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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새와 관 짜는 노인
마틸다 우즈 지음, 아누스카 아예푸스 그림, 김래경 옮김 / 양철북 / 2021년 4월
평점 :
"그야 보니토 씨는 안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닌 게 뻔히 보여. 하지만 알베르토, 넌 내가 평생을 알고 지냈는데도 항상 좋은 사람이었어. 설령 클라라 말이 사실이라 해도 난 알아. 네가 아이를 숨겼다면 분명히 거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무슨 일이나 어떤 사람한테서 아이를 보호하는 것일 테지. 어느 쪽인지 난 몰라도 말이야" (214쪽)
마법의 도시 알로라에 감염병이 돈다. 팬데믹 코로나19처럼. 아니, 중세 유럽 인구의 절반의 목숨을 빼앗아 간 흑사병처럼. 목덜미에 반점이 생기면 감염이 된 증세다. 흑사병처럼 쥐에 의해서 생긴 병이다. 정체불명인 감염병으로 주인공 중의 한 명이 관 짜는 노인 '알베르토'의 가족 모두 죽게 된다. 평화로웠던 가족에게 예고없이 어둠의 그림자가 들어 닥친 것이다. 알로라에 많은 사람이 죽자 관이 필요하게 되었고, 아마도 알베르토는 그때부터 관 짜는 일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가족을 잃은 아픔으로 30년 동안 홀로 집 안에 틀어박혀 관 짜는 일만 하던 알베르토에게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젊은 여인이 시체가 되어 알베르토 집에 운송되어 온다. 나중에 알 게 된 사실이지만 주인공 '티토' 의 엄마다. 악명 높은 남편의 가혹한 행위를 피해 아들과 함께 알로라에 오게 된 여인은 굶주림과 고통 속에 어린 아들 '티토'를 남겨두고 추운 겨울, 죽음을 맞이한다. 마을 사람들에 의해 시체로 발견된 여인을 통해 알베르토는 소년 '티토'와 그의 단짝 친구 '피아' 새를 만나게 된다. 언제 아빠가 나를 잡으로 오게 될 줄 모르는 공포 속에 살아온 티토는 사람들과 떨어져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되면서 보여 지는 모든 것들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뀌게 된다.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하게 되는데 알베르토의 집을 알게 되고, 그러다가 알베르토의 집에 정착하게 된다.
도망간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잡기 위해 경비대장인 보니토가 알로라에 등장한다. 폭군처럼. 아들을 잡기 위해 온 마을을 이 잡듯이 수색하다가 결국 알베르토의 집을 의심하게 된다. 첫 번째 수색에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그러나 이웃집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고발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을 때, 알베르토와 티토는 소설 속 마법의 도시 '이솔라'로 탈출하기로 마음 먹는다. 자정을 기해 닥치게 될 보니토의 습격을 앞두고 영원히 이별할 수 밖에 없는 엄마의 무덤 앞에 가서 예쁜 꽃을 놓아 두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게 한다. 시체를 담아 놓을 관을 배로 사용하여 '이솔라'로 항해해 간다. 알로라에 알베르토 집에 급습한 보니토와 그의 휘하 기마부대는 한 발 늦은 셈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아. 그래도 이곳에 누운 엄마 말고, 여기 오기 전 엄마를 떠올려 봐. 미소 짓거나 웃는 엄마, 밤에 너를 재워 주던 엄마를 생각하는 거야. 슬픔이 전부 사라지지는 않아도 더 행복한 일이 기억날 거야" (73)
가족을 잃은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관 짜는 노인 알베르토도 하루 아침에 아내와 세 자녀를 모두 잃었다. 30년 넘게 그 아픔을 간직한 체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외딴 섬처럼 고립되어 집 안에서 시체를 담아 내는 관을 짠다. 밤낮으로 대화하는 사람은 '시체' 밖에 없다. 혼자 이야기하고 혼자 대꾸한다. 그러기를 30년 세월 동안 해 온다. 그러다가 엄마를 잃은 소년 '티토'를 만난다.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된 티토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아'
아픔을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래도 이곳에(묘지)에 누운 엄마 말고, 여기 오기 전 엄마를 떠올려바'. 알베르토도 30년 전에 죽은 세 자녀가 쓰던 방에 자녀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책을 고스란히 놓아 두었다. 죽기 전의 자녀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서. 오늘은 2021년 4월 16일,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아이들이 끝내 돌아 오지 못한 날이기도 하다. 자녀를 잃은 슬픔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이웃의 삶을 돌보는 것이 바로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생면부지의 어린 소년 '티토'를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알베르토의 모습을 통해 이웃의 삶을 돌보는 것이 곧 나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일임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참고고 관을 짤 때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업하기 쉽고 금방 썩지 않는 재목이 '미루나무' 관이라고 한다. 관 짜는 노인 알베르토가 독자들에게 팁으로 알려준다. 책에는 신기한 색이 나온다. 책 시작 부분에 보면 '위대한 화가 주세페 베르니체가 피네스트라 자매 집 지붕을 표현할 때' 쓰던 색이다. 도대체 지붕색이 얼마나 특별할까? '눈부신 노른자' 색이다. 이 색은 '공작새 깃털에 박힌 눈알 무늬를 으깨서 만든 색깔' 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기한 새들이 마을에 돌아다니는데 새의 울음소리도 특이하다. '피롱' 한다고 한다. 마법의 도시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