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한 동네에서 보낸 나는 병원 갈 일이 있으면 꼭 ‘**의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 한 분,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계시는 작은 병원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처음 그 병원에 갔던 열 살 무렵에 이미 연세가 지긋하셨기 때문에
내가 대학에 다닐 때쯤 병원 문을 닫으셨다.
감기에 걸리거나 배탈이 나거나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거나 하면
꼭 나를 돌봐주시던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
내가 언제 아팠고, 어떤 주사를 맞았는지는 물론이고
가루약과 물약을 잘 못 먹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아침을 잘 먹고 다니는 것을 예뻐라 하셨고,
재수하고 대학에 합격했을 땐 장하다 칭찬하셨던 선생님.
말하자면 그분은 나의 주치의였던 셈이다.
얼마나 신뢰가 가는 말인가. ‘주치의.’
어느 날 내가 감기에 걸려서 주사를 한 대 맞았으면 좋겠는데
그 병원이 문을 닫았다고 생각하자 막막해졌다.
아, 이제 누구에게 나의 몸을 맡긴단 말인가! 하는 걱정이 덜컥 든 것이다.
2.
내겐 중학교 시절부터 내 머리를 잘라준 헤어디자이너 언니가 있다.
물론 그 당시엔 그 언니도 ‘스태프’ 딱지를 겨우 떼고 이제 막 컷을 시작했을 때였다.
중학교와 모 여대 사이에 있던 그 미용실은
나날이 손님이 늘어서 2호점, 3호점을 낸 큰 미용실이 되었고
그 언니는 지금 본점의 점장이 되었다. 여대생들에게 인기도 높다.
언니와 나는 디자이너와 손님의 관계라기보다 언니와 동생에 가깝다.
(저녁에 파마를 하고 좀 기다렸다가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한다.)
이 언니의 특징은 친분이 있는 손님의 머리는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것.
특히 나의 경우, 내가 머리숱이 매우 많다는 것, 모발이 매우 튼튼하다는 것,
머리가 놀랍도록 빨리 자란다는 것, 그리고 놀랍도록 관리를 못한다는 것을
나보다 그 언니가 더 잘 알고 있다.
주로 무슨 색으로 염색을 했으니까 이번엔 다른 색으로 한다든지,
파마머리가 지겨우니까 이번엔 다른 식으로 한다든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엔 머리를 길러본다든지 하는 결정들은 모두
그 언니가 내려준다. (무슨 색으로 염색하는지 모르고 맡긴 경우는 허다하다.)
이 전문가의 선택은 거의 언제나 대만족이다.
나는 헤어디자이너들이 “어떻게... 몇 센티 정도 잘라드릴까요?”
하고 묻는 말이 무섭다. 우리 대부분은 비전문가 아닌가.
이건 마치 의사가 “이 주사를 맞으실래요, 저 주사를 맞으실래요?”
“위를 수술해드릴까요, 장을 수술해드릴까요?”
이렇게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단 생각이다.
일산으로 이사를 오고도 굳이 내 헤어스타일의 주치의를 찾아
서울까지 가서 머리를 자르는 이유는 바로 그것.
주말에 머리를 하러 갔다.
“언니, 나 머리가....”
“너 좀 잘라야겠다.”
“어떻게... 좀 많이 자를까?”
“확, 커트해버리자!”
그래서 나는 오래간만에 짧은 머리가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살짝 귀여운 것 같다.
숱 많은 소년 고양이가 되었다고나 할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