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할수록 쌓이는 질문 - 실천으로 풀어보기
강원학생평가교과연구회 지음 / 단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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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학급 환경에 놓인 여러 선생님들이 실제 수업 상황에서 어떻게 평가를 할 지 고민한 흔적들을 담아냈다. 많게는 30명에 가까운 학생들과 생활하는 선생님에서 적게는 10명 이내의 학생들과 생활하는 선생님까지 자신의 수업 장면을 자세하게 공개했다.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평가가 곧 수업이라는 말이다. 평가를 해야 하는 이유는 학생의 실생활을 수업에 끌어들이기 위함이며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들을 평가 장면으로 가지고 왔을 때 교실 속 분위기가 활기차고 의미 있었다고 고백을 한다.

 

수업 따로 평가 따로가 아니라 수업과 평가가 한몸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평가 계획이 우선되어야 하며 평가 과제를 선정할 때도 결국 교사 단독으로 할 것 이 아니라 최대한 학생들을 참여시켜 평가가 점수를 얻기 위한 형식적인 제도가 아닌 자신의 현재 상황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임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성취기준에 기반한 평가를 강조하고 있다. 교사는 성취기준을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성취기준에서 평가요소를 찾아내고 수업 상황에서 언제 어떻게 평가를 해야 될 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평가는 점수를 내서 서열을 매기는 데에 있지 않다. 평가는 학생의 성장과 발달에 목적이 있다. 도달정도를 관찰해서 필요한 지점에서 피드백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교사가 전문가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충 감으로 평가를 할 수는 없다. 자신이 맡은 학생들이 학업 성취도가 어느 정도인지, 무엇을 어려워하고 있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관찰하여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평가할수록 쌓이는 질문>의 책 제목처럼 다양한 평가 장면에서 학생과 교사 모두 질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학생은 교사에게, 교사는 학생들에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평가 장면에서는 질문이 생길 수 없다.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지점을 교사에게 질문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 형식적인 평가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다. 평가 장면을 설계할 때 교사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가장 학생을 잘 아는 사람이 교사여야 하는 이유다. 

 

과정중심평가에 대해 선생님들의 생각을 물어보면 간혹 귀찮다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 '귀찮다'. 맞는 말이다. 학생들의 수행 과제를 중심으로 꼼꼼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손이 많이 것이 사실이다. 에듀테크가 많이 도입되긴 했지만 학생들의 삶을 자세히 알 지 못한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남긴 기록에서 깊이 있는 해석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귀찮을 정도로 학생들의 관심사를 미리 파악해야 되고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교사의 주된 관심사가 학생이 되어야 한다!

 

수업에서 떠나 있는 교감인 나는 그나마 수업 상황을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는 수업 이야기가 담긴 책들에서 큰 도움을 얻는다. 선생님들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고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교무실에 박혀 있으면 교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때가 많다. 학생들과 함께 했던 교사 때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선생님들이 직접 쓴 책을 가까이 하고 간접적으로나마 현장감을 유지하도록해야겠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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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는 수업 - 책으로 아이와 밀당했던 기록 행복한 독서교육 8
권일한 지음 / 행복한아침독서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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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아껴 읽기 위해 밑줄 긋지 않고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읽다가 끝부분에 가서야 결심을 포기했다. 모나미 빨간 수성 싸인펜을 들고 꼭 기억하고 싶은 문장, 마음을 울렸던 문장, 새롭게 알게 된 문장에다가 과감히 줄을 그으면서 읽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첫 장부터 줄을 그으면서, 빈 여백에다가 생각을 끄적이며 적을 수 있겠다.

 

금요일 오후에 저자로부터 직접 책을 받고 나서 토일 이틀 동안 틈나는 대로 읽었다. 시간이 넉넉했던 것은 아니다. 토요일은 새벽4시에 일어나 어머니를 방앗간에 모셔 드렸다. 직접 캔 쑥과 불린 찹쌀을 가지고 쑥떡을 만드신다고 하셔서 꼭두새벽부터 일어났다. 오전 9시부터 오후2시까지는 교회에 가서 작업(공사)을 도와드렸다. 짬짬히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어내야했다.

