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치지 않는 비 - 제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개정판 문학동네 청소년 17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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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누구에게나 감당할 수 없는 시련과 아픔이 불쑥 다가오지만 언젠가는 과거의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기억은 잊히는 것이 아니지만 기억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동안 그치지 않는 비를 맞아야 하겠지만.

비를 피한다고 짐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대신 비를 맞아 줄 수도 없다. 비를 함께 맞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고통을 잊기 위해 내가 맞아야 할 비의 총량이 있다.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위하는 일이 아니기에 묵묵히 그가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길에서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가족을 잃는 상실의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이별은 정리의 과정이 필요한 듯싶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기억의 정리 과정이 필요하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된다.

비는 계속되지 않는다. 비가 그칠 것이라는 징조는 먹구름이 거칠 때 알 수 있다. 먹구름 사이에 살짝 내비치는 유난히 밝은 별 빛 속에서 그치지 않을 것 같았던 비가 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 오랫동안 내린 비도 마찬가지다.

한국판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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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을 털어라! : 지리편 편의점을 털어라!
이재은 지음, 왕지성 그림, 문경수 감수 / 북멘토(도서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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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지리가 좋아 사회과부도를 품에 안고 지냈던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전도를 펴서 구석구석 눈으로 살펴보고 통계 자료를 보면서 서로 비교하고 특징을 눈여겨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던 것은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호기심과 즐거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눈을 넓혀 작게 인쇄된 세계 지도 위 나라명과 지역명을 서로 매칭시키며 지리 인식을 자기 주도적으로 했던 그 경험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지리학은 중요한 학문이다. 자연이 남긴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 가면서 지구의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우리 주변 환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환경 속에서는 지구촌 구석구석을 손바닥 보듯이 볼 수 있다. 사회과부도를 넘어 인공위성을 직접 촬영한 도시의 모습을 통해 안방에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모습들을 살필 수 있다. 문제는 해석이고 관심이다. 나열된 정보와 지식의 습득보다 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리를 통해 올바른 미래의 방향을 설정해 가는 일이다.

요즘 환경 파괴를 넘어 기후 위기, 생물 다양성의 위협으로 인류의 생존까지 걱정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초등학생들에게는 다음 세대를 살아갈 환경일 터인데 우리 모두 생태를 전환하고자 하는 획기적인 발상의 변환이 필요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편의점을 털어라』 지리 편은 초등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의점 메뉴들을 소재로 원산지부터 재료의 기원까지 찾아가는 경로를 책의 콘셉트로 잡았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지리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자신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때 호기심을 보이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책을 받아들이는 독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책의 효과는 반감하게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출판사의 방향과 저자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한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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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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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날려보내고 싶은 고통이 사람마다 있을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는 평생 자신을 옭아매는 덫이 될 수 있다. 훌훌 털어 보내고 싶어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입양이라는 나의 선택의 여지는 일도 없는 엄청난 사건 앞에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나게 된다.

이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통해 더욱 강하게 순식간에 찾아온다. 머리도 이해받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감정으로 위로받는 것도 아니다. 가슴으로 무언가 탁 트인다는 느낌, 움직일 것 같지 않았던 큰 바위가 지각변동에 의해 저절로 굴러 움직여진다는 느낌이다. 우리 주위에 큰 바윗덩어리를 안고 사는 이들이 찾아보지 않아서 그렇지 참 많을 것이다. 말 못 할 사연을 간직한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나를 나되게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다. 어머니가 나를 끝까지 지켜주셔서 참 감사하다. 1970년대 모두가 살기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여자 혼자 힘으로 갓난 아기를 키워낸다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회적 냉대와 멸시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지금에야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어 따뜻한 손길을 보내오는 곳이 많지만 그때 당시에는 어림 반 푼어치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손가락질 받지 않으면 다행이던 시절에 어머니는 홀로 모두 것을 포기하고 나를 키워내셨다.

당연히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 본 적이 없다. 아버지 이름 석 자도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나에게 부모는 오직 딱 하나 엄마 혼자였다. 이런 사실이 사춘기 시절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일들이었다. 철저히 감추고 감추어야 할 비밀이었다. 그럴수록 점점 외톨이가 되었고 과장이 심하거나 거짓말투성이인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훌훌 털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전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숨겨야 비밀도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철이 들었다.

