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먹는 여우와 이야기 도둑 책 먹는 여우
프란치스카 비어만 글.그림, 송순섭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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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는 방법은 무엇일까?

글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요즘은 AI가 글을 대신 써 준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마음과 감정을 담백하게 자신만의 언어로 쓰고 싶어 한다. 사람에게는 표현 욕구가 있다. 누가 대신해 표현해 주는 것보다 직접 표현하고 싶어 한다.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말보다는 좀 더 품격 있어 보이는 글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다들 경험을 했겠지만 막상 글을 쓰자고 하니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 때가 있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순간 정지 상태가 된다. 겨우 생각해 낸 것을 조금 쓰다 보면 앞뒤 문맥이 맞지 않음을 발견한다. 내가 쓴 낱말이 적당한 어휘인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썼던 낱말을 또 쓰게 된다. 맞춤법이 맞나 띄어쓰기가 제대로 됐나 초조해진다. 결국 예상한 것보다 반도 못 채우고 글 쓰는 것을 접게 된다. 글 좀 써 보겠다고 결심한 각오가 작심삼일로 무장 해제된다. 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합리화한다. 

 

그만큼 글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글 쓰는 진입 장벽이 보기보다 높다. 사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자동 검사 기능을 통해 보완이 된다. 문제는 무엇을 써야 될지가 관건이다. 생각한 대로 쓰라고 하는데 말처럼 안 된다. 그렇다면 해결점은 딱 한 가지다. 어떻게 써야 될 지보다 먼저 무엇을 써야 될지부터 해결하면 된다. 최대한 책을 많이 먹는다!

 

책 먹는 여우처럼 닥치는 대로 잡히는 대로 보는 대로 족족 먹어 치운다. 편식하지 않는다. 몸에 좋은 것만 가려서 먹지 않는다. 좋은 것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누가 좋더라라고 하더라도 내게는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다. 나에게 맞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당분간 두루두루 먹어 보는 것이 좋다. 먹다 보면 느낌이 온다. 먹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영양가가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먹기에는 거북스러운데 영양 만점인 것을 피부로 느낀다. 몸이 반응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당분간 책 먹는 여우처럼 게걸스럽게 잡식형으로 살아간다

 

다양하게 먹다보면 나도 모르게 비교할 수 있는 눈이 뜨인다. 다양한 먹거리를 통해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어갈 수 있다. 재료 창고가 넉넉해질수록 풍성한 요리를 할 수 있다. 식재료가 다양하면 기발한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나만의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명품 요리를 개발하게 된다. 

 

처음부터 글을 자연스럽게 쉽게 잘 쓰는 사람은 없다수천 권의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며 쓰는 반복된 연습을 통해 글이 만들어진다쉽지만 울림이 있는 글이 써진다. 지금부터 우리 모두 책 먹는 여우가 되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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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반양장)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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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의 문제는 미안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처럼 번진다는 데에 있다. 자괴감, 자책감, 우울감,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 가게 했다" _247쪽

권위와 권위적인 것이 엄연히 다르듯이 죄와 죄책감은 구분되어야 한다. 양심이나 도리에 어긋난 행위, 잘못이나 허물로 인하여 벌을 받을 만한 일을 죄라고 한다면 죄책감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는 마음이다.

『유원』 소설 속 주인공 유원은 저지른 잘못이 없는 아이였다. 단지 화재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는 과정에서 발생한 결과로 인해 오랫동안 미안함과 자책감,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 대한 분노를 느낄 뿐이다. 문제는 그 죄책감이 합병증을 동반하여 민감한 시기에 더욱더 목을 죄는 것처럼 옭아맨다는 사실이다.

죄책감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대감을 든든했던 가족의 상실이 가장 큰 이유가 될 수 있다. 마치 자신 때문에 모든 결과가 일어난 것처럼 스스로를 자책하고 극심한 우울감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소설 속 유원이네 가족도 마찬가지다. 혼자 살아남은 유원이라도 잘 키워야겠다는 심정으로 부모는 모든 시름을 이겨낼 대상으로 유원으로 삼고 유원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각오로 살아간다.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사고에 대한 원인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이들이 있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죄책감의 사실 유무를 떠나 감정을 그대로 받아주는 든든한 지지자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주변의 많은 청소년들이 가족 안에서 겪는 여러 가지 상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교도 이런 문제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종합적으로 지원하지만 결국은 문제의 원인과 자신은 별개라는 것을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젊음에도 불구하고 상실의 아픔이 죄책감으로 자리 잡고 삶 전체를 움직이고 있는 청소년의 심리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해결점까지 제시하고 있는 점이 혀를 두르게 할 만큼 작품성이 돋보인다. 작품의 깊이는 결코 나이와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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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어른을 위한 동화 2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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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오래된 책을 폈다.

문학동네에서 1996년에 발간한 책인데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2003년에 인쇄된 제2판이다. 20년도 더 된 책이다. 세월 따라 종이도 빛바래질 터인데 아직도 멀쩡하다. 인쇄된 글자는 요즘 책 보다 크기가 작은 편이다. 마치 신간을 펴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뚝딱 읽어버렸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쓰여 있다. 맞는 말이다. 어른일수록 동화와 친숙해져야 한다.

