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도시 SG컬렉션 1
정명섭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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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명섭 작가의 신작이다. 이전에 정명섭 작가는  <남산골 두기자>, <미스 손탁>에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추리형식의 이야기를 전개한 바가 있다. <남산골 두기자>는 저작거리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모아 사건의 진위를 밝혀내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고, <미스 손탁>에서는 고종 황제의 헤이그 밀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스토리 자체는 매우 탄탄하다. 최근 주남 마을 양민 학살사건과 광목간 양민 학살 사건을 다룬 <저수지의 아이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과정을 기록했다. 그리고 올해가 다가기 전에 또 다른 추리 소설인 <제3도시>를 출간했다. '제3도시' 란, 개성공단을 말한다. 개성공단을 배경으로 남측과 북측 공작원들이 벌이는 진실게임을 읽어보시는 재미를 누려보시길.

 

북측 노동자들은 개성 공단에서 일하는 것만으로 중상류층에 속한다고 한다. 특히 개성 신도시에서는 왠만한 특권을 북한의 북측 사람들이 독차지 하고 있어 개성 신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기회는 가족 중에 한 사람을 개성 공단에 취업 시키는 일이라고 한다. 물론 공짜가 없는 법. 개성 공단에 취업 시키는 조건으로 뇌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생필품이 귀한 곳인 북측에서는 개성 공단에서 몰래 빼내 오는 물건들이 날개 솟는 귀한 값으로 팔린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개성 공단에 입주한 남측 기업에서 생산해 낸 각종 물건들이 재고량과 생산량이 잘 맞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단지 눈감아 주는 격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제3도시>의 모티브가 개성 공단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일련의 과정에 북측과 남측의 공작원들이 개입되고 있으며 서로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서로의 정보를 주고 받는 창구로 개성 공단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정명섭 작가는 놓치지 않고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다. 

 

남측 기업의 법인장을 맡고 있는 유인태라는 주인공이 의문의 살해를 당한다.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본격적인 주인공들의 쫓고 쫓기는 탐정 활동들이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다. 누가 범인인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함정을 여러 군데 설치해 놓은 작가의 기술이 돋보인다. 범인은 늘 마지막에 밝혀지는 법. 독자들도 아마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며 밝혀지는 과정이 논리적으로 아주 자세하게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해 알려진다. 독자들이 탐정 소설을 즐겨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남과 북이 분단되어 보이지 않는 정보전이 전개되고 있음도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위장으로 탈북하여 비밀리 남측에서 활동하고 있는 북측 공작원의 이야기, 개성 공단에 기업인으로 들어가 감쪽같이 북측과 남측의 정보를 이어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남측 국가정보원의 이야기 등 실제와 같을 정도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정명섭 작가의 신작 탐정 소설 <제3도시>를 강력히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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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하게 보는 민주주의 역사 - 시민 혁명, 아테네 민주주의는 어떻게 제국주의의 길을 갔는가 : 민주 역사의 두 얼굴 민주주의 역사 시리즈 1
김대갑 지음 / 노느매기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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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왔던 민주주의 상식을 뒤덮는 저자의 치밀한 민주주의 역사 기록 조사물이다. 우리가 늘 익숙하게 들어왔던 민주주의 상식이란 무엇인가?

 

1. 민주주의 역사는 서구-남성-백인을 중심으로 한 국가에서 시작되었다.

2. 링컨 미국 대통령은 노예를 해방 시킨 위대한 사람이었다.

3. 영국의 시민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 대혁명은 민주주의 단초를 마련했다.

4. 민주주의는 부르주아가 만들었다. 

 

위 네 가지는 기존에 알고 왔던 민주주의 역사 상식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하나하나 진실과 거짓을 밝혀내고 있다. 