훌훌 날려버리고 나니 전혀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나와 같은 입장에 처한 아이들을 만날 때 그 아픔을 진심으로 받아줄 수 있었다. 학교 현장에서 담임 교사로 살아갈 때 상처 입은 우리 반 아이들을 저절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상처가 오히려 나에게 교사로 살아감에 있어 큰 선물이 되었다. 훌훌 털고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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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
탁동철 지음, 나오미양 그림 / 양철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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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탁동철 선생님의 신간 동화가 나왔다. 따끈따끈한 책이다. 이번 동화는 표지부터 다르다. 의미심장하다. 장호라는 소년이 문제 아동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나며 '자연 속에서 생생하게 자라나는 자연의 아이'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탁동철 선생님만의 언어로 써냈다.

초등학교 교사라면 꼭 읽어보셨으면 한다.

다양한 가정의 배경이 가진 아동들이 늘어나고 있다. 통합적인 지원을 통해 위기의 가정환경 속에서 회복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이 절실한 아동들이 우리 곁에 있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움츠러든 이들의 마음 문을 열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사람은 담임 선생님이다.

담임 선생님의 따뜻한 관찰과 관심, 지속적인 격려가 '장호'를 회복하게 할 것이다. '장호'를 기다려 주고 '장호'만의 특징을 살펴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펼쳐주는 '담임 선생님'의 모습이 동화 속에 잘 읽힌다.

탁동철 동화는 다른 동화와 차별점이 있다. 동화에 쓰인 언어들이 어지간해서는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언어라는 점이다. 자연에서 숨 쉬고 살아 움직이는 동식물을 마치 자연 동감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가져왔다. 동화에 등장하는 아이들 모두 자연 속에 최적화된 얘들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오염된 도시의 언어가 아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날 것의 사고는 꾸밈이 없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강원도 속초 양양지역은 오래전 한국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고향을 잃고 정착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장호의 할아버지가 쓰는 말만 보더라도 생소하게 들린다. 실향민들만이 사용하는 말투다. 탁동철 동화 안에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그 지역만의 고유한 언어, 생활양식, 문화 등이 녹아있다.

용감무쌍하게 멧돼지 사냥을 떠나는 아이들, 욕하는 사람은 아이든 교사든 구덩이를 파내야 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벌, 직접 야외에서 밥 해 먹기 위해 원시적인 방법을 활용하여 불을 지피는 장면들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시골 학교에서 실제로 아이들과 함께 했던 활동이라는 예감이 들 정도로 이야기가 실감 난다.

탁동철 선생님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이제 3월 새 학기 면 선생님들의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많은 '장호'들을 학급에서 만나게 되리라. 탁동철 동화를 떠올리며 쉽지는 않지만 걸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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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13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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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종이와 펜과 불행한 어린 시절이다" _작가의 말 中

불행한 어린 시절은 근성을 만든다. 정인이도 그랬다. 폐지를 주워서라도 어린 손주를 키워 낼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근성을 가난이 키워냈다.

중학생의 나이에 아르바이트 자리도 얻기 힘든 현실에서 겨우 얻어낸 햄버거 가게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유통 기한 지난 햄버거 패티라도 얻어 가지고 와서 끼니로 때우며 살아야 하는 구질구질한 삶도 결국 가난이 던져주고 간 결과였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하지만 가난을 통해 죄를 짓게 되는 슬픈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지만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현실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자칫 가난은 악마의 유혹으로 누구든지 몰아넣을 수 있지만 감사하게도 작가는 행운이라는 유혹으로 찾아온 덫에서 정인이와 할머니를 구해낸다.

우리는 화려하게 살고 싶어 한다. 편안한 삶을 추구한다. 돈이 행복의 척도가 되었다. 누구는 로또만 당첨되기를 바라며 인생을 건다. 네잎클로버가 가져다줄 행운을 쫓는다. 신기루를 향해 질주한다. 악마의 유혹이라 할지라도 달콤함을 위해 기꺼이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냥 한 번 더 진짜를 살아 볼게요'라고 용기를 낸다. 가짜가 아니라 진짜 삶을 살기를 독자들에게 권한다. 가짜는 향기가 없다. 가짜는 죽어 있다. 진짜는 시들지만 다시 일어난다. 평범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는 살아 있는 숨결이 담겨 있다.

폐지를 줍는 삶이 부끄러운 삶이 아니라 폐지를 줍는 삶을 외면하는 삶이 부끄러운 삶이다. 적은 소득이라도 땀을 흘리는 삶이 진짜 살아가는 삶이다. 그럴싸하게 보이는 검은 고양이의 그림자를 자세히 보라. 악마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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