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엔딩은 취향이 아니라 - 서른둘, 나의 빌어먹을 유방암 이야기 삶과 이야기 3
니콜 슈타우딩거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범한 일상의 삶이 최고의 감사 조건이다!

 

바쁜 일상을 반복적으로 살다보면 순간 잊어 먹는게 있다. 건강의 소중함. 아파보면 절실히 느끼는 것도 건강이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병원 방문도 쉽지 않지만 병원에 가 보면 병실에 환자들이 빼곡히 가득차 있는 모습을 본다. 접수 창구에도 가족들과 함께 온 환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 병원 문턱에만 가 보면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도 많나 싶은 생각이 든다. 평범한 삶이 얼마나 큰 감사의 조건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도 또 다시 일상의 삶을 살면 건강 때문에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깜빡 잊는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소한 일들때문에 감정이 상하고 불평 불만한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정말 아전인수격이다.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만해도 감사해야지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금방 시무룩해지고 직장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자존심이 상했다며 실룻 삐쳐있고. 정말 말이 안 되는 풍경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오늘 아침도 시간에 쫓기어 출근하고 퇴근해서 가족들 저녁 챙기고 밤이면 피곤해서 곯아 떨어지는 삶. 이런 삶이 지겹다고 혹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새드엔딩은 취향이 아니라>는 책을 펼쳐보면 일상의 삶이 무미 건조하다고 불평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서른 두살에 아이 둘을 가진 지극히 평범한 워킹 맘이 갑자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화학요법으로 항암 치료를 받는 과정을 솔직히 기록한 책이다. 그렇다고 우울하고 비극적인 책이 아니라 저자 특유의 삶을 살아가는 유쾌함이 묻어 있는 책이다. 누구나 암 진단을 받으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가슴에 혹이 생긴 것 같다는 시골 동네 의원의 진단을 받고 설마하는 생각으로 큰 병원에 검사를 의뢰한 저자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유방암. 내 몸 속에 암 덩어리가 존재함을 아는 순간,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 얼굴이 머릿 속에 스쳐지나가고 각종 화학치료로 머리카락이 완전히 빠진 민머리의 자신의 모습이 순식간에 지나갔다고 한다. 심지어 관 속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 엄마를 잃고 한 없이 울고 있는 아이들, 그 와중에도 혹시나 아내를 저 세상에 보내고 남편이 재혼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자신의 웃픈 모습도 떠올려 보았다고 한다.

 

암 진단 후 절망에 가까운 하루 하루를 뜬 눈으로 보낸 저자. 한 줄기 실낱 같은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은 살고 싶은 사람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도 림프로 전이되지 않고 예쁘게 암을 자라고 있다는 의사의 말에도 가족들과 환호하고 치료 과정 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증을 느끼면서도 호전되고 있다는 말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저자의 모습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힘내라고 응원하게 되었다.

 

