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마당에서 현대와 손잡고 놀아보세 - 2024년 연우당 일기
변인복 지음 / 보민출판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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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대관령 산기슭 눈 내린 한적한 가옥의 이름을 연우당(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만나는 집)이라고 짓고 계절 따라 바람 따라 유유자적 살아가는 퇴직 교사 한 분이 계신다.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소중한 하루하루를 덧없이 보내지 않기 위해 펜을 들고 기록으로 남긴 일기가 바로 '연우당 일기'다. 

 

일기란 글쓴이의 일생이 오롯이 담긴 글 모음이며 작가의 말대로 그 시대를 읽어내는 문화의 지표요 개인의 역사, 지역의 역사, 고장의 역사를 알아내는 한 파편이 되리라. 난중일기에서 영감을 얻어 소소한 일상의 삶을 적어 내려 간 글쓴이의 성실함이 돋보이는 일기다. 

 

강릉을 배경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멋진 풍경, 지역의 명소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와 동선이 겹치는 부분이 많아 마치 기억 속에 가물가물했던 옛 추억이 다시 소환되는 느낌이다.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읽어 본다는 것은 특별한 호기심으로 시작된다. 글쓴이는 삶이 궁금하고 같은 것을 보더라도 남다른 부분을 관찰한 면에 밑줄을 긋게 된다. 이런 뜻이 담겨 있구나, 강릉에 이런 곳이 있었네, 대관령 깊숙한 곳에 작은 책방도 있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그해의 기록은 글쓴이뿐만 아니라 일기장을 읽는 독자들에게 특별한 자극이 되리라 생각된다. 생각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개처럼 사라져 다시 떠올리려고 암만 노력해도 그때의 기억을 다시 되살릴 수 없듯이 기록하는 삶은 삶에 의미를 더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하루가 지나기 전에 또는 깜빡하고 지나친 날이 있으면 그다음 날에라도 소급해서 일기장에 그날그날 살아간 삶의 흔적을, 만났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적는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기록들의 모음집에 이름을 붙여야겠는데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순신은 난중일기, 박지원은 열하일기, 「옛 마당에서 현대와 손잡고 놀아보세」의 작가는 연우당일기로 했는데. 일기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김춘수 시인이 꽃에 이름을 붙여 준 후에야 꽃이 되었다고 말했듯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일 듯싶다.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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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 외 : 양반전, 돈만 있으면 신분도 살 수 있지 생생고전 7
손주현 지음, 경자 그림 / 천개의바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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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 청년이 쓴 소설 마장전. 그 옛날 말을 사고팔 때 중간에서 둘을 이어 주고 수수료를 받는 오늘날로 말하면 중개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마장이다. 마장은 말 거래를 위해 말을 잘해야 했다. 상대가 원하는 가격대를 알고 적절히 조율하고 양쪽이 마음 문을 열고 거래가 성사되도록 잔기술을 보여야 했다. 마장을 소설의 제목으로 삼고 당시 사회상을 비판한 청년이 바로 양반전과 허생전을 쓴 열하일기의 저자 연암 박지원이다.

연암 박지원의 문체는 독특했다. 당시 문인들이 쓰는 고상하고 원리적인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가려운 등을 긁어 주듯 시원하면서 파격적인 소재를 글에다 끌어왔다. 오래된 소설 중에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의미를 더해 주는 글을 일으켜 '고전'이라고 한다. 세월이 흘러도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재미와 함께 깊은 의미를 더해 준다. 박지원의 글이 그렇다.

마장전에서 사람 사귀는 법을 알려준다. 양반들은 의리를 강조하지만 실상 의리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돈 앞에서 의리는 쓰레기 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차라리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틈'을 유지하라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친구 관계도 너무 가까우면 부담스러운 법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친구도 돈이 있어야 친구다. 박지원이 말하는 틈을 유지하라는 말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안부 정도 물어보며 지내는 정도다. 실제적인 조언이다.

양반전은 양반의 민낯을 보여주고 허생전은 의외로 책 읽는 사람의 진가를 보여준다. 학생이라는 말은 책 읽는 사람을 말한다. 늘 배움에 목마르며 책을 읽어내는 사람 즉 벼슬에 나가지 못할지언정 학문에 진심인 사람을 학생이라고 부른다. 허생전의 허생이 그러했다. 허울뿐인 체면은 과감히 던져 버리라고 말한다. 자고로 사람은 명예와 힘과 이익을 좇는 법이다. 아첨을 하는 이유도 이것들을 얻기 위함이다. 진정한 아첨은 명예와 힘과 이익에는 관심 없는 척을 하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쫓는 사람은 하수 중에 하수라고 이야기한다.

