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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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세계가 있는 사람은 삶의 태도가 다르다. 지켜야 할 세계는 타협 불가능한 영역이다. 지켜야 할 세계는 결코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말하지 않는다. 깊이 박혀 있는 단단한 옹이와도 같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세찬 칼바람을 맞으며 견뎌낸 평생 지워낼 수 없는 오래된 기억이다. 쳐다보기 싫어서 내어던져 버렸지만 결국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지켜야 할 세계다. 자신 그 자체다.

2년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젊은 교사가 악성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한 학부모에 의해 생을 달리했다. 대한민국에 있는 교사들 모두에게 공분을 일으켰다. 예전에도 이런 사례가 없지는 않았지만 꾹꾹 눌려 참아왔던 것이 봇물처럼 터진 것이다. 유사 이래 수많은 교사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학교 밖 광장으로 뛰쳐나온 사례는 없었다. 교사들에게 지켜야 할 세계가 분명히 있었다. 침범당한 영역을 지키고 싶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세계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혹시 적당히 타협하고 현실에 순응하며 지켜야 할 세계가 내게 있었지라고 두루뭉술하게 지내고 있지 않는지 고집부리면 좋을 것이 없으니 주위 평판을 고려하며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 관심을 두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본다.

문경민 작가는 『지켜야 할 세계』에서 소설 속 주인공 국어교사 정윤옥이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인간다운 양심, 교사다운 소신을 풀어내고 있다. 지켜 내고 싶은 것은 그 무엇 하나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세계'였다.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이다.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가족, 친구, 일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교사에게 있어 수업과 학생, 동료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말이다.

'지켜야 할 세계'를 간직한 사람들을 만난다. 가치 여부를 떠나 최대한 존중해야 할 영역이다. 사람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전혀 알 수 없는 세계를 간직한 이들도 있다. 속물처럼 돈에만 눈이 멀어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만의 살아가는 세계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세계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지켜야 할 세계, 지켜 주어야 할 세계를 인정하며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따뜻하게 보호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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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한빛문고 1
이문열 지음 / 다림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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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냐? 안정이냐?

조직의 방향을 정해야 할 때가 있다. 새로운 학기를 앞두고 조직을 편성할 때 또는 새로운 근무지로 옮겨 갔을 때처럼 새로 무언가를 정해야 할 때 고민에 빠진다. 신규 교감일 때에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대부분 신경을 나 자신에게 기울였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에 기존에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었던 조직의 방향에 순응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반면 교감 경력이 쌓일수록 보는 눈이 생기자 뭔가 새로운 시도를 주체적으로 하고 싶었다. 주어진 옷을 대충 입는 단계에서 꼼꼼하게 내 스타일에 맞는 옷을 찾아 입고자 신경을 썼다. 안정적인 분위기가 왠지 고여 있는 물처럼 보였다. 변화의 드라이브를 걸자 선생님들도 낌새를 알아챘다. 반응이 분분했다. 변화는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관리자 유형은 크게 안정형과 개혁형으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정형은 사람들과 부딪치려고 하지 않는다. 기존의 흐름을 애써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최대한 저항을 줄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자 한다. 관리자가 직접 전면에 나서는 횟수는 줄이고 관리자를 대신하는 누군가를 내세운다. 개혁형은 합리적인 조직 운영을 꾀한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생각으로 변화의 선봉에 관리자 본인이 앞장선다. 초기에 나타나는 반발을 예상하면서 강하게 변화의 드라이브를 건다.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의 성향에 따라 안정형으로 갈 것인지 개혁형으로 갈 것인지 선택하게 될 것 같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담임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학급의 분위기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엄석대'를 다르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 조직이든 잠재되어 있는 '엄석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참고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작가가 글을 쓸 때 머릿속에서 정하고 있던 독자는 어린이가 아니었다고 한다. 끄러운 고백이지만 이제야 책으로 온전히 읽게 되었다. 나도 은연중에 어린이 전용 도서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 같다.

소설에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인물별로 다양한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읽을 때 한병태와 엄석대보다 두 분의 담임 선생님에게 마음이 갔다. 학급을 관리하는 담임 선생님들의 모습이 학교를 관리하는 나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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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식료품점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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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꼭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공동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시대를 살아간다. 공동체는 단순한 동아리 모임이 아니다.

함께 하는 공동체는 "친절. 사랑. 원칙."이 있다. 이것들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살아있는 공동체다.

신념으로 뭉친 모임은 다른 이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같은 신념의 동지들만이 아군이고 그와 결이 다른 신념의 사람들을 적으로 취급한다. 그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들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배제하며 살아간다. 그들 위에 군림하기도 한다.

친절. 사랑. 원칙. 이 세 가지가 작동하는 공동체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숫자로 보면 소수의 사람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떤 공통점도 찾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언어도 다를 수 있고 피부색도 다양하며 태어난 고향, 학벌, 국적이 같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과 사랑, 원칙을 함께 공유하고 있으면 규모와 상관없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강력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하늘과 땅 식료품점』을 운영한 볼품없는 연약한 여인 초나의 정신이 누구도 찾지 않고 배척한 척박한 땅의 사람들을 공동체로 하나가 되게 했다. 파괴하고 차별하며 묻지 마 폭력을 행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가 없이 약한 이들의 이웃이 되어주고 친절과 사랑을 원칙으로 살아간 초나의 삶이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갔다.