아픈 와중에도 자녀 걱정하는 걸 보면 세상의 엄마들은 정말 위대한 것 같다. 자신의 몸 조차도 돌 볼 힘이 없을텐데도 자녀의 졸업식에는 꼭 참여하여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해 주었다는 대목을 읽으며 눈시울이 붉거질 수 밖에 없었다. 여자들에게 유방암은 열명에 한 명이 걸릴 정도로 흔한 암이라고 하지만 막상 내 가족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충격이 클 것 같다. 유방암과 싸우면서 하루하루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완치해야겠다는 각오가 담긴 평범한 워킹맘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 하루의 삶을 감사하며 주위를 돌아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삶을 유지토록 하는 건강함이 내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 손모아 감사하게 하는 책이다. 가족들과 함께 읽으면 참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디어 읽고 쓰기 - 건강한 미디어 생활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이승화 지음 / 시간여행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생활이 비교 되는 것이 있다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2020년 작년 한 해는 사상 초유로 학생 등교가 3월이 아닌 5월 중순에서야 시작되었고, 코로나 대유행의 몇 차례 기간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온라인 개학, 온라인 수업, 블렌디드 수업, 줌 수업, 플랫폼 기반의 활동 등 미디어와 친숙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학생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직장으로 출근하지 말라는 웃픈 현실이 빚어졌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었고, 쇼핑도 온라인이 대세가 되었다. 이처럼 코로나19로 변화의 중심에 미디어가 자리잡게 되었음을 실감하게 되는 세상이 도래되었다. 사람들끼리 접촉하지 않게 되면서 자연히 물리적으로 미디어를 접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고,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학교 현장에 있으면서 느끼는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교육 격차가 점점 심해 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는 나름대로 미디어를 활용하여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진행하나 수업의 효과가 등교 수업에 못 미친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도 역시나 미디어를 활용한 수업에 대해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미디어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 미디어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등에 대한 차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이 앞으로의 미래사회는 의사소통능력, 협업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의사소통능력만 하더라도 미디어가 다양화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말, 언어, 문자 등이 주요한 활용 매체였지만 오늘날은 비대면이 일상화 되다보니 미디어를 통해 대화하고, 의사를 소통하는 것이 보편화 된 게 사실이다. 즉 다시 말하자면 미래 시대의 의사소통능력은 미디어를 기반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고, 미디어를 제대로 읽고 쓸 수 없다면 문맹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미디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 미디어 문해력이 중요한 이유다. <미디어 읽고 쓰기> 28쪽에는 미디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미디어 media 의 어원은 중간을 뜻하는 미디움 medium, 한자로 하면 매체, 중간에서 연결해 주는 것"

 

책, 잡지, 신문, 라디오, TV, 영화, 유튜브 등 활자, 영상을 포함한 모든 것을 매체라고 볼 수 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어주는 도구를 미디어로 통칭한다.

 

저자 이승화는 미디어의 특징을 4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프레이밍, 메시지를 취사 선택하는 게이트 키핑, 주요한 의제를 선점하는 아젠타 세팅, 의제를 계속 유지하는 아젠타 키핑. 미디어는 읽고 쓰는 행위에 따라 달리 활용될 수 있다.

 

"독서 교육의 권위자 톨로레스 더킨 교수는 읽기를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읽기는 작가가 쓴 텍스트를 독자가 읽는 행위이자 텍스트를 두고 작가와 독자가 대화를 나누는 행위이다" (43쪽)

 

미디어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부른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다양한 미디어를 어떻게 읽느냐가 관건이다. 읽기의 단계에 따라 사실적으로 읽을 수 있는지, 추론적, 비판적, 감성적, 창조적으로 읽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이다.

 

"프란츠 카프가는 책은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90쪽)

 

좋아하는 책, 나에게 맞는 책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우회적 비판이다.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과 조금 달라도 읽으려고 해야 한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미디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가진 생각들이 다 옳을 수 없다. 편협한 사고를 깨뜨리는 도구로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다면 성장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던져주는 미디어가 아니라 개인이 직접 미디어를 생산하는 시대다. 1인 미디어, 1인 출판 등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부담없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도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이다. 나는 꾸준히 블로그에 책을 소개하거나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정리한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 책을 읽는 행위에 멈추지 않고 글을 쓴다. 공유하기 위한 목적이다. 물론 요즘은 긴 글은 인기가 없지만.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한 쪽으로 치우치는 나의 태도를 수정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블로그에 올려진 나의 콘텐츠를 보고 쓴 소리를 남기기도 한다. 주로 어떻게 그런 책을 읽을 수 있느냐, 그 책의 저자는 한 쪽으로 치운 친 사람인데 그 사람의 생각에 수긍할 수 있느냐며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고 글로 표현한다. 댓글도 각광 받는 미디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도구이니 미디어가 맞다. 내가 만약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았다면 이런 댓글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SNS를 통해 대화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이야기한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논리적으로,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장점 때문이리라.