 

1. 민주주의 역사는 서구-남성-백인이 주를 이룬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만이 민주주의를 위해 애쓴 것이 아니다. 비서구 지역인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이슬람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북아메리카의 원래 주인인 인디언 지역에서 민주주의 역사가 비교적 빨리 시작되었으며 남성이 아닌 여성들의 적극적 저항으로 민주주의를 앞당겼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특히 여성들이 참정권을 쟁취하기까지 기나긴 세월이 소요되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대한민국은 1948년 국회의원총선거에서 여성들도 선거권을 가질 수 있었지만 스위스는 1970년대에 비로소 여성들이 참정권을 가질 수 있었다. 1918년에 참정권을 얻은 영국 여성들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심지어 목숨을 내놓는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서프러제트 운동이 바로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이다. 여성운동은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땅에서도 줄기차게 이어졌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사 교과서에 소개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화림(조선의용대 대원, 백범의 비서), 박차정(조선의용대 대원), 남자현(여자 안중근, 조선 총독 암살 가담), 안경신(평안남도 도청 폭탄 투척), 김마리아(대한민국애국부인회 비밀결사) 등독립운동을 위해 애쓴 수 많은 여성들이 있었기에 해방 후 여성들도 참정권을 얻게 될 수 있었다. 

 

민주주의는 서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더욱 활성화 되었음을 역사에서 고찰할 수 있다. 성경에서도 등장하는 그발(비블로스)은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도시 국가 중 하나였다. 그곳에서는 장로들과 지혜 있는 사람들의 회의체가 발달되어 있었고 아테네보다도 500년이나 앞섰다고 전해온다. 그리스인들에게 회의체 민주주의 문화를 소개한 것은 페니키아인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성경에세는 고레스 왕으로 잘 알려져 있다)은 '키루스 원통 비문'으로 유명하다. 키루스 원통 비문에는 인종 차별 금지부터 평등주의, 피정복민의 전통과 종교에 대한 존중, 노동권 보호 등 광범위한 민주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성경에서 키루스(고레스)왕은 노예 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고 성전 건축을 허락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과격한 단체로 인해 잘못 알려지고 있는 이슬람도 사실 민주주의 원칙이 철저히 지키기로 유명한 종교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아프카니스탄에서도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을 정도였지만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뒤에는 온몸을 감싸는 부르카를 입어야만 했다.

 

2. 링컨 미국 대통령은 노예를 해방 시키기 위해 남북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연방 국가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위대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부 지역이 독립해 나가는 것을 막아야 했다.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의 '국민'에는 아쉽게도 '흑인'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결과는 노예 해방을 반대한 남부가 패배했기에 링컨에게는 위대한 찬사가 뒤덮혀 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잘 알듯이 미국은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아 만든 국가다. 민주주의 국가의 화신으로 미국을 말하지만 사실 인디언 사회로부터 배운 것이라는 점을 책에서 밝혀낸다. 인디언 사회는 사회 경제적으로 평등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평등도 실천하고 있었다고 한다. 재산 소유가 아니라 평판에 의해 권력이 인정되는 사회가 인디언 사회였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디언 민주주의 사례 중 하나가 '이로쿼이 연방' 이다. 다섯 개 부족이 연합을 이뤄 평화를 유지한 사례다. 지금도 미국에는 인디언 사회에서 유래된 말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시애틀(추장), 체로키(자동차), 다코타(자동차), 폰티악(자동차), 메타세쿼이아(체로키족 사람), 모하비(자동차), 치누크, 아파치, 코만치(헬리콥터), 푸에블로호(선박), 레드 클라우드(미 육군 2사단, 추장 이름), 클리블랜드(야구팀), OK(촉토족이 동의할 때 사용한 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디어의 향취가 남아 있다. 

 

3. 영국의 시민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 대혁명은 반쪽짜리 혁명에 불과했다. 영국의 시민혁명 당시 시민군 크롬웰은 아일랜드로의 파병을 거부했던 수평파의 집회를 반란이라 규정하고 무력 진압을 감행했을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기도 했다.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민주주의를 학살한 경우다. 미국의 독립 혁명은 미국의 백인들이 인디언족을 몰살시키고 흑인 노예들에게 아무런 권리를 주지 않은 자신들의 성취에 도취되어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한 침략 행위임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힘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힘없는 이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주고 그들과 연대하여 제 몫을 찾아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전제 군주정을 무너뜨렸지만 진정한 박애는 없었음을 단두대에 끌려간 올랭프 드 구즈의 죽음과 마리안느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다. 

 

4.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뿐만 아니라 시민, 민중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3.1운동만 보더라도 확연하게 드러낸다. 민족대표 33인의 독립 선언서 낭독이 있었지만 그 뒤에 불길같이 타올랐던 노동자들과 농민, 여성, 학생들에 의해 전국 곳곳에서 민족 독립 운동의 도화선을 끌어냈다. 3.1운동의 영향으로 결국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진 것으로 보아도 민주주의의 시작은 양반이나 지식인층에서 주도한 것이 아님을 확연히 볼 수 있다. 