고전은 고인 물이 아니라 솟는 물이다. 막 길어올린 신선한 물과 같다. 생생한 고전에서 삶의 진리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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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큰작가 조정래의 인물 이야기 7
조정래 지음, 이택구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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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태백산맥,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 선생님이 쓰신 위인전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왕성한 작품 활동 중에도 그가 위인전을 직접 쓴 이유는 친손자에게 직접 읽히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다. 우리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을 직접 쓰고 손자가 그런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책이니만큼 얼마나 정성을 다해 쓴 책일까 읽어보지 않아도 느낌이 온다. 

 

리더라면 이순신처럼

 

초임 교감 때 교장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은 적이 몇 번 있다. 그중에 하나가 교감의 역할에 관한 부분이었다. 20여 년 교사 생활을 해 온 터라 아직 몸과 마음, 생각이 교사의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때다. 학교의 크고 작은 일들을 조율해 가야 할 교감의 역할을 학교 관리자의 마인드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교장님이 보시기에 나의 모습이 흡족하지 않았나 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리더의 모습이 아니라 아주 세세한 일 덩어리들을 붙잡고 분주하게 일하는 나의 모습이 교장님의 눈에는 아직 리더다운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리더란 자고로 멀리 보고 깊게 생각하며 구성원들을 이끌고 나가야 하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선생님들의 일을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내가 처리하고 관여하려는 마인드가 컸다. 

 

이순신은 우여곡절 끝에 무과에 급제하여 변방 초급 간부로 공직에 임했다. 부침을 거듭하여 결국은 임진왜란이라는 동아시아 최대 전쟁의 획을 긋는 명장으로 이름을 올리기까지 그의 리더십은 교과서다운 면을 보인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리더가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을 차곡차곡 쌓아갔다는 점이다. 이순신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은 병법에 능했다. 지형지물을 활용할 줄 아는 것뿐만 아니라 미리 내다보며 전쟁을 준비하는 전략가였다. 부하들을 다룰 줄 알았으며 승리의 포인트가 무엇인지 헤아린 뒤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모든 공은 부하에게 돌리고 자신은 책임만 졌다

 

리더로서 이순신이 보인 행동 중에 하나는 본인 스스로가 활쏘기와 말타기, 각종 기술에 능했지만 전투는 부하들에게 맡기고 전쟁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애를 썼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 명언 중에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리더는 각각의 나무를 보며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큰 숲을 보며 방향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학교 관리자인 교감도 그렇다. 세세한 업무들을 시시콜콜 다 알려고 하고 직접 관여하려고 하기보다 학교의 교육 목표, 교육 방향을 그리며 공동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하며 올바른 방향 궤도를 미리 앞서서 그려 나가야 한다. 리더의 실력은 일을 잘하는 것에 있지 않다. 조직이 성과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쟁에서 실패는 조직의 궤멸인 것처럼 학교가 지향해야 하는 교육과정 운영의 흔들림은 결국 학생, 학부모, 교직원 모두에게 피해를 안길 수 있다. 리더의 두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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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편지 - 다산 정약용, 편지로 가르친 아버지의 사랑
정약용 지음, 한문희 엮음, 홍금희 그림 / 함께읽는책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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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선생님처럼 독서를 강조한 사람이 있을까 싶다. 18년 유배 기간 동안 노심초사 집안 걱정, 자녀 걱정을 하면서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독서밖에 없다는 사실을 매 편지마다 주지 시켰던 아버지의 심정이 담긴 편지를 읽으면서 그가 어려운 시기를 이겨냈던 것도 순전히 독서의 힘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지금도 그렇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의 뜻을 편지나 다른 방법으로 일관되게 가르침을 전수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임에 틀림이 없다. 가르침을 전하는 부모 자신이 먼저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고 오랜 시간 흐트러짐 없이 주기적으로 가르침을 전달해야 하는 성실함도 몸에 배어 있어야 하기에 자녀 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부모의 역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진심 어린 충고와 조언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나 자신의 뜻을 올곧게 전달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정약용 선생님이시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학연과 학유 두 아들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독서였다. 독서라 함은 공부의 시작점이며 독서할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한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고 언제 어떻게 또 다른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하늘의 운명을 따르되 끝까지 붙잡고 정진해야 할 것은 독서라고 말한다.