 

새로운 매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내가 편한 미디어만 쓰겠다고 고집하면 외로운 섬에서 홀로 외롭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다양한 미디어를 읽고 쓰는 일은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이 해야 하는 필수 사항이 되어 버렸다. <미디어 읽고 쓰기>의 책 부제처럼 건강한 미디어 생활을 위해 미디어 리터러시(문해력)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과 새와 관 짜는 노인
마틸다 우즈 지음, 아누스카 아예푸스 그림, 김래경 옮김 / 양철북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야 보니토 씨는 안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닌 게 뻔히 보여. 하지만 알베르토, 넌 내가 평생을 알고 지냈는데도 항상 좋은 사람이었어. 설령 클라라 말이 사실이라 해도 난 알아. 네가 아이를 숨겼다면 분명히 거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무슨 일이나 어떤 사람한테서 아이를 보호하는 것일 테지. 어느 쪽인지 난 몰라도 말이야" (214쪽)

 

마법의 도시 알로라에 감염병이 돈다. 팬데믹 코로나19처럼. 아니, 중세 유럽 인구의 절반의 목숨을 빼앗아 간 흑사병처럼. 목덜미에 반점이 생기면 감염이 된 증세다. 흑사병처럼 쥐에 의해서 생긴 병이다. 정체불명인 감염병으로 주인공 중의 한 명이 관 짜는 노인 '알베르토'의 가족 모두 죽게 된다. 평화로웠던 가족에게 예고없이 어둠의 그림자가 들어 닥친 것이다. 알로라에 많은 사람이 죽자 관이 필요하게 되었고, 아마도 알베르토는 그때부터 관 짜는 일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가족을 잃은 아픔으로 30년 동안 홀로 집 안에 틀어박혀 관 짜는 일만 하던 알베르토에게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젊은 여인이 시체가 되어 알베르토 집에 운송되어 온다. 나중에 알 게 된 사실이지만 주인공 '티토' 의 엄마다. 악명 높은 남편의 가혹한 행위를 피해 아들과 함께 알로라에 오게 된 여인은 굶주림과 고통 속에 어린 아들 '티토'를 남겨두고 추운 겨울, 죽음을 맞이한다. 마을 사람들에 의해 시체로 발견된 여인을 통해 알베르토는 소년 '티토'와 그의 단짝 친구 '피아' 새를 만나게 된다. 언제 아빠가 나를 잡으로 오게 될 줄 모르는 공포 속에 살아온 티토는 사람들과 떨어져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되면서 보여 지는 모든 것들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뀌게 된다.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하게 되는데 알베르토의 집을 알게 되고, 그러다가 알베르토의 집에 정착하게 된다.

 

도망간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잡기 위해 경비대장인 보니토가 알로라에 등장한다. 폭군처럼. 아들을 잡기 위해 온 마을을 이 잡듯이 수색하다가 결국 알베르토의 집을 의심하게 된다. 첫 번째 수색에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그러나 이웃집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고발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을 때, 알베르토와 티토는 소설 속 마법의 도시 '이솔라'로 탈출하기로 마음 먹는다. 자정을 기해 닥치게 될 보니토의 습격을 앞두고 영원히 이별할 수 밖에 없는 엄마의 무덤 앞에 가서 예쁜 꽃을 놓아 두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게 한다. 시체를 담아 놓을 관을 배로 사용하여 '이솔라'로 항해해 간다. 알로라에 알베르토 집에 급습한 보니토와 그의 휘하 기마부대는 한 발 늦은 셈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아. 그래도 이곳에 누운 엄마 말고, 여기 오기 전 엄마를 떠올려 봐. 미소 짓거나 웃는 엄마, 밤에 너를 재워 주던 엄마를 생각하는 거야. 슬픔이 전부 사라지지는 않아도 더 행복한 일이 기억날 거야" (73)

 

가족을 잃은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관 짜는 노인 알베르토도 하루 아침에 아내와 세 자녀를 모두 잃었다. 30년 넘게 그 아픔을 간직한 체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외딴 섬처럼 고립되어 집 안에서 시체를 담아 내는 관을 짠다. 밤낮으로 대화하는 사람은 '시체' 밖에 없다. 혼자 이야기하고 혼자 대꾸한다. 그러기를 30년 세월 동안 해 온다. 그러다가 엄마를 잃은 소년 '티토'를 만난다.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된 티토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아'

 