 

참고로 소말리아 해적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왜 그들이 해적질을 할 수 밖에 없는지 구조를 살펴보면 단순한 국제 범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랜 내전으로 홍역을 치루고 있는 소말리아는 주인 없는 땅처럼 취급되어 주변 국가들이 불법으로 폐기물을 소말리아 해역에 쏟아 붓고 있다. 심지어 핵폐기물까지 투기했다는 유엔 보고서도 있을 정도다. 그뿐인가. 전 세계의 어선들이 몰려들어 물고기를 남획까지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어선들도 예외일 수 없다. 2014년에는 유럽연합이 한국을 예비 불법 어획국으로 지정했다. 소말리아 해적이 목숨을 걸고 해적질을 하는 이유도 서구 여러 나라의 이기적인 행위들이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삐딱하게 보는 민주주의 역사>에서는 민주주의 탄생 과정이 결코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강조한다.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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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 저 먼저 은퇴하겠습니다 - 직장은 없어도 직업은 많다
전규석 지음 / 담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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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띠표지처럼 저자는 마흔 전에 대기업을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R-FIRE족이란, 돈으로부터 독립하고 좀 더 자유로운 인생을 찾아 남들보다 빠른 퇴사를 한 사람들을 말한다. 일명 파이어족이다.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앞 대문자를 따와 만든 말이다. 파이어족은 책에 의하면 조기 은퇴를 위해 월급의 70~80%를 저축한다고 한다. 자신을 먼저 살피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삶을 위해 기꺼이 직장을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직장을 포기하고 다양한 직업에 도전하고 있는 저자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 것은 '독서'였다고 고백한다. 퇴사를 결정하기 위해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중 아내가 건넨 책 <부의 추월 차선>이라는 책을 읽고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 그 이후 유튜브 1인 크리에이터, 골프 티칭프로, 프리랜서 강사, 소득과 기부가 공존하는 회사의 대표, 작가 등 여러 직업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독서의 힘' 이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처음부터 책을 즐겨 읽고 글을 썼던 사람은 아니었다. 책에 보면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유독 읽고 쓰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독서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그가 퇴직 후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독서와 글쓰기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로망이라고 한다면 직장에서 부여해 주는 영혼없는 일을 하며 인생을 허비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삶일 것이다. 팬데믹 상황 이후의 삶은 경제적으로 더더욱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가족 부양 뿐만 아니라 노후까지 생각해야 하는 처지에 직장을 박차고 나오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보다는 다른 가치를 우선으로 여긴다면 가족의 동의를 얻어 과감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된다. 퇴사 이후에 당연히 소비 생활은 재수정되어야하겠지만 말이다.


