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여자아이가 나랑 같이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아이에겐 그럴 이유가 없고, 내가 그러자고 제안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내가서두르라고 다시 좀 더 절박하게 손짓하며 말하자 그 아이는 나를, 만시를 따라왔다. 일이 그렇게 돼서 우리는 같이 갔다. 그게 옳은 일인지누가 알겠느냐만 아무튼 그렇게 됐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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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소음은 킬리언 아저씨의 그것과 다르다. 좀 더 차분하고, 좀 더 깨끗하며, 소음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킬리언 아저씨의 소음이 항상 불그스름하다면 벤 아저씨는 파랗게나 가끔은 초록색으로 느껴진다. 두 사람은 물과 불처럼 극과 극이지만 내게는 부모나 다름없다. - P49

나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뭘 봤어요. 늪지에서. 흠, 보진 못했죠.
그게 숨어버렸으니까. 하지만 그건 마치 소음의 어느 한 부분이 찢어진것처럼…" - P53

두 사람은 다시 서로 눈길을 주고받은 후에 나를 봤다. "넌 프렌티스타운을 떠나야 해." 벤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봤지만 둘 다 근심 외에 소음에서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내가 프렌티스타운을 떠나야 한다니 무슨 뜻이에요?
신세계에 프렌티스타운 말고 다른 곳은 없잖아요." - P56

벤 아저씨가 날 방에서 끌어내 뒷문으로 나가는 사이, 나는 다시 소총을 집어 들고 날 힐끗 보는 킬리언 아저씨의 눈과 마주쳤다. 아저씨의 표정과 소음에서 이건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랜 작별이란 걸 지금이 우리가 함께 하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64

"그 일기장 앞에 접혀 있는 지도가 있어. 내가 직접 만든 거야. 마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지기 전까진 절대 그 지도를 보지 마, 알았지? 그냥늪지로 가. 거기 가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될 거야."
하지만 아저씨의 소음에서 내가 거기 가도 뭘 해야 할지 알 거라는 확신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 P69

"저건 여자아이야." 나는 다시 말했다. 여전히 숨을 고르면서, 여전히가슴을 짓누르는 압력을 느끼면서, 여전히 꼭 쥐고 있는 칼을 앞에 내민 채로.
여자아이라.
그것은 우리가 자길 죽이기라도 할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마주 보고있었다. - P87

프렌티스타운에는 여자아이가 하나도 없다. 모두 죽었다. 여자아이들은 그들의 엄마와 할머니와 자매와 이모와 고모들과 함께 죽었다. 그들은 내가 태어나고 몇 달 후에 죽었다. 모두, 하나도 남김없이.
그런데 여기 하나가 있다. - P89

그녀가 날 보고 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고, 내 눈을 보고 있다. 보고 또 보고 있다.
그런데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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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말문이 트였을 때 처음 알게 되는 사실은 개는 할 말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뭐든 그렇다. - P13

나는 바로 그런 온갖 일이 벌어지던, 모든 게 엉망진창이던, 스팩족의 시체들로 높이 터질 것 같고 인간의 시체들로 묘지도 남아나질 않은, 마을에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에 태어났다. 그래서 기억하는 것이 하나도 없고, 소음이 없는 세상도 기억할 수 없다. - P22

이 세상에는 그저 끊임없이 나를 덮쳐오는, 사람들과 다른 생물들이 생각하는 소음만 있을 뿐이다. 전쟁 때 스팩족이 소음 세균을 퍼뜨린 후로 쭉 그랬다. 그 세균이 남자들 절반과 여자들 전부를 죽였는데, 우리 엄마도 피해 가지 못했다. 그 세균은 살아남은 나머지 남자들을 미치게 만들었고, 광기에 사로잡힌 남자들이 총을 들면서 스팩족도 멸망했다. - P27

나는 마을의 망할 모든 주민 하나하나가 내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 그들의 소음은 홍수처럼, 타오르는 불길처럼, 하늘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괴물이 잡으러 오는 것처럼 어디에도 숨을 곳 없는 나를 향해 언덕을 타고 흘러온다. - P34

이 교회야말로 애초에 우리가 신세계에 오게 된 이유로 매주 일요일마다 우리가 왜 죄악과 부패로 가득 찬 구세계를 떠났는지, 그리고 이 새로운 에덴동산에서 어떻게 새롭고 순결한 삶과 형제애를 시작하는 걸 목표로 했는지 아론 목사가 설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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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베트는 양면적인 여자였다. 만일 누가 성질을 건드린다면 세상에서 가장 가혹할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반면, 상대의 인간적인 약점에 대해선 눈 하나 찡그리는 일이 없었다. - P804

"그래, 원하는 게 뭐죠?" 그가 먼저 물었다.
"내가 돈을 좀 훔쳤어요." 그녀는 더없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걸 관리해줄 사기꾼이 필요해요." - P807

리스베트는 지브롤터에서 이 주 넘게 머무를 줄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십이 주 동안 머물러 있었다. - P816

"그녀를 사랑해요?"
리스베트는 대답하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고는 끝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녀는 친구예요. 그리고 잠자리에서 잘하고요."
"사랑에 빠지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에요. 부인하고 싶을 수 있죠. 하지만 사랑의 가장 흔한 형태가 우정 아닐까요?" - P817

순간 안니카가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리스베트, 정말 성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앞으로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할 거예요. 당신이 그 돈으로 무슨 짓을 하든 난 신경 안써요. 하지만 유산을 받았다고 서명은 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고나서 마음껏 술을 퍼마시라고요." - P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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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베트는 문득 열두 살 때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상트스테판 정신병원에서 모든 자극이 제거된 병실에 묶여 있었다. 페테르는 시도 때도 없이 들어와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미광에 희미하게 비친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곤 했다. - P459

"지금 살라첸코 클럽은 날 감시하고 있고, 역으로 난 그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살라첸코 클럽을 감시하고 있죠. 상황이 이쯤 되었으니 수상께선 노여우시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하시겠죠. 이 모임이 끝나면 대형 스캔들이 기다리고 있고, 정부는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아시니까요." - P403

리스베트는 미카엘이 쓴 글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일련의 사건들이 어떻게 귀결될지 분석해보고, 미카엘이 세운 계획을 꼼꼼히 확인하면서 여러 가능성을 따져보았다. 그리고 이번 한 번만 그의 제안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 P543

에리카는 살트셰바덴 집에 혼자 있었다. 온몸이 마비된 듯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와 지금 자신의 사진들이 인터넷에 떴다는 소식을 알려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계속 리스베트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지나친 기대를 걸고 있다는 사실에 부르르 머리를 흔들었다. - P592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오늘 아침, 리스베트의 변호사가 검사에게 그녀가 쓴 자전적 진술서를 제출했어요. - P659

안니카는 공판이 시작되고 이틀 동안 특별한 질문이나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법정에 모인 사람들은 오늘도 그녀가 의무적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끝내리라 예상했다. 리샤르드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제길, 변호인측 반격이 이렇게 형편없어서야 재판이 빛이 나겠나… - P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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