 

독서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신 선생님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꼬드겨 책을 읽게 하는 저자의 비법이 놀랍기 그지없다. 심지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꺼번에 모아 놓고 독서 수업을 했던 장면에서는 입이 딱 벌어졌다. 독서의 고수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것 같다. 독서 수업의 시작과 끝을 생생히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었다. 단순히 책을 읽게 하는 수업이 아니라 책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만나게 하고 자기 생각을 말하게 하며 글로 표현하게 하는 수업이다. 저자는 독서 강의보다 독서 수업을 좋아한다. 아이들과 만나 책을 매개로 수업하기 좋아한다. 독서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킨다. 담임선생님도 하지 못했던 아이의 마음을 독서 수업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오픈시켜 아픔을 끄집어 내고 울음을 터뜨린다. 아픔을 회복시키는 수업이다. 울리는 수업이다. 아이도 울고 저자도 울고. 마음도 울리는 수업이다. 촉촉하게 말이다. 독서 수업을 또하고 싶다고 아우성이다.

 

저자는 책벌레답게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책을 선택한다. 책을 많이 읽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책을 깊게 읽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책을 선정한 후에는 책놀이로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확인한다. 본격적인 수업은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된다. 울리는 수업의 비법은 질문에 있다. 저자는 질문을 만들기 위해 여러번 책을 읽는다. 주의 깊게 문장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먹는다. 꼽씹는다. 질문을 만드는 이유는 아이들이 책의 줄거리를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찬반 토론의 성패도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책의 내용에서 뽑아낸 질문이 책의 주제를 찾게 만든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책을 보게 만든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이 정리 되어 있어야 한다. 생각을 정리하는데에는 토론만큼 좋은 것이 없다. 토론의 주제도 책 내용에서 찾아낸다. 책 내용이 곧 질문이 된다. 울리는 수업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책 한 권을 읽었다는 것은 문장을 읽었다는 얘기다. 저자의 이야기다. 문장을 읽기 위해서는 문장에 빠져 들어야 한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찾으면 밑줄도 긋고 "캬~" 라고 소리를 질러보자. 저자는 좋은 문장을 찾아내도록 수업 시간에 일부러 아이들 앞에서 "캬~좋다"라고 오버한다. 좋은 질문도 좋은 문장에서 캐 낼 수 있다. 좋은 문장을 자주 읽다보면 좋은 문장을 흉내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을 쓸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저자는 좋은 문장을 가지고 초성게임도 진행하고 퀴즈도 진행한다.

 

책 읽는 습관을 다시 점검해 봐야겠다. 책 한 권 읽은 것에 만족할게 아니라 좋은 문장을 읽었는지, 내 생각을 바꾸게 한 문장은 무엇이었는지, 왜 마음이 울렸는지 생각하며 읽어야겠다. 답답할 때 책을 읽으면 위로가 된다. 부산스러울때 책을 읽으면 마음이 정도되는 느낌이다. 책이 주는 선물이다. 책벌레 저자에게 책 읽는 방법을 배운다!

 

https://blog.naver.com/bookwoods/221915146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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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높이뛰기 - 신지영 교수의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
신지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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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지영 교수는 언어학자다. 언어학자이지만 글을 아주 쉽게 썼다. 마음 잡고 3~4시간이면 거뜬히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높은 책이다. 우리말처럼 쉬우면서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저자는 시대에 따라 언어가 바뀌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지위에 따라 언론이 언어를 어떻게 다루는지 일반 대중들에게 고발하듯 풀어냈다.

 

사실 언어를 정착시키는 사람은 다수의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요즘처럼 방송과 언론이 여론을 움직이는 시기에 방송이나 언론에서 특정한 언어를 자주 노출시킨다면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도구다.(43쪽)

 

언어가 생각의 도구라는 얘기는 언어의 흐름을 보면 요즘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저자가 책 앞부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문법상 언어가 분명히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대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이 있다. 명령어를 취급하는 사람들의 언어 태도가 문법마저도 초월하고 있는 사례로,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78쪽) 가 대표적이다.

 

단순한 사물을 존칭으로 대우하는 모습에서 말하는 이의 비굴한 모습마저 느껴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명령이 공손함과 공존하기 어렵다', '서비스 장면은 친절함과 공손함을 요구한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혀 맞지 않은 어법이지만 단순한 명령이라 할지라도 청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겠다는 화자의 태도가 이상한 말을 만들어내고 통용하게끔 되었다는 이야기다.

 

학교에서도 위와 유사한 말들이 통용되고 있다. 가령 예를 들면 이렇다. "선생님, 이것을 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언뜻보면 상당히 극존칭어로 볼 수 있겠지만 어법상 전혀 맞지 않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냥 '선생님, 이것을 해 주실 수 있나요?' 라고 물어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왜 '~ㄹ까요?' 라는 식으로 말할까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문법에 맞지는 않지만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원하는 행동을 요구할 수 있는 표현" 이므로(86쪽)

 

그런데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일상 생활에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면 결국 '일상의 갑질'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편안한 관계가 아니라는 얘기일 수 있다.

 

"공손성의 요구 뒤에 숨어 있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일상의 갑질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따끔한 일침에 정신 번쩍 뜨인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엄청난 온도 차이가 있다. 왜냐면 언어에는 권력이 숨겨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언어를 지배하던 시대가 있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권력의 유무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다. 현재에도 가족 관계에서 사용되어지는 언어에서 심심치 않게 이전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은 자연스러워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말이다.

 

언어도 변한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하는 것처럼. 이제 우리는 언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언어 안에 차별과 혐오적인 요소가 숨겨져 있지 않은지 살펴보며 사용할 수 있어야겠다. 저자는 이것을 언어 감수성이라고 말한다. 특히 본인이 권력을 쥐고 있는 쪽이라면 더더욱 언어 감수성에 민감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엎질러진 물과 같다. 같은 값이면 모두가 듣기에 편한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https://blog.naver.com/bookwoods/222707992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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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적 성경읽기 - 콘텍스트를 품고 다시 텍스트로
전성민 지음 / 성서유니온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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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적 성경읽기는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성경읽기다" (93)

 

성경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의 성경 읽기는 하나님과 관계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곧 성경 읽기를 통해 하나님을 좀 더 알아갈 수 있다. 온 세계를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 다양한 만물 속에서도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지만 문자로 기록된 성경은 오래 전 한 민족을 선택하여 하나님 자신을 보여준 역사의 기록이며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인류의 죄를 위해 몸소 희생 당하신 최근의 역사의 기록이 담겨진 책이기에 좀 더 실감나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성경이다.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성경 읽기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나 성경을 통해 생생하게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만의 고집스러운 생각으로 성경을 읽어갈 때 성경을 오독하거나 자신만의 신념을 강화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못 분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양하다.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색안경을 끼고 성경을 보면 자신의 생각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 성경을 읽는 이유가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한 것인데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성경을 이용한다면 고집불통이 될 수 밖에 없다. 『세계관적 성경읽기』는 성경 읽기를 통해 세계관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최근 한국 기독교가 보여준 상식 밖의 모습을 보면 세계관적 성경 읽기가 더욱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의 성경 구절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 저자의 지적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만 사랑하는 것처럼 성경을 읽어가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 것처럼 세상을 사랑해야 한다. 세상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보존하고 평화롭게 해야 할 대상이다. 그리스도인이 머무르는 곳마다 화목이 일어나고 분쟁이 사라지며 사랑이 꽃피워야 한다. 그런데 이게 왠말인가?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구분짓고 차별하며 고집스럽게 행동한다. 세상을 정복할 곳으로 여기며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다. 성경을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성경 읽기를 통해 비뚤어진 세계관을 변화시켜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모두 교회다. 그리스도인은 사회 곳곳에서 포용과 관용의 태도로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복음이 전해 질 수 있다. 희생하고 낮아지는 겸손한 삶을 살아갈 때 구별된 향내를 드러낼 수 있다.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낮은 곳에서 희생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았나. 

 

저자가 책에서 인용한 아라비아 속담 "흔들리는 나침반은 틀리지 않는다" 라는 문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나와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그리스도인이 곧 세상 속의 나침반이다. 상대방은 생각은 틀리고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은 고장난 나침반일 뿐이다. 고장난 나침반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 나침반은 흔들려야 한다. 이 얘기도 들어보고 저 얘기도 들어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져 줄 때 이기는 거다. 낮아질 때 높아지는 거다. 나도 나이가 들수록 고집만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신앙 생활을 오래하면 내 신념만 굳어지는 것을 느낀다. 이 때 조심해야 한다. 때마침 『세계관적 성경읽기』가 나를 구원했다^^

 

https://blog.naver.com/bookwoods/222690418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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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 성경의 세계를 빚어낸 고대 지중해 문화권의 사회상
랜돌프 리처즈.리처드 제임스 지음, 윤상필 옮김 / 성서유니온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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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는 새로운 관점, 성경은 개인에게 준 책이 아니라 공동체에게 제시한 책이다!

 

성경을 읽고 나의 삶을 적용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매일 아침 일정한 분량의 성경 본문을 읽고 삶을 나누는 '경건의 시간' 이었다. 당시 얇고 아담한 QT집을 정기 구독하며 매일 손에 들고 동아리방에 찾아가 선배의 인도하에 본문을 돌아가면서 읽고 잠시 묵상 하고 자신의 생각을 나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생각해보면 성경 본문을 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해석한 것 같다. 당연히 적용도 개인적인 면에 치울 때가 많았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잠이 많았던 대학 시절 아침 일찍 시간 내어 습관적으로 모여 성경을 줄기차게 읽고 묵상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도전이라고 스스로 칭찬해 보지만 아쉬움감이 없지 않다. 30년이 지난 현재도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한다. 때로는 바쁘다는 이유로 대충 한 번 쓱 읽어보거나 본문을 해석한 글을 읽고 지나칠 때도 많다. 하지만 성경 본문을 깊게 읽고 관련 본문도 찾아서 여러 군데 찾아 읽어보면서 성경의 본문을 최대한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날의 삶의 적용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남달랐던 것 같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개인적인 관점에서 적용하는 것보다 가족, 공동체, 직장, 교회, 국가 등 집단주의적인 관점에서 본문을 해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라는 책은 책의 부제가 말해 주듯이 '성경의 세계를 빚어낸 고대 지중해 문화권의 사회상'을 토대로 성경을 읽어내는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성경을 집단주의적인 관점에서 읽어야 오독하지 않게 된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오래전 기록되었던 성경은 우리가 잘 아는바와 같이 현대의 문화적 관점으로 읽으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참 많다. 왜 죽은 형의 아내와 결혼해야 되는지, 왜 길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해야 되는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성경은 참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이 기록된 당시 문화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 읽어내면 현대의 사람들이 개인주의에 몰입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은 족장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들은 족장의 대표들이며 가문과 식솔들을 책임지는 자리에 놓여 있었기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집단을 책임지기 위한 것이었다. 집단주의적인 관점(친족, 후견, 중개)으로 성경의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면 성경의 문맥을 좀 더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처럼 되라고 자주 이야기하셨다. 그 이유가 뭘까? 성경을 오독하게 되면 이렇게 적용하게 된다고 한다.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지라고. 그러나 성경이 씌여진 당시 시대상과 문화, 집단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순수한 마음을 가지라는 극히 개인적인 적용을 벗어나 어린 아이처럼 '낮아지라'라는 사회문화적인 메세지로 접근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권력의 시녀가 된 종교인들, 민족을 뒤로하고 집권 세력에 아첨하고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으려고 하는 권력의 추종자들처럼 사는 삶이 아니라 어린 아이처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낮아지라는 예수님의 간곡한 비유가 원래의 뜻이라고 말한다. 사실 예수님 자신이 하늘의 권력을 내려놓고 인간의 몸으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말이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첨예하게 대립하던 부분이 있었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의견이 팽팽했던 이유는 구원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있었다. 바울은 이방인들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반면 베드로는 유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다. 바울과 베드로 모두 집단주의적 관점에서 구원을 바라본 것이다. 개인의 구원보다는 공동체의 구원을 더 강조한 듯 싶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한 가족의 의미로 형제, 자매로 부른곤 한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생각이다. 개인주의를 넘어 더 세밀하게 개개인주의로 흐르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 공동체를 넘어 나라와 민족을 염두하라는 메세지는 부담이 되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기독교의 메세지 자체가 개인에게만 국한되었다면 기독교는 전 세계로 확산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모두가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시대를 거슬러 나 외에 남을, 나를 넘어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섬기고 낮아지는 삶을 살 때 바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 아닐까 적용해 본다. 

 

https://blog.naver.com/bookwoods/222689628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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