공동체는 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는 권력과 힘으로 때로는 유력한 사람 때문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과 친절, 원칙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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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소원을 들어주지 마세요 두뼘어린이 7
김태호 지음, 홍하나 옮김 / 꿈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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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쓰시는 작가 선생님들은 어쩜 아이들의 마음을 이렇게 잘 아실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이나 나나 나이를 먹어도 한참 먹은 중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텐데 어떻게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이리도 자세히 꿰뚫고 있는지 물음표가 떠나지 않는다.

심지어 작가 선생님보다 나는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하루 8시간 아이들을 보며 근무하고 있다. 그렇게 근무한 지도 무려 30년을 코밑에 두고 있다. 연수로 따져봐도 아이들을 이해하는 능력 면에서는 당연히 현직에 있는 내가 더 뛰어나야 할 텐데 거꾸로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경력이나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짧더라도 얼마만큼 진심으로 대상을 대하느냐가 그 사람의 중심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동화 작가 선생님은 진심으로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이고 나는 혹시 '일'로써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본다. 교실에서 훌쩍 떠나 교육행정 쪽에 무게 추를 옮겨 놓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학교는 아이들을 만나는 곳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해결하기 위한 곳이다.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얼굴을 보지만 마음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작년 한 해 1학년 교실부터 6학년 교실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수업에 들어갔다. 직접 수업을 진행하며 아이들을 만났다. 선생님들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렇게라도 교실에 들어가지 않으면 나는 천상 무늬만 선생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른 직업과 달리 교장, 교감은 관리자가 되더라도 늘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따라붙는다. 과장님, 원장님, 교육장님 같은 경우는 직급에 따른 호칭으로 불리지만 학교는 다르다. '교감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행정뿐만 아니라 '교육'에 방점을 두고 근무하라는 뜻일 거다.

설명이 장황했다. 글이 그만 샛길로 빠져 버렸다. 『제발 소원을 들어주지 마세요』를 읽고 어른이 동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싶었다. 학교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이 아이들 보고만 동화를 읽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읽고 있는 동화를 먼저 찾아 읽고 함께 읽어야 할 이유를 말하고 싶었다.

나는 교감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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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국어사전 (2025년 최신판) - 초등 국어 교육의 시작, 3차 개정판 보리 어린이 사전 시리즈
토박이 사전 편찬실 엮음, 윤구병 감수 / 보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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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곁에 두고 싶었던 책 중에 하나다. 80~9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는 사전에 대한 상반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다. 두께도 두께지만 깨알처럼 적혀 있었던 사전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쓰고 또 쓰면서 암기했던 기억이 오롯이 되살아난다.

고통의 순간이었지만 알고 보면 그때 익혔던 지식들이 모여 확장된 개념을 만들어갔고 좀 더 나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산했다.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는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수 없는 것이 진실이고 진리다. 따라서 초등학생을 비롯한 성인에 이르기까지 불변하는 사실은 지식의 바탕 위에 새로운 것을 생산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사전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참 많다. 아니 대부분일 거다. 하지만 창작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말 어휘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수고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결국 어디에선가 찾아내고 발견해 내야 하는데 사전만큼 정확한 안내서가 없다. 물론 손안에 든 핸드폰으로 얼마든지 어디에서든지 유용하게 검색 기능을 통해 사전적 지식을 뽑아낼 수 있지만 편리함 속에는 디테일한 유혹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본질을 벗어난 다른 것에 집착하고 시간을 빼앗기는 경우가 있다. 본말이 전도된 모습으로 유용한 도구가 순간 방해 요소로 변질될 수 있다는 얘기다. 창작의 시간, 고도의 짜임새 있는 지식을 발견해야 하는 시간에는 초고도의 집중이 필요하고 샛길로 빠져나가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상 위에 두꺼운 사전을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오래전부터.

이삿짐을 싸면서 두고두고 후회했던 것은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어 폐지함에 버렸던 여러 사전들이다. 손때가 묻어 있고 정겨움이 배어 있던 사전들이다. 영한사전, 국어사전, 옥편까지. 이제 이것들은 어디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보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부피가 나가고 둔탁한 느낌이 들더라도 작업대 겸 다용도 사용하고 있는 테이블 위에 떡 하니 사전 하나는 올려 두고 필요할 때에는 어휘 순서대로 찾아보며 낱말에 담긴 설명을 곱씹어 보고 음미하며 의미를 깊게 드려 마시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보리 출판사가 발간해 낸 1600여 쪽에 해당되는 『보리 국어사전』을 거머쥐게 되었다. 신간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품에 끼고 들춰볼 수 있을 것 같다.

검색해 보면 다 아시겠지만 『보리 국어사전』의 특징은 곳곳에 손수 그린 세밀화가 약방의 감초처럼 있다. 초등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겠지만 사실 청소년, 청년, 심지어 성인에 이르기까지 어휘의 설명만으로는 연상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참 많다. 야생화라든지 우리 고유의 낱말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기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뭔가가 필요했다. 바로 그림인데 그림 중에서도 연필로 세밀하게 그린 그림이라 한 올 한 올 실오라기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살아 있는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한글 학회 분들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놓으셨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말을 집대성하여 우리말 큰 사전을 만들고 후손들에게 널리 전하여 준 것이 오늘날 우리의 국어사전의 시작이었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가능한 사전이지만 사전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되살린다면 가정마다 국어사전 하나만큼은 보란 듯이 소장하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를 역주행하는 사전을 활용한 쓰임들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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