독서는 한가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절박할 때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여유로울 때 취미 생활의 한 편으로 쉬엄쉬엄 읽는 것이 독서가 아니라 뜻을 세우기 위해 시간의 우선순위에서 독서를 상단에 배치하고 없는 시간 쪼개어 배움의 열의로 뚫어지게 한 줄 한 줄을 집어삼키듯 읽는 것이 독서임을 다시 상기해 본다.

독서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매해에 새로운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듯이 독서도 그러해야 한다. 대충 되는대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독서를 해야 된다는 삶의 목표가 독서 계획에 포함되어야 한다. '나중에 시간 될 때 그때 가서 읽으면 되지 바쁜데 무슨 수로 읽지'라고 합리화하기보다 '나중은 없다. 이때가 아니면 읽을 수 없다. 어떻게든 읽어야지'라는 단호한 결심이 꾸준한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고 믿는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AI 인공지능 시대에 책은 무슨. 인공지능이 다 알아서 해 줄 건데. 차라리 그 시간에 인공지능 도구를 잘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좋지'라고 나름 현명한 방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나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AI 인공지능에 기대가 싶지 않다. 옳은 길이 아니라고 본다. 지식을 얻는데 대가 없이 취득한다면 과연 그 지식이 값지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싶다. 차라리 힘은 들지언정 내가 노력해서 땀 흘리는 운동선수처럼 생각의 근육을 단단히 만들어간다는 심정으로 독서를 통해 지식을 담금질하고 싶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독서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시간은 어떻게든 만들어 볼 수 있다. 내 정성이 문제지 여건을 탓할 수 없다. 시력이 더 침침해지기 전에 한 권이라도 더 읽는다는 심정으로 지금도 작은 글씨에 눈을 비비며 눈을 크게 뜬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자신의 힘으로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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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들은 일기에 무얼 썼을까? - 선조들의 일기를 통해 본 조선 시대 생활사
이향숙 엮음, 김지연 그림 / 예림당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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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쓴 일기는 일상을 담아낸 글이다. 평범한 하루하루의 삶에서 글의 재료가 되는 금감을 찾아내고 자신의 생각과 함께 잊히기 쉬운 사실들을 솔직 담백하게 적어 내려간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쏟아내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기도 하지만 환희와 기쁨을 오래 간직하기 위한 추억의 앨범이 되기도 한다. 기억을 의존할 수 없는 때가 다가오기 전에 부지런히 써 내려간 일기는 과거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지만 소중하게 주어진 시간들을 값지게 쓰기 위한 미래의 계획서이기도 하다.

일기는 아주 사적인 글이면서 훗날 나를 드러내는 가장 객관적인 글이기도 하다. 일기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 500년, 600년도 더 된 일기장을 마주하며 일기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된다.

『조상님들은 일기에 무얼 썼을까?』는 아주 오래전 소소한 개인의 일상을 적은 일기부터 시작해서 임진왜란과 같은 당시 동아시아 일대의 가장 큰 전란이었던 큰 사건을 경험하며 보고 들은 전쟁의 현장을 개인의 시각으로 사실적으로 적어 간 역사 일기가 담겨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특히 자녀 교육을 오로지 감당했던 조선 시대 아버지의 역할은 새삼 놀라움을 안겨 준다. 치맛바람과 같은 지금의 교육 풍속과는 달리 과거에는 교육의 본을 아버지가 도맡았다는 사실을 개인의 일기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나 유성룡의 징비록과 같은 유명 인사들이 쓴 전쟁 기록도 큰 의미가 있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와 같은 소시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본 전쟁 기록에서 일반 백성들의 아픔과 원성들을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다. 당시의 전쟁 참상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기록들 중에 일기만큼 사실적인 것이 없는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가장 객관적일 수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다. 일상의 면면은 각자 다양하지만 일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기록이다. 종잇장에 써 내려간 일상의 기록은 하루의 삶을 기록한 일기이지만 시간이 더해져 시대의 살아 있는 역사를 이루는 귀중한 머릿돌이 되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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