저자의 과감한 결단과 용기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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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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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부의 양극화, 경제적 불평등, 불공정, 인간의 존엄성 하락, 노동의 가치 하락의 이유를 '능력주의의 환상', '학력지상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꼬집고 있다.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이야기하는 미국의 한 복판에서 말이다. 원래 전통적 능력주의는 공공선과 시민성을 포함한 개념이었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그 기원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의 능력주의는 '변질된 능력주의'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미국이라는 국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3개주의 연합체로 시작되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떠난 청교도들,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 유럽 대륙을 떠난 이주민들(카톨릭의 아일랜드 주민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독일 이주민들이 두 번째로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도망자의 신분으로 찾아온 정치인 등 그야말로 '자유'라는 핵심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겼고, 연방국가의 헌법에 그 가치를 담아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연방헌법이든 각 주의 헌법에서 마스크가 반드시 써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유' 라는 가치를 어떤 이유에서든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가 단위 뿐만 아니라 광역단체, 지방자치단체도 시민의 안전을 위해 행정명령을 언제든지 발령낸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본다.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소위 알려진 미국의 전통적 능력주의는 자유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상의 거센 물결 속에서 완전히 변질되고 말았다. 과거 전통적 능력주의에서는 능력 자체가 개인이 노력해서 얻게 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운, 또는 신의 은총의 결과로 보았다. 능력에 따라 부를 누리거나 명예를 얻는 것을 당연한 자격으로 여기지 않았다. 독일에서 촉발된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의 정신 또한 그렇다. '엄격한 은총론'을 기반으로 한다. 구원은 인간의 선행이나 행위,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다시 말하자면 '반능력주의적'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격 없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몸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와 죄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돌아가셨기에 지금 살아가는 삶 자체는 은혜 그 자체다. 인간의 삶 속에 능력과 노력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종교적 정신으로 세워진 국가가 미국이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은 비대졸다. 미국 최고의 대통령 중 하나로 꼽히는 해리 트루먼도 비대졸자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을 미천한 학력의 소유자들에게 맡겼다. 법무장관은 법학 학위가 없는 사람이었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사장은 작은 마을의 은행원이었으며, 농무장관은 지방 주립대 출신에 불과했다. 당시 대서양 반대쪽 나라인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노동당 당수였던 애틀리 내각은 장관 가운데 일곱명이 탄광 갱부 출신이었다. 특히 외무장관은 11세 때 학교를 중퇴한 사람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결코 능력이라는 것 자체가 학력과 상관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학력과 국정 운영 능력은 관련성이 없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와서 미국 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 그리고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정책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문대 출신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만큼 미국도 입시부정, 입시경쟁, 명문대학 입학을 위한 경쟁이 심각할 정도라고 마이클 샌델 교수가 이야기한다. 왜 미국인 부모는 자녀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문대학에 입학시키려고 할까? 명문대학 입학 그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과외에 들이는 돈이 예일대 4년 과정보다 더 많이 들며, 명문대 입학을 위해서라면 지체장애자 특별 선발전형에도 기웃거리며 기부금을 들여서라도 어떻게든 입학시키려고 하는 것은 능력주의 환상, 학력주의 환상이 미국을 지배하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본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소득의 불평등, 사회적 명망의 불평등(노동의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이 일어나는 원인을 3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고등교육(명문대 입시), 시장중심적 세계화 프로젝트(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앞질렀다), 현대정치의 기술관료화다. 공공선이라는 가치는 이미 버려진지 오래다. 공공선이라는 무엇인가? 개인이 아닌 국가나 사회 모두를 위한 선을 말한다. 청소노동자도 사회를 지탱해 가는 꼭 필요한 존재다.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공공선을 위해 애쓰는 이들은 돈을 떠나서 존중받아야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능력주의 관점에서 그들은 낙오자며 패배자로 취급된다. 배관공이나 전기 기술자, 치과 위생사도 공공선에 기여하는 훌륭한 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인정은 커녕 하급자로 바라본다. 공공선이 무너진 사회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라고 볼 수 없다. 대학이 언제부터인가 교육을 수행하는 장소가 아니라 학력을 부여하는 공장으로 변질되고 '학위'라는 그럴싸한 딱지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를 독점하다보니 시민성을 구현하는 일은 찬밥신세가 되어버렸다.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힘의 근원은 공공선과 시민성이다. 이것은 능력이나 학력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이 도덕적 미덕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지,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타인을 위해 겸손하게 내려 놓는 시민성을 소유하고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본다. 

 

민주주의 사회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라는 사회가 아니다. 그 자유가 오만이 될 수 있다. 다른 이에게는 굴욕을 줄 수 있다. 가난과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굴레를 씌우는 사회가 아니다. 기회의 평등을 넘어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는 환경을 수정해 가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다. 공공선과 시민성은 공동체의 책임을 요구한다. 개인의 이익이 아닌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책임말이다. 공공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희생이 뒤따른다. 누군가는 양보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의 행위에 엄격한 잣대를 부여해야 한다.

 

