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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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환히 보이는 현재를 선호한다. 손에 거머쥘 수 없는 혼돈보다는 예측 가능한 질서를 만들고 싶어 한다. 어정쩡한 표현보다는 명확한 어휘로 정리된 완벽한 결과물을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때로는 실체가 없어 보이는 사랑과 평화, 그리움과 고마움이라는 느낌보다는 좋다, 나쁘다, 기쁘다, 슬프다처럼 구체적이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더 쓸모 있다고 여긴다.

더디고 느린 것을 못 봐준다. 실력 없어 보이고 능력 부족한 사람을 가까이 두려고 하지 않는다. 연세 있으신 분들을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사라져 없어져야 할 한낱 물건 취급하는 불쌍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미래라고 해서 모든 것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소중하고 오랫동안 붙들고 있어야 한 가치들이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시간 맞춰 돌아가는 기계처럼 딱딱 들어맞아야 성에 차고 배고픔과 연민은 쓸데없는 감정이며 고통이나 아픔은 기억조차 하지 말아야 할 쓰레기 취급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과 편안함일까?

미래의 모습을 다룬 『기억 전달자』를 통해 불완전해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 결국 살아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며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세상은 결코 완벽하게 착착 돌아갈 수 없는 세계임을 다시 생각한다. 새해가 되면 모두가 복 많이 받으라고 이야기한다. 하는 일 모두 잘 되라고 덕담을 주고받는다. 고통과 아픔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쟁과 싸움이 없는 평화의 세계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 가운데에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사랑을 실천해 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통을 느낄 수 없다면 병든 사람이다. 육체에 질병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마냥 좋은 감정만 느끼고 싶다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일 거다. 나쁜 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면 온전한 기억일 수 없다. 좋든 싫든 여러 기억들을 생각해 낸다는 것이 곧 살아 있다는 증거다.

기억을 전달하는 것도 기억을 보유하는 것도 고통을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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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운
문경민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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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돈에 대한 욕망, 돈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고 싶은 야망, 돈과 함께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허망한 생각까지 품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파멸에 이르고 나서야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 돈임을 깨닫지만 그것조차도 잠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옛 영화를 다시 누려보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속성임을.

사용하지도 않을 부동산을 소유하고자 하는 열풍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왔고 급기야 초등학생들의 꿈이 조물주가 아닌 건물주라는 물질만능주의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다. 어른들이야 다를까. 기회가 찾아오지 않아서 그렇지 결국 여유가 있고 돈이 있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뷰 좋고 목 좋은 곳에 여러 채의 자산 취득을 위한 건물들을 다다익선으로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인 것을.

교직에 들어선지도 3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교직에 임하는 선생님들의 직업관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돈이 아니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적당한 보상의 대가로 돈과 시간을 원한다. 워라밸이다. 탓할 수는 없다. 시대상이니까. 하지만 교사로서의 아이들을 향한 열정 있는 태도로 대했던 수많은 선생님들을 보아왔기에 지금의 현실이 아쉽게 다가온다.

『화이트 타운』은 현대판 바벨탑이다. 착착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 혼돈과 무질서로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선과 악을 무 자르듯이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나 또한 그렇다. 다만 불쑥 솟아오르는 욕망의 실체를 알고 절제하기 위해 노력할 뿐 나 또한 화이트 타운을 통해 욕망을 분출하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겠다 싶다. 누군가 돗자리를 펴주며 채근 거리며 유혹의 손길을 애써 마다하지 않고 은근슬쩍 가담하려고 하지 않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내 안에 있는 욕망 덩어리를 살펴보자. 『화이트 타운』을 통해. 참고로 『화이트 타운』은 2021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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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어 문학동네 청소년 70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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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기는 본인에게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긴장의 연속이다. 예고 없이 감정이 폭발하는 것을 둘째치고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말을 할 때에는 가슴이 철렁한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러겠거니 하지만 부모 마음에는 큰 대목이 쿵 박히는 순간이다. 우리 집은 아직 셋째가 그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각오하고 있다. 첫째, 둘째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문경민 작가의 『나는 복어』를 읽으며 잘 커 준 우리 집 첫째와 둘째에게 감사하고 마지막으로 막내와 어떻게 청소년기를 보내야 할지 마음 다짐을 한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도 그런데 평범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는 청소년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짠하다. 마치 기찻길 선로 위를 걷는 느낌이랄까. 누군가 곁에서 지지해 주고 위로해 주는 어른이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 혼자의 힘으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청소년 시기를 지나고 있다.

뒤돌아보니 내가 어떻게 청소년 시기를 보냈는지 기적이다. 그나마 감사한 것은 예전에는 든든하게 지켜봐 주는 어른들이 주변에 많았다. 곁길로 빠져나갈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손잡아 주는 분들이 있었다. 아버지 없이 자라며 어머니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우리 집은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처지였다. 혹시나 친구들이 내가 살고 있는 셋방 집을 알까 봐 몰래 집에 들어가고 몰래 나왔다. 친구를 셋 방에 초대한 적이 없다. 늘 혼자였다. 그러고 보니 여러 셋 방을 거쳐 왔다.

가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닌데 말이다. 아버지가 없는 삶이 내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어머니가 하는 일이 뭐가 부끄러웠는지 하지 말아야 할 말도 서슴지 않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어머니에게도 가슴 아픈 사연이 많았을 거고 자식에게 밝히지 못할 일이었을 텐데 그 당시 나는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철부지 자식이었다.