아픔을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래도 이곳에(묘지)에 누운 엄마 말고, 여기 오기 전 엄마를 떠올려바'. 알베르토도 30년 전에 죽은 세 자녀가 쓰던 방에 자녀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책을 고스란히 놓아 두었다. 죽기 전의 자녀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서. 오늘은 2021년 4월 16일,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아이들이 끝내 돌아 오지 못한 날이기도 하다. 자녀를 잃은 슬픔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이웃의 삶을 돌보는 것이 바로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생면부지의 어린 소년 '티토'를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알베르토의 모습을 통해 이웃의 삶을 돌보는 것이 곧 나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일임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참고고 관을 짤 때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업하기 쉽고 금방 썩지 않는 재목이 '미루나무' 관이라고 한다. 관 짜는 노인 알베르토가 독자들에게 팁으로 알려준다. 책에는 신기한 색이 나온다. 책 시작 부분에 보면 '위대한 화가 주세페 베르니체가 피네스트라 자매 집 지붕을 표현할 때' 쓰던 색이다. 도대체 지붕색이 얼마나 특별할까? '눈부신 노른자' 색이다. 이 색은 '공작새 깃털에 박힌 눈알 무늬를 으깨서 만든 색깔' 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기한 새들이 마을에 돌아다니는데 새의 울음소리도 특이하다. '피롱' 한다고 한다. 마법의 도시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년의 비행은 소년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입니다"

 

소년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작가의 비행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청소년의 비행에 대해 엄벌을 내려 더 이상 같은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과 청소년이 비행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여 계도하고 기회를 더 줘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전자의 의견은 아마도 점점 정도를 넘어 선 비행이 일어나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후자의 의견은 청소년의 비행은 사회적 탓이 더 크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을 직접적으로 만나는 교육자들의 생각은 어떠해야 할까?

 

"아이들은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존재입니다. 아직 스스로 자신을 보조할 힘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주위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입니다"

 

천종호 판사는 소년법원에서 수 많은 청소년들을 법정에서 만나왔고 엄숙한 판사의 위치에서 사회의 어른의 입장에서 사건보다 사람인 청소년들을 중심에 두고 판결을 내려왔다. 아빠의 심정으로 호되게 꾸짖기도 하고 훈계를 통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했다. 진정한 사과 없이는, 진실된 반성 없는 판결은 청소년을 사회와 분리시키고 다시 비행을 부추키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음을 알았기에 짧은 시간이라도 반드시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했다. 최대한 형벌은 낮추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판사가 가지고 있는 권위를 충분히 활용했다. 직업적인 관점에서 판사의 역할은 정확하게 사건을 심리하여 양심을 가지고 판결을 내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천종호 판사는 청소년 한 명이라도 법정에서 위압감이 아닌 감화 감동으로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학교 현장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난다. 가정적인 환경이 좋지 않기에 학습 결손이 누적될 뿐만 아니라 학교라는 울타리에도 있지 않으려고 하는 어린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무기력한 이유는 본성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라온 환경 때문이리라. 학교라는 곳이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할텐데 그들에게는 무거운 짐이자 부담이 되나 보다. 하루 걸러 학교에 오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위태위태하며 하교 후에도 따뜻하게 맞이해 줄 어른이 없는 환경에서 과연 그들이 살아갈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비행 청소년들에게도 새로운 삶의 기회를 줄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사회적 낙인 때문입니다"

 