<공정하다는 착각>은 교만이며, 오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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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중국해, 힘과 힘이 맞서다 - 교역의 중심, 동·남중국해를 둘러싼 패권 전쟁 메디치 WEA 총서 10
마이클 타이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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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관계성을 가진다. 임진왜란만 보더라도 역사란 소수의 몇 개 국가만 연관된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보면 한중일을 넘어 베트남과 캄보디아, 필리핀과 말레이반도까지 관계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무슨 말인가.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내부 사정도 있겠지만 결국은 중국을 침략하기 위한 발판으로 조선을 삼은 것이다. 당시 중국은 명나라였다. 안방까지 다다른 일본군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터라 수 많은 병력을 조선으로 급파한다. 군인을 파병한다는 것은 병참이 함께 뒤따르는 법.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수 많은 군대를 파병한 명나라는 급격히 국가의 힘이 쇄락해 버린다. 쇄락해진 명나라의 어지러운 상황을 틈타 실질적인 지배를 당하고 있었던 베트남(안남)은 배반(?)을 시도하며 독립 왕조를 이뤄내며 그 힘을 바탕으로 캄보디아를 침략한다. 이것만 보더라도역사는 서로 간의 관계에 의해 형성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 대해 약간이라도 들어왔고 공부한 적이 있다. 하지만 조금 아래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류큐국(현재 오키나와현),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중국해에 걸쳐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역사에 대해서는 생소하거나 아예 들어본적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리나라와 밀접적으로 관계된 동아시아 역사 정도만 취급해 왔던 것이 우리 학교의 현실이다. 미국 또는 유럽에 관해서는 세세한 역사까지 관심을 가지려하는 정성과는 정반대로 동남아시아 역사는 비중면에서 아예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중국을 중심에 두고 중국과 관계한 동남아시아의 역사에 대해 조목조목 역사적 문헌과 자료를 찾아내어 독자들에게 새로운 사실들을 전수해 주고 있다. 중국계 영국인이기는 하지만 사실 모른척 하면 그만일텐데 변방의 역사라고 하는 동남아시아 역사에 대해 집요하게 공부한 열심은 태평양 시대를 열어가야 하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하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동남중국해, 힘과 힘이 맞서다> 책을 바탕으로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한쪽으로 쏠렸던 우리의 시야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저자는 중국 국제관계사를 이야기하면서 중국 대륙을 감싸고 있는 동남중국해에 시선을 모으고 있다. 사실, 동남중국해에는 무인도를 포함하여 자그만한 섬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힘의 균형이 팽팽할 때에는 어느 누구도 넘보지 않았던 섬들을 시대별로 강력한 힘을 소유한 국가가 지배했을 때면 어김없이 작은 섬일지라도 조금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았다. 가령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중일전쟁 직후에는 승전국가의 이점을 등에 업고 시모노세키조약을 밀어 부쳤다. 결국 타이완을 비롯하여 왠만한 섬들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장악했다. 반면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패전국가가 되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해 몇 개의 일본 본토 섬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권리를 박탈 당했던 당시에는 다시 섬들의 실효 지배권은 원래의 주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물론 원래의 주인이라는 것도 국제 관계사, 국제 해양법에 따르면 여러 다른 이견들이 있을 수 있겠다. 

 

<동남중국해, 힘과 힘이 맞서다>를 읽고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점은 베트남 역사, 필리핀 역사, 말레이 역사, 싱가포르 역사를 덤으로 익힐 수 있다는 점이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저자가 중국계이다보니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지금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화교를 빼놓지 않고 중심에 두고 있다.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 싱가포르 어느 국가에서든 중국 본토가 고향인 화교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낯선 이국땅에서 살아남아 경제권을 쥐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유대인처럼. 필리핀 같은 경우 원주민 보다 중국 화교와 필리핀 원주민이 결혼하여 낳은 혼혈인들이 주축을 이룬 필리피노들이 현재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동안 스페인과 미국의 폭력적인 지배를 경험한 터라 이제는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한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중국 화교들이 세운 국가라고 착각할 정도로 화교들의 영향력이 가장 큰 나라들 중의 하나다. 화교들은 정착 초기에는 괜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정치와는 동떨어진 행보를 걸었지만 잦은 외국 지배 세력의 교체로 인한 경제적 피해, 심지어 대규모 학살 피해를 당하면서 스스로의 자구책의 일환으로 이주해 온 곳에서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동남중국해, 힘과 힘이 맞서다> 는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보기드문 책 중의 하나라고 본다. 우리나라도 예전과 달리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넘어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동남아시아 국가와 광폭 행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치건 비즈니스건 다른 국가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는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본다. 한 국가의 역사에는 저변에 깔린 쉽게 변화지 않는 민족적 정서가 내재되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 중의 하나는 그 나라의 언어 뿐만 아니라 언어를 이루고 있는 역사를 깊이 이해하고 공부하려는 진심어린 마음을 보여줄 때라고 본다. 경제적 이용가치만 따질 것이 아니라 우리와의 지리적으로 약간 멀더라도 역사를 이해하다보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으며 동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애환을 함께 공유할 수도 있다. 어렵게 여겨지는 동남아시아 역사도 관련 도서들을 여러 권 독파하다보면 익숙해 질 때가 곧 오리라 생각된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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