결혼하기 전 우리 집은 늘 식구가 두 명이었다. 나와 어머니. 명절 연휴가 제일 싫었다. 갈 때도 없었다. 셋방에 살고 있는 우리집은 명절 연휴 내내 방 안에 콕 박혀 지냈다. 주인 집에는 친척들이 와서 시끌벅적한 데 밖에 나가기가 부끄러웠다. 내 또래가 있었던 집에 살았던 때에는 더더욱 몰래 다녔다. 지금에서야 나이가 들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청소년 때에는 왜 그랬는지 싶다.

『나는 복어』의 주인공 두현이가 감옥에서 출소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발걸음이 어떠했을지 조금은 마음이 간다. 청산가리를 먹고 생을 달리해야 했었을 어머니와 관련된 그 아버지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복어라는 생선에는 독이 있다고 들었다. 턱 주위가 불룩 솟아 오른 복어도 자신을 위한 생존 수단일 거다. 마음에 독을 품고 사는 청소년들도 그러할 거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마지막 무기일 거다. 나도 복어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땐 독기가 창창했다. 다행히 그 독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삶의 근성은 그 독기가 만든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니 저절로 독기가 빠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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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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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세계가 있는 사람은 삶의 태도가 다르다. 지켜야 할 세계는 타협 불가능한 영역이다. 지켜야 할 세계는 결코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말하지 않는다. 깊이 박혀 있는 단단한 옹이와도 같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세찬 칼바람을 맞으며 견뎌낸 평생 지워낼 수 없는 오래된 기억이다. 쳐다보기 싫어서 내어던져 버렸지만 결국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지켜야 할 세계다. 자신 그 자체다.

2년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젊은 교사가 악성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한 학부모에 의해 생을 달리했다. 대한민국에 있는 교사들 모두에게 공분을 일으켰다. 예전에도 이런 사례가 없지는 않았지만 꾹꾹 눌려 참아왔던 것이 봇물처럼 터진 것이다. 유사 이래 수많은 교사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학교 밖 광장으로 뛰쳐나온 사례는 없었다. 교사들에게 지켜야 할 세계가 분명히 있었다. 침범당한 영역을 지키고 싶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세계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혹시 적당히 타협하고 현실에 순응하며 지켜야 할 세계가 내게 있었지라고 두루뭉술하게 지내고 있지 않는지 고집부리면 좋을 것이 없으니 주위 평판을 고려하며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 관심을 두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본다.

문경민 작가는 『지켜야 할 세계』에서 소설 속 주인공 국어교사 정윤옥이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인간다운 양심, 교사다운 소신을 풀어내고 있다. 지켜 내고 싶은 것은 그 무엇 하나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세계'였다.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이다.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가족, 친구, 일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교사에게 있어 수업과 학생, 동료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말이다.

'지켜야 할 세계'를 간직한 사람들을 만난다. 가치 여부를 떠나 최대한 존중해야 할 영역이다. 사람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전혀 알 수 없는 세계를 간직한 이들도 있다. 속물처럼 돈에만 눈이 멀어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만의 살아가는 세계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세계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지켜야 할 세계, 지켜 주어야 할 세계를 인정하며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따뜻하게 보호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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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한빛문고 1
이문열 지음 / 다림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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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냐? 안정이냐?

조직의 방향을 정해야 할 때가 있다. 새로운 학기를 앞두고 조직을 편성할 때 또는 새로운 근무지로 옮겨 갔을 때처럼 새로 무언가를 정해야 할 때 고민에 빠진다. 신규 교감일 때에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대부분 신경을 나 자신에게 기울였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에 기존에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었던 조직의 방향에 순응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반면 교감 경력이 쌓일수록 보는 눈이 생기자 뭔가 새로운 시도를 주체적으로 하고 싶었다. 주어진 옷을 대충 입는 단계에서 꼼꼼하게 내 스타일에 맞는 옷을 찾아 입고자 신경을 썼다. 안정적인 분위기가 왠지 고여 있는 물처럼 보였다. 변화의 드라이브를 걸자 선생님들도 낌새를 알아챘다. 반응이 분분했다. 변화는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관리자 유형은 크게 안정형과 개혁형으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정형은 사람들과 부딪치려고 하지 않는다. 기존의 흐름을 애써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최대한 저항을 줄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자 한다. 관리자가 직접 전면에 나서는 횟수는 줄이고 관리자를 대신하는 누군가를 내세운다. 개혁형은 합리적인 조직 운영을 꾀한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생각으로 변화의 선봉에 관리자 본인이 앞장선다. 초기에 나타나는 반발을 예상하면서 강하게 변화의 드라이브를 건다.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의 성향에 따라 안정형으로 갈 것인지 개혁형으로 갈 것인지 선택하게 될 것 같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담임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학급의 분위기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엄석대'를 다르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 조직이든 잠재되어 있는 '엄석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참고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작가가 글을 쓸 때 머릿속에서 정하고 있던 독자는 어린이가 아니었다고 한다. 끄러운 고백이지만 이제야 책으로 온전히 읽게 되었다. 나도 은연중에 어린이 전용 도서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 같다.

소설에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인물별로 다양한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읽을 때 한병태와 엄석대보다 두 분의 담임 선생님에게 마음이 갔다. 학급을 관리하는 담임 선생님들의 모습이 학교를 관리하는 나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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