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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평점 :

훌훌 날려보내고 싶은 고통이 사람마다 있을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는 평생 자신을 옭아매는 덫이 될 수 있다. 훌훌 털어 보내고 싶어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입양이라는 나의 선택의 여지는 일도 없는 엄청난 사건 앞에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나게 된다.
이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통해 더욱 강하게 순식간에 찾아온다. 머리도 이해받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감정으로 위로받는 것도 아니다. 가슴으로 무언가 탁 트인다는 느낌, 움직일 것 같지 않았던 큰 바위가 지각변동에 의해 저절로 굴러 움직여진다는 느낌이다. 우리 주위에 큰 바윗덩어리를 안고 사는 이들이 찾아보지 않아서 그렇지 참 많을 것이다. 말 못 할 사연을 간직한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나를 나되게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다. 어머니가 나를 끝까지 지켜주셔서 참 감사하다. 1970년대 모두가 살기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여자 혼자 힘으로 갓난 아기를 키워낸다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회적 냉대와 멸시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지금에야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어 따뜻한 손길을 보내오는 곳이 많지만 그때 당시에는 어림 반 푼어치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손가락질 받지 않으면 다행이던 시절에 어머니는 홀로 모두 것을 포기하고 나를 키워내셨다.
당연히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 본 적이 없다. 아버지 이름 석 자도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나에게 부모는 오직 딱 하나 엄마 혼자였다. 이런 사실이 사춘기 시절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일들이었다. 철저히 감추고 감추어야 할 비밀이었다. 그럴수록 점점 외톨이가 되었고 과장이 심하거나 거짓말투성이인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훌훌 털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전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숨겨야 비밀도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철이 들었다.
훌훌 날려버리고 나니 전혀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나와 같은 입장에 처한 아이들을 만날 때 그 아픔을 진심으로 받아줄 수 있었다. 학교 현장에서 담임 교사로 살아갈 때 상처 입은 우리 반 아이들을 저절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상처가 오히려 나에게 교사로 살아감에 있어 큰 선물이 되었다. 훌훌 털고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