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뉴키즈온더블럭’의 광풍에 휩싸였던 것 말고 나는 특정 연예인에게 푹 빠져본 적이 거의 없다. 물론! 물론 내가 반드시 ‘님’자를 붙여 명명하는 몇 배우들이 있긴 하다. (최민식님, 정우성님, 조지 클루니님, CSI의 호라시오 반장님-응? 이상한가?- 등) 연예인에 대한 환상이 없어서가 아니다. 가수며 배우며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너무 많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핀잔을 들을 정도다. 그런데 다른 일에 그렇듯 오래 가지도 않고, 또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 금세 까먹는다. (어제는 동거녀와 대화 중에 ‘김남진’ 얘기가 나왔는데, 응? 그게 누구지? 했다. 나는 한때 그의 사진을 간직할 만큼 이뻐라했다.) 그리고 정말로 일관성이 없다.
최민식님 - 조지 클루니님 계보를 생각하면 약간 느끼한 남자가 내 스타일인가 싶다가도,
('굿나잇 굿럭'의 조지 클루니. 연기도 연기지만 그의 섹시함이 좋다.)
김윤석 - 황정민 계보를 생각하면 그래, 역시 배우는 연기를 잘 해야지, 생각이 든다.
('타짜'에서 김윤석이 장례식장에 걸어 들어오는 장면에서는 말 그대로 몸을 떨었다.)
그런가 하면 김재원(맹세코 지금은 아니고 데뷔 때만!) -츠마부키 사토시를 생각하면 난 사실 순수파인가! 싶다.
(아이, 예뻐.)
아니다. 울퉁불퉁한 류승범도 좋은데?
그러다가 요즘, 내가 어떤 외모에 혹하는지 좀 진지하게 생각해볼 계기가 생겼다. 내가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다가 윤호가 나오는 장면에서 온몸이 분홍색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윤호가 웃으면 따라 웃고, 윤호가 “이 집은 편애의 도가니탕”이라고 몸부림치면 나도 신경질이 나고, 윤호의 마음을 절대로 모르는 서선생에게 “저 바보! 못돼 처먹었어!!” 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어쩐지 민호 친구 범이는 얄밉고 윤호 친구 찬성이는 예쁘다. 실연의 상처로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을 때 좀전까지 울다가도 윤호가 나오면 눈에서 하트가 나오는 나를 보고 동거녀는 혀를 차곤 하였다. 나는 윤호가, 아니 정일우가 어서 연기력을 키웠으면 좋겠다. 지금도 봐줄 만하지만 더 잘해야 계속 나올 거 아닌가. 일우 화이팅!
♡.♡
흥미로운 사실은, 내가 주지훈을 볼 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 어제 ‘마왕’ 마지막회를 보았다. 이 드라마는 모티프와 플롯이 흥미롭긴 한데, 듣고 있기 부끄러운 대사와 과도한 음악 때문에 몰입하기 힘들었지만, 주지훈(일명 주‘간지’) 때문에 간간이 챙겨볼 수밖에 없었다. 어제는 주지훈 오열하는 장면에서 그만 환호성을 올리고 말았다. “오, 언니언니, 됐어, 안심이야! 주지훈, 다음에 또 나올 것 같아!” 라며 쿠션을 끌어안고 뒹구는 날 보면서 동거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저런 계열을 사랑하는구나. 정일우, 주지훈.” “응?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연예인이 언제 또 바뀔지 나도 모른다. (정말 모른다.)
하지만 아무튼,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늘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잠을 청할 때
나는 계속 주지훈을 생각하고 있었다.
헤어진 남자를 생각하며 자는 것보다 천 배는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