

네꼬 2007-06-18 11:54   좋아요 0 | URL
오옷, 우리 교주님도 모시고 갈걸 그랬군요! 고양이들끼리 바다여행이라, 꼭 한 번 가요.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어디 가셨어요? ㅠ_ㅠ

Mephistopheles 2007-06-15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닷가에 가신다는게 걱정이 되지만..^^
잘 다녀오세요..가끔 먼지 털러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네꼬 2007-06-18 11:54   좋아요 0 | URL
제가 바닷가에 가는 게 어째서 걱정이신 게죠!!!!! ㅋㅋ 메피님 덕분인지 집이 먼지 없이 깨끗하네요. : )

춤추는인생. 2007-06-15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가 참 맑아보여요 네꼬님처럼요.^^
잘 다녀오세요. 부산 해운대는 지금은 하늘나라로 올라간 제친구와 함께 갔던곳이였어요

네꼬 2007-06-18 11:55   좋아요 0 | URL
(전 맑지 않습니다. -_-) 해운대에 그런 기억이 있으셨군요.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면서 저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춤추는 님의 그곳의 기억도 그런 것이길 바랍니다. ♡

2007-06-16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6-18 11:58   좋아요 0 | URL
그러실 줄 알았어요! 핫핫핫!! 고맙습니다.

다락방 2007-06-1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고양이도 이뿌네. 잘 다녀오세요, 네꼬님.
:)

네꼬 2007-06-18 12:0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나도 예쁘단 거죠? 응, 잘 다녀왔어요. : )

2007-06-18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6-18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07-06-1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어요? 바닷가 갈메기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다 하던가요?
네꼬님은 고양이 콧속에 비릿하고 짭쪼롬한 바닷내음을 담아 오셨나요?
저도 가고 싶어요...

네꼬 2007-06-18 12:02   좋아요 0 | URL
해운대엔 비둘기가 많아서 놀랐는데, 자갈치시장엔 갈매기가 잔뜩. 역시 다들 먹고살 생각은 하는구나 싶었어요. 네, 잘 다녀왔습니다. 눈에도 폐에도 바다를 잔뜩 넣어서요. 당분간 이걸로 버티겠다 싶을 만큼요. : )

nada 2007-06-28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네꼬님 방에서 다시 읽으니까 느무 좋다.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건 정말 특별하게 느껴져요, 그져? 저 순진한 눈빛을 보니 갑자기 헤드락이 걸고 싶어진다는..ㅎㅎ (가끔 제 애정 표시가 좀 과격할지도 몰라요. -,.-)

네꼬 2007-06-28 21:55   좋아요 0 | URL
배추님처럼 멋진 글로 쓴 것도 아니고 그저 갖다 놓은 건데요 뭘. (쑥스. 긁적긁적.) 하지만, 과격한 애정 표현은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이에요. (어쩌면 네 발을... 그건 좀 웃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