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주 고전적인 질문을 받았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비슷하게 고전적인 질문으로는 좋아하는 색깔이 뭐예요,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뭐였어요, 등이 있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좋아하는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나는 음식을 잘 먹는 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많이 먹는 편이다. 간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 문제는 식사. 평균 1.5인분을 먹으니까 말하자면 거의 항상 과식을 하는 것이다. 회사를 옮겼을 때 한 달도 되지 않아 이 사실이 회사에 소문이 다 났다. “새로 들어온 네꼬 씨”라고 하면 갸웃하는 사람들도 “그 많이 먹는 네꼬 씨 말이야”라고 하면 아, 그 친구, 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나는 음식을 사랑한다. 먹는 것이 너무 좋다. 입사 때 자기소개서에 “음식은 따뜻한 것을 좋아하지만 대체로 가리지 않고 먹으며 특히 술과 고기를 좋아한다”라고 썼을 정도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마치 어떤 동물의 습성에 대해 기술한 것 같잖아!)
그런데 이런 습관성 과식증을 갖고 있는 나에게도 나름 식성이라는 게 있다. 입맛은 별로 까다롭지 않은 편이지만,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메뉴나 맛이 없는 음식을 과식하는 일은 없다. 알레르기가 있는 고등어를 제외하고는 가리는 음식이 없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은.... 바로, 밥이다.
나는 밥을 그렇게 많이 먹는다. 맛있는 반찬만 있다면 두 그릇 정도는 뚝딱 해치울 수 있다. 그래서 여럿이 간 식당에서 누가 “밥 하나 시켜서 나눠 먹자”고 하면 정중히 사양할 때가 많다. “난 온전히 한 그릇을 더 먹을 건데” 하고. 두 그릇 정도는 먹어야 좀 먹었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밥에 대한 나의 사랑은 각별한 것이어서, 한번 밥을 하면 꼭 넉넉하게 해두고, 남은 밥은 바로 비닐 팩에 넣어 냉동보관한다. 피곤해서 지친 날 먹을 것이 없어 라면을 먹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이면서, 내가 지은 밥이 노랗게 굳는 슬픈 일을 막는 내 나름의 애정 표현이다. 저녁에 지은 밥을 아침까지 다 먹지 못했을 때는 지각을 감수하고라도 꼭 냉동실에 넣는다. 집 밖에서 식사를 할 때 나는 가능하면 ‘밥’이 있는 메뉴를 선택한다. 남들이 출출해서 빵 등으로 간식을 먹을 때 나는 밥을 조금 먹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는 배가 고파도 먹지 않고 참는다. 왜냐하면, 식사 때 밥을 잘 먹기 위해서다.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하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거였다. “공기밥을 주는 음식이요.” 상대방은 어리둥절해했지만 나는 내 대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밥을 많이 먹다 보니, 나의 밥그릇에 밥이 남으면 다들 걱정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네꼬가 밥을 남겨!” (내가 무슨 ‘거침없이 하이킥’ 천하장사 나씨 집안의 나문희여사도 아니고.) 한동안 식사를 거르고 밥을 깨작거리느라고 이번에도 여럿 걱정을 시키고 말았다.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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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저녁에 모처럼 번개로 술을 잔뜩 마셨다. 그리고 오늘 점심시간에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모여 메기+빠가 매운탕을 먹었다. 네 명이 소(小)자를 시킨 것이 내심 불만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온 것을 보니 양이 적을까봐 조바심이 났다. 내 심기를 눈치 챈 선배 하나가 “난 한번만 떠먹으면 돼.” 라고 말해서 사람들이 다 웃었다. 그리고 내가 누구에게도 동조를 구하지 않고 “여기 공기밥 하나만 더 주세요.” 라고 외쳤을 때,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난 네꼬 씨가 아까 밥 뚜껑을 열고 ‘와, 밥 맛있겠다’고 말했을 때 이미 짐작했어. 아니 어떻게 밥을 보자마자 맛있겠다 소리가 나와?” 사람들이 또 크게 웃었다. 웃거나 말거나, 아무튼 나는 오늘 오래간만에 밥 두 그릇을 싹싹 비웠다.
아 자알 먹었다, 싶을 뿐 전혀, 과식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