안도현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상으로 글을 맛깔스럽게 잘 쓰셨던 것 같다. 이번 책 연어도 마찬가지다. 강물을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를 우리의 인생에 빗대어 의미를 잘 전달한 것 같다.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많이들 묻고 생각한다. 연어에게 인생은 알을 낳는 일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인데 작가는 더 깊숙이 들어간다. 알을 낳는 행위보다 알을 낳기 위해 바다를 지나 강물로 회귀하는 과정, 알을 낳기 위해 목숨을 건 움직임이 인생의 참 의미라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연어를 품고 있는 강물 또한 연어의 인생을 더 값지게 하는 배경과도 같은 존재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누구든지 주인공으로 살고 싶지만 주인공이 있기까지는 누군가는 그의 뒷바라지, 배경이 되어주어야 한다. 연어가 다시 연어로 태어나기까지 그들의 알을 품어주고 자라게 해 주는 강물이 진정한 의미에서 참 인생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연어나 강물이나 공통점은 모두 잊히는 존재라는 점이다. 흘러가야 새로운 물이 흐르고 죽어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듯이 잊히지 않는 존재는 새로움을 잉태할 수 없음을 자연을 통해 깨닫게 된다. 울긋불긋 예쁜 단풍도 잊혀야 새로운 잎이 태어나듯이 말이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도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지만 그래야지만 새로운 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처럼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다고 아쉬워하기보다 새로움을 위한 물러섬에 익숙해져야 할 때를 잊지 말아야겠다.

오래된 책은 숙성된 발효식품처럼 읽기만 해도 인생의 진한 향기가 전해온다. 갓 담은 김치도 신선한 맛이 일품이지만 오래된 김치일수록 진한 국물을 우려낼 수 있다. 오래된 책이 그렇다. 진한 인생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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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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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환히 보이는 현재를 선호한다. 손에 거머쥘 수 없는 혼돈보다는 예측 가능한 질서를 만들고 싶어 한다. 어정쩡한 표현보다는 명확한 어휘로 정리된 완벽한 결과물을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때로는 실체가 없어 보이는 사랑과 평화, 그리움과 고마움이라는 느낌보다는 좋다, 나쁘다, 기쁘다, 슬프다처럼 구체적이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더 쓸모 있다고 여긴다.

더디고 느린 것을 못 봐준다. 실력 없어 보이고 능력 부족한 사람을 가까이 두려고 하지 않는다. 연세 있으신 분들을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사라져 없어져야 할 한낱 물건 취급하는 불쌍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미래라고 해서 모든 것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소중하고 오랫동안 붙들고 있어야 한 가치들이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시간 맞춰 돌아가는 기계처럼 딱딱 들어맞아야 성에 차고 배고픔과 연민은 쓸데없는 감정이며 고통이나 아픔은 기억조차 하지 말아야 할 쓰레기 취급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과 편안함일까?

미래의 모습을 다룬 『기억 전달자』를 통해 불완전해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 결국 살아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며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세상은 결코 완벽하게 착착 돌아갈 수 없는 세계임을 다시 생각한다. 새해가 되면 모두가 복 많이 받으라고 이야기한다. 하는 일 모두 잘 되라고 덕담을 주고받는다. 고통과 아픔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쟁과 싸움이 없는 평화의 세계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 가운데에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사랑을 실천해 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통을 느낄 수 없다면 병든 사람이다. 육체에 질병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마냥 좋은 감정만 느끼고 싶다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일 거다. 나쁜 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면 온전한 기억일 수 없다. 좋든 싫든 여러 기억들을 생각해 낸다는 것이 곧 살아 있다는 증거다.

기억을 전달하는 것도 기억을 보유하는 것도 고통을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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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운
문경민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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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돈에 대한 욕망, 돈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고 싶은 야망, 돈과 함께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허망한 생각까지 품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파멸에 이르고 나서야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 돈임을 깨닫지만 그것조차도 잠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옛 영화를 다시 누려보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속성임을.

사용하지도 않을 부동산을 소유하고자 하는 열풍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왔고 급기야 초등학생들의 꿈이 조물주가 아닌 건물주라는 물질만능주의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다. 어른들이야 다를까. 기회가 찾아오지 않아서 그렇지 결국 여유가 있고 돈이 있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뷰 좋고 목 좋은 곳에 여러 채의 자산 취득을 위한 건물들을 다다익선으로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인 것을.

교직에 들어선지도 3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교직에 임하는 선생님들의 직업관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돈이 아니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적당한 보상의 대가로 돈과 시간을 원한다. 워라밸이다. 탓할 수는 없다. 시대상이니까. 하지만 교사로서의 아이들을 향한 열정 있는 태도로 대했던 수많은 선생님들을 보아왔기에 지금의 현실이 아쉽게 다가온다.

『화이트 타운』은 현대판 바벨탑이다. 착착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 혼돈과 무질서로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선과 악을 무 자르듯이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나 또한 그렇다. 다만 불쑥 솟아오르는 욕망의 실체를 알고 절제하기 위해 노력할 뿐 나 또한 화이트 타운을 통해 욕망을 분출하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겠다 싶다. 누군가 돗자리를 펴주며 채근 거리며 유혹의 손길을 애써 마다하지 않고 은근슬쩍 가담하려고 하지 않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내 안에 있는 욕망 덩어리를 살펴보자. 『화이트 타운』을 통해. 참고로 『화이트 타운』은 2021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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