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로 다시 시작 - 잠깐의 멈춤,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Begin Again Series 1
정소령 지음 / 그래더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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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위치한 화성과 행궁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화성성역의궤'라는 기록물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정조 임금은 공사의 모든 과정을 의궤에 담아내도록 했다. 때로는 그림으로 표현해서라도 누구라도 알아보기 쉽도록 꼼꼼하게 과정을 놓치지 않도록 했다. 결과 중심으로 살아가는 오늘날의 시대에 비추어 보면 득 보다 실이 클 것 같은데 세월이 흐르면서 기록의 가치가 얼마나 큰 지 새삼 깨닫게 된다.

화성 행궁은 임금이 임시로 거처하는 궁궐이다. 한양에 머무르던 임금이 지방으로 행차할 때 작은 궁궐 형식의 거처가 필요했고 수원은 정조 임금의 지시로 만들어진 화성 행궁이 있던 곳이다. 화성 행궁 안에는 여러 건물이 있는데 그중에 임금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와 같은 소모품을 보관하던 곳도 있다. 정조 임금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왕이다. 사관에 의해 쓰인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과 버금가는 일성록을 쓰게 한 것도 기록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5학년과 6학년 학생들과 함께 테마학습 여행을 왔다. 강원도 삼척에서 경기도 수원으로 올 때까지 버스 안에서 정소령 작가의 『쓰기로 다시 시작』을 읽었다. 쓰기가 왜 중요한 지 삶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작가는 자신의 고유한 삶을 책으로 썼다. 쓰지 않으면 삶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쓰는 순간 삶이 특별해질 수 있다. 개별성은 특수성을 동반한다. 세상의 모든 삶이 똑같을 수 없다. 그러나 삶을 표현하지 않으면 개별성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쓰기로 다시 시작한 이유도 기억이 휘발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쓰기로 다시 시작하면 기억을 붙잡아 놓을 수 있다. 쓰기가 곧 기억이다.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는 수고가 따른다. 쓰기의 반복이 뒤따라야 한다. 쓰기를 포기하기 쉬울 때에는 자신감을 잃을 때다. 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진부한 이야기겠지만 결심이 필요하다.

쓰기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포기할 것을 결심해야 한다. 나는 올해부터 매일 아침마다 지난번에 읽었던 책을 중심으로 글을 쓴다. 쓰기 위해 노트북을 펼친다. 포기할 것이 많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필요 없는 행동을 최대한 절제한다. 베란다에 나가 커튼을 펼치고 밤사이에 바구니에 쌓인 쓰레기를 들고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 분류 코너에 가서 바구니를 비운다. 로봇 청소기 물통에 물을 채우고 걸레를 교체한 뒤 지난 것을 깨끗이 빨아 행거에 걸어 둔다. 아내가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할 동안 나는 쓰는 행동에 돌입한다. 물론 쓰기 전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오늘 아침은 어떻게 글을 쓸까 고민한다.

쓰기로 다시 시작하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쓰기가 곧 생각하기로 이어졌다. 쓰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몸이 편할 수 있지만 편함을 포기하고 대신 쓰기를 통해 생각의 단단함을 키워간다. 생각이 단단하지 않으면 주체적인 삶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다. 휩쓸리기 쉽다. 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만지는 것이 책을 읽는 것보다 편하긴 하지만 나는 힘듦을 선택했다. 생각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쓰기로 다시 시작』를 읽었다. 오늘 아침에 숙소에서 밝아오는 아침을 보며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어제의 편함을 포기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매일매일 쓰기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쓰기로 결심하는 일은 하루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출발점이다. 결승점에 다다를 때까지 쓰기 위해 포기할 것은 과감히 포기할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쓰는 삶이 곧 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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