낙인 효과는 무섭다. 얘를 원래 그렇다라는 식으로 낙인시켜 버린다면 헤어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수 많은 비행 청소년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기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탈출할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누군가는 부모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따뜻한 가정을 안겨 줄 수 없다면 푸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제도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면 탈선하는 청소년들이 다시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에는 평범한 가정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상황을 맞딱뜨린 어린 소년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기절초풍할 일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환경을 들어보면 섣불리 비행 청소년들의 형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함부로 내뱉지 못할 것이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내가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남모를 희생을 감수하고 뒷바라지한 어머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다. 단 한 명의 어른이라도 그들 곁을 지켜주었다면 끔찍한 비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 중에 정말 소름끼치는 사건들이 많다. 범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범죄자 개인의 부도덕한 의식 때문인지, 범죄자를 생기도록 한 사회적 제도 때문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운트다운 1945 -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 전 116일간의 비하인드 스토리
크리스 월리스.미치 와이스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 전 116일간의 비하인드 스토리' 라는 책의 부제처럼 제2차세계대전을 종식한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고 투하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아낸 실화다. 책의 이야기는 카운트다운 116일인 1945년 4월 12일부터 시작된다. 당시 워싱턴 정가에서는 해리 트루먼이 부통령이 된 지 82일째였고,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 승리를 눈앞에 두기까지 미국을 이끌어온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예순세 살의의 나이로 뇌일혈로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하다. 참고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병력에 대해 로날드 D. 게르슈테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4선을 역임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자신의 병명을 철저히 보안 사항으로 감추어야했고, 결국 그 사실이 국민들에게 폭로되자 미국은 수정헌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하되, 재임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루스벨트의 재가 아래 원자폭탄 개발 착수는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일명 '맨해튼 사업'이라는 불리우는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는 과학자 오펜하이머였다. 철저한 보안 속에서 오펜하이머와 그 휘하 과학자 부대는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고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답지 않게 여섯 개 언어에 유창했고 고전문학과 동양 철학에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트어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그의 사후 대통령직을 인계받게된 해리 트루먼, 실질적인 책임자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이야말로 전쟁을 끝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보았으며 관련자들을 설득해 갔다.

 

"양자역학은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1945년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가 양자역학의 원리로 원자폭탄을 만들어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천 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했으며 들어간 비용도 20억 달러가 넘었다고 한다. 우라늄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핵분열이 일어나게 하는 원리로 원자폭탄을 만든 것이다. 플루토늄도 핵분열하는 과정에서 생겨진다" <초등학생을 위한 양자역학 4, 이억주>

 

물론, 원자폭탄을 전쟁에 쓰는 것에 대해 도덕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이들도 있었다.(물리학자 실라르드 레오) 원자폭탄을 만든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정확하게 떨어뜨리는 것도 중요했기에 다양한 실전 경험 속에서 실력이 검증된 인물들을 선발하여 캠프 안에서 섭외를 해 나갔다. 원자폭탄을 독일이나 일본 상공으로 운반하는 임무를 '실버플레이트'라는 암호명으로 취급했다. 인류 역사상 보지 못했던 가장 무시무시한 무기이자 온 도시를 파괴할 수 있는 맨해튼 사업은 지독하게 복잡한 과정이 소요되었다. 이와 별개로 국제적인 정치지도사들의 파워게임은 물밑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독일 항복 후 유럽의 국경을 정하는 일이라든지 협상 테이블에서 발언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뭔가 큰 한 방이 있어야했는데 미국의 입장에서 원자폭탄이 그 중의 하나였다. 결국 일본의 어떤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것인지 심리적 충격을 통해 얻게 될 그 이후의 일까지 예상해야 했다.

 

당시 일본의 여러 도시가 후보군으로 좁혀지기 시작했다. 옛 수도이자 인구 100만명의 교토, 군 병참기지인 히로시마, 중요 도시 공업 지역인 요코하마, 일본 최대의 병기공장이 있던 곳인 고쿠라, 항구도시 니카타가 거론되었다. 단, 결정적인 회의 때 일본 예술과 문화의 성지라고 불리우는 교토를 제외하자는 의견이 나와 이를 받아들였다. 폭발력이 있는 핵 연쇄 반응을 만들어내는 원자폭탄인 일명 '꼬마'와 '뚱보'는 불안정한 무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카운트다운 70일에 첫 번째 폭탄 투하지로 히로시마가 선택되었다. 일본을 항복하게 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일본을 패퇴시기기 위한 전면적인 육상 작전 시 50만 명에서 100만 명까지 희생될 것으로 시뮬레이션 상 파악되었기에 당시 태평양 미국 육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원자폭탄을 사용했어야 했느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원자폭탄을 만드는 순간 그 원천 기술은 새어나갈 수 밖에 없고 결국 미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로 충분히 확산될 수 밖에 없다. 전쟁 종식과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선택이 결국은 민간인에게까지 막대한 피해를 받게 된 결과를 초래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카운트다운 1945>의 기록을 통해 당시 절차와 과정 속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각 사람들이 결정했던 모습들을 읽어낼 수 있다. 이제 판단은 독자